‘참여하는 만큼 바뀌는 세상, 참여연대’ “잘 만든 광고카피 하나가 제품의 매출액을 결정하는 요즘 세상에 시민단체의 홍보 문구치고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원상 자원활동가는 참여연대 근처에서 공익근무 활동을 하던 중 회원가입 팜플릿을 보고 참여연대라는 명칭이 마음에 들었다. 대안을 내놓는 운동방식에도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공익근무를 마치기까지 관찰자의 입장에서만 참여연대를 바라보았다는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무원, 교사, 군인 등 공직에 있는 사람은 시민운동에 참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것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었어요. 시민단체를 마치 정치적 결사체와 동일시하는 의식이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었던 거죠.” 그는 자신과 참여연대가 이런 선입견의 공동 피해자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다.

그가 공익근무를 마치고 대학생의 신분으로 참여연대 자원활동을 할 때는 간사들로부터 수시로 밥을 얻어먹곤 했다고 한다. “벼룩이 간을 빼먹는 기분이었죠. 그래도 싫은 기색 한 번 안하고 챙겨주던 간사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사회인이 된 그가 간사들의 한끼 식사 정도는 가끔씩 해결해 주는 것도 옛 시절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하원상 씨가 참여연대 회원이 되어 처음 시작했던 자원활동은 1999년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의 김포공항 소음피해와 관련한 공익소송으로 실행위원과 간사들을 돕는 일이었다. 그는 발로 직접 뛰면서 그 곳 주민들을 만나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하면서 소송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대법원 최종심까지 가야했던 6년간의 길고 지루한 소송 끝에 2005년 1월, 드디어 관련 주민들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와 같은 소식을 접하고 직장에서 일을 마치자마자 참여연대로 찾아온 그의 모습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마치 마라톤 평원을 달려온 그리스 병사 같았다. “참여연대가 일상적인 국가권력 감시활동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생활 속 작은 권리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그 희열과 보람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현재 그는 시민참여팀에서 각종 민원관련 상담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간사 못지 않은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연대를 찾아오는 분들의 일상의 고충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그는 참여연대의 이목구비 가운데 귀 같은 그리고 효자손 같은 존재인 것이다.

밤낮 없이 참여연대를 지키며 활동하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결혼발표를 한 뒤, 그의 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그는 “예비신부와 한 가지 약속을 했어요, 자원활동을 하되 밤늦게 까지만 아니면 괜찮다고 말이죠.” 앞으로 그의 귀가시간을 챙겨야 하는 기쁜(?) 수고쯤은 감내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품자.’ 체게바라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그에게서는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순수함이 묻어났다.

공성경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2005/04/01 00:00 2005/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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