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다른 이들과의 대화
2004/2004년 06월 :
2004/06/01 00:00
한국사회론과 같은 강의시간에 나는 언론에 오르내리는 시사적 쟁점을 던져주고 그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묻곤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국제경쟁력 논의와 관련시켜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였다고 기억한다. 평소에 앞자리에 앉아서 자기 나름의 견해를 표명하곤 했던 한 학생이 이날은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멀리 하면서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본인의 생각을 채근하자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아버지가 최근에 중국으로 회사를 옮기면서 부닥쳤던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내가 나름대로 근거 있는 생각을 말하기 꺼려한 이유를 묻자 모두 싫어할 것 같아서 말할 수 없었다고 거북스럽게 대답했다. 그 학생 역시 다른 학생들처럼 사회적 정의와 역사적 진보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이 열려 있었지만,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문제를 냉철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학생의 대답에 대하여 다른 학생들이 비난조로 웅성거리는 것을 보면서 그 학생의 판단이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 학생의 생각이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동의해주지는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 이후 나는 교정에서 그 학생을 가끔 마주치곤 했는데 반가운 표정보다는 서로 다르다는 거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년쯤 전에 나는 목동으로 이사했다. 목동은 여러 가지 점에서 나에게 어색하고 불편한 곳이었지만 아내의 직장이 가까워서 아이들을 보살피기에 적당했다. 그렇다고 이곳의 생활이 제법 나아진 주변 환경만큼 꼭 편안하지는 않았다. 직장까지의 거리도 멀었지만 이는 이미 감수했던 바라 거리끼지 않았다. 나에게 더 큰 문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생활수준이나, 다가가기 쉽지 않은 주민들이었다. 친절하지만 관용적이지 못하여 자신들이 침해 받았다고 생각되면 공격적이기도 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네 운동동호회에 참여하면서 심각한 이질감을 두루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나이가 많고 생활기반도 안정되어 있는 편이었다. 회원들간에 세상 잡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흔히 그렇듯이 정치이야기가 가끔 화제에 올랐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행태와 그들이 선택한 정치세력에 대해서 이들이 보여준 태도는 처음에는 낯설어하면서 조심스러운 우월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분노와 적대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처음에야 명색이 교수인지라 그들에 비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씩 거들 수 있었으나 나중에는 감히 말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대선 이후 최근의 탄핵과 총선을 거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거칠어졌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집단적인 분위기의 산물인 듯 몇몇이 앉아서 차분하게 얘기할 때에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고 그들의 말에 수긍하기 어려울 때에는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최근에 실시된 한 언론사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반수 정도가 향후 우리 사회의 진로를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로, 이를 이끌어갈 바람직한 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을 꼽고 있다. 냉전반공주의와 발전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던 국민의식이 민주화 이행 17주년에 이르면서 놀랍도록 변화했다고 보인다. 이보다 앞서 사회학자들에 의해 조사되어 다른 일간지에 보도된 국민이념지수에 따르면, 대선을 거치면서 보수에서 중도로 이동하기 시작한 국민의식은 지난 1년 동안 전체 평균의 변화는 없이 보수와 진보 진영 각각이 강화되었다고 한다. 즉, 중도 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점차 분해되면서 보수와 진보 쪽으로 각각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 두 조사결과를 묶어보면, 전반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진보에의 희망을 키워가고 있으나 이에 동조하지 않는 보수세력도 만만치 않게 결집돼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결집된 보수세력은 이해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그 학생이기도 하고 동네에서 같이 운동하는 나의 이웃이기도 하다. 그들은 과거의 체제에 동조했으면서도 지금은 다수의 횡포 속에서 억눌려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또 그들과 관련되어 있는 신세대들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기득권층의 일원이면서도 여론이나 선거, 그리고 언론에서도 이제 그들은 스스로 정치적, 이념적 소수자임을 인식하고 있다.
자,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위해 군부독재와 싸우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민주투사들이 ‘소수’로 낙인찍히면서 억압받았던, 그 처참하고 외롭고 두렵기까지 했던 시절을 생각해보라. 한편으로 그러한 억압이 우리들을 얼마나 단결시키면서 결사 투쟁의 의지를 키워주었는가를 생각해보라. 결국 그들은 패배했고 이 땅에 민주주의의 싹은 피워 올랐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민주주의자들의 자발적 동의를 얻기보다는 물리적 강제를 선호했다. 그들에게는 도덕적 정의가 없었기에 부드러운 대안없이 외길로 갈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실패하게 됐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도 과거의 보수세력처럼 도덕적 우월성도 없이 같은 길을 가야 하는가? 형식적 수에 기반을 둔 개혁과 진보의 논리를 앞세워 민주적 토론과 소수자의 보호 등은 던져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 결과 약간의 실수와 빈틈만 있어서 쉽게 무너지는 그러한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가?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수세력이 수구적 굴레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사회의 건설에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보수세력이란 더 이상 과거의 수구세력이 배타적으로 주도하는 그런 집단은 아니다. 그 보수적 정치세력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변화하면서 분화되고 있다. 그 안에는 수구적 정치인들과는 다른 보수적 성향의 시민들이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보수적인 정당과 개혁적인 정치인을 동시에 지지하기도 한다. 그들과의 토론과 설득과 정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들의 성찰과 성숙의 과정이기도 하다.
탄핵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 원로 지식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에는 좌우파를 막론하고 상대방에 대해 인정하는 개방적인 사고가 결여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구체제의 세력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그럴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유능하면서 도덕적으로도 정의롭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2년쯤 전에 나는 목동으로 이사했다. 목동은 여러 가지 점에서 나에게 어색하고 불편한 곳이었지만 아내의 직장이 가까워서 아이들을 보살피기에 적당했다. 그렇다고 이곳의 생활이 제법 나아진 주변 환경만큼 꼭 편안하지는 않았다. 직장까지의 거리도 멀었지만 이는 이미 감수했던 바라 거리끼지 않았다. 나에게 더 큰 문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생활수준이나, 다가가기 쉽지 않은 주민들이었다. 친절하지만 관용적이지 못하여 자신들이 침해 받았다고 생각되면 공격적이기도 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네 운동동호회에 참여하면서 심각한 이질감을 두루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나이가 많고 생활기반도 안정되어 있는 편이었다. 회원들간에 세상 잡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흔히 그렇듯이 정치이야기가 가끔 화제에 올랐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행태와 그들이 선택한 정치세력에 대해서 이들이 보여준 태도는 처음에는 낯설어하면서 조심스러운 우월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분노와 적대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처음에야 명색이 교수인지라 그들에 비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씩 거들 수 있었으나 나중에는 감히 말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대선 이후 최근의 탄핵과 총선을 거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거칠어졌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집단적인 분위기의 산물인 듯 몇몇이 앉아서 차분하게 얘기할 때에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고 그들의 말에 수긍하기 어려울 때에는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최근에 실시된 한 언론사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반수 정도가 향후 우리 사회의 진로를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로, 이를 이끌어갈 바람직한 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을 꼽고 있다. 냉전반공주의와 발전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던 국민의식이 민주화 이행 17주년에 이르면서 놀랍도록 변화했다고 보인다. 이보다 앞서 사회학자들에 의해 조사되어 다른 일간지에 보도된 국민이념지수에 따르면, 대선을 거치면서 보수에서 중도로 이동하기 시작한 국민의식은 지난 1년 동안 전체 평균의 변화는 없이 보수와 진보 진영 각각이 강화되었다고 한다. 즉, 중도 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점차 분해되면서 보수와 진보 쪽으로 각각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 두 조사결과를 묶어보면, 전반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진보에의 희망을 키워가고 있으나 이에 동조하지 않는 보수세력도 만만치 않게 결집돼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결집된 보수세력은 이해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그 학생이기도 하고 동네에서 같이 운동하는 나의 이웃이기도 하다. 그들은 과거의 체제에 동조했으면서도 지금은 다수의 횡포 속에서 억눌려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또 그들과 관련되어 있는 신세대들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기득권층의 일원이면서도 여론이나 선거, 그리고 언론에서도 이제 그들은 스스로 정치적, 이념적 소수자임을 인식하고 있다.
자,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위해 군부독재와 싸우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민주투사들이 ‘소수’로 낙인찍히면서 억압받았던, 그 처참하고 외롭고 두렵기까지 했던 시절을 생각해보라. 한편으로 그러한 억압이 우리들을 얼마나 단결시키면서 결사 투쟁의 의지를 키워주었는가를 생각해보라. 결국 그들은 패배했고 이 땅에 민주주의의 싹은 피워 올랐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민주주의자들의 자발적 동의를 얻기보다는 물리적 강제를 선호했다. 그들에게는 도덕적 정의가 없었기에 부드러운 대안없이 외길로 갈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실패하게 됐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도 과거의 보수세력처럼 도덕적 우월성도 없이 같은 길을 가야 하는가? 형식적 수에 기반을 둔 개혁과 진보의 논리를 앞세워 민주적 토론과 소수자의 보호 등은 던져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 결과 약간의 실수와 빈틈만 있어서 쉽게 무너지는 그러한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가?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수세력이 수구적 굴레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사회의 건설에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보수세력이란 더 이상 과거의 수구세력이 배타적으로 주도하는 그런 집단은 아니다. 그 보수적 정치세력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변화하면서 분화되고 있다. 그 안에는 수구적 정치인들과는 다른 보수적 성향의 시민들이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보수적인 정당과 개혁적인 정치인을 동시에 지지하기도 한다. 그들과의 토론과 설득과 정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들의 성찰과 성숙의 과정이기도 하다.
탄핵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 원로 지식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에는 좌우파를 막론하고 상대방에 대해 인정하는 개방적인 사고가 결여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구체제의 세력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그럴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유능하면서 도덕적으로도 정의롭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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