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겨레 하나되는 길 머지 않았다
2004/2004년 06월 :
2004/06/01 00:00
룡천역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좀 지났다. 룡천역 주민들에 대한 남쪽 주민들의 지원은 참으로 적극적이었다. 그 어떤 사회단체도, 정당도 또 언론사도 룡천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남북간의 정당한 경제협력까지도 ‘퍼주기’라며 비난하던 모신문사가 1억의 룡천 지원금을 내는 것을 보면서 세상 참 많이도 변하고 있다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대북지원사업의 성과 및 한계
이 룡천역 참사에 대한 남쪽 주민들의 호응은 이제까지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의 룡천 지원 연대단체만 몇 군데가 만들어져, 경쟁적으로 긴급 구호품을 룡천으로 나르기가 바빴던 데 비해 실제 적절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일부 의약품 등 특정 물자는 중복적으로 지원된 반면, 정작 긴급하게 필요했던 물자들이 짜임새 있게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또 긴급구호가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정말 더 치밀하게 집중적으로 투입되어야 할 복구물자와 장비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단체도 마땅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룡천 참사는 남쪽 주민들의 북에 대한 의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 것 못지않게 이른바 대대적인 대북지원의 열기 혹은 경쟁만으로는 그 효과라는 측면에서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인도적 대북지원의 방향 “룡천소학교 건립위원회”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대북지원단체들과 각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하여 ‘룡천소학교 건립위원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룡천소학교를 건립하는데 들어가는 기금은 대략 25억 원 정도다. 이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룡천 지원연대단체들이 다시 소학교 건립위원회로 일정 부분 재편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사회단체 및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특색을 담아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어떤 단체는 철근을 대고 어떤 단체는 목재를 대고, 또 교육용 텔레비전을 내놓은 사람, 소학교 내 탁아소를 지어주는 사람, 또 네티즌들은 벽돌 한 장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을 인터넷으로 모금하기도 하고 어떤 회사는 창틀을 몽땅 맡아줄 수도 있을 듯 하다. 이런 다양한 참여와 모금을 유도해야 학교 건립기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세째로 보다 대대적인 여론전과 결합된 형태로 이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룡천 소학교 건립위원회가 많은 사회단체와 각 분야의 정성을 통합해내고 대북지원과 민족화해를 높여내는 여론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면 아마도 룡천 참사에 대한 남쪽 주민들의 지원은 인도적 지원의 수준을 넘어 ‘룡천에 새희망’을 가꿈으로서 룡천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듯 싶다.
통일의 전제, 남과 북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서의 ‘구동존이’
그러나 룡천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꾸려는 국민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겨레 하나되는 날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필자는 수없이 북을 방문했지만 체제의 차이로 인한 가치관과 통념의 차이는 사람들 삶 구석구석에 배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남북간에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통일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역설적일까? 북이 최근 경제개선방안 등을 발표하고 개성공단의 완공을 서두르는 것을 보면서 북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장차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자본주의 사회와의 공존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 남쪽은 얼마나 진지하게 사회주의 체제인 북과의 공존의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고 있을까? 아직도 북의 체제와 사상을 존중하는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며 민족화해를 ‘남쪽의 논리를 북에 이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풍토가 남아있는 한 구동존이로서의 통일을 맞이할 준비는 요원하다.
북은 남과 60년 동안 전혀 다른 체제 속에서 형성된 역사 및 가치체계와 규범이 존재한다. 남녘은 그런 북과의 진정한 공존, 화해 협력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구체화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 남이 북에 비해 경제적으로 우월하다고 해서 북에 개혁.개방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남이 북과의 공존을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6.15공동선언 이후 마련된 남북화해와 협력의 물길은 통일의 바다로 흘러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분단의 영구화는 남과 북, 우리민족 모두에게 죽음을 초래할 뿐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도, 강대국 중심의 경제논리인 세계화를 강요하는 국제질서의 틈바구니에서 민족경제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남북 화해와 통일은 필수적 과제이다. 공동운명체로서의 자각은 ‘구동존이(求同存異)’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차이성 못지않게 민족동질성은 더욱 분명히 각인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공동운명체를 위한 과제 ‘법제도 개선’
그러면 이러한 방향을 구체화 하기 위해 우리의 남북관계 법과 제도의 정비방향은 무엇일까. 냉전시대 분단을 유지하는 틀이었던 국가보안법은 조만간 자기 운명을 다할 처지에 와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발전의 기본법 제정과 그리고 남북교류 협력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려는 구체적 대안은 하루가 시급한 상황이다. 지금의 남북교류 협력법은 90년에 만들어져 부분적인 개정이 있었을 뿐 6.15공동선언 이후의 특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즉 지금의 남북교류협력법은 국가보안법 하에서의 남북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근거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지, 남북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 위에서 전향적인 발전방향으로 정리되어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이 없어진 조건, 남북관계발전 기본법이 제정되는 조건에 맞추어 그 틀을 전적으로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 남북경협을 활성화하고 촉진하기 위한 제반 법적.제도적 장치를 완비하는 것, 경협을 가로막는 운용제도를 개선하는 것, 이런 적극적인 남북관계의 발전 대안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지는 것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시대적 과제다.
룡천 참사에 대한 전 국민적 지원으로 북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의 전격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론’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과 민주 시민들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와 고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대북지원사업의 성과 및 한계
이 룡천역 참사에 대한 남쪽 주민들의 호응은 이제까지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의 룡천 지원 연대단체만 몇 군데가 만들어져, 경쟁적으로 긴급 구호품을 룡천으로 나르기가 바빴던 데 비해 실제 적절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일부 의약품 등 특정 물자는 중복적으로 지원된 반면, 정작 긴급하게 필요했던 물자들이 짜임새 있게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또 긴급구호가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정말 더 치밀하게 집중적으로 투입되어야 할 복구물자와 장비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단체도 마땅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룡천 참사는 남쪽 주민들의 북에 대한 의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 것 못지않게 이른바 대대적인 대북지원의 열기 혹은 경쟁만으로는 그 효과라는 측면에서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인도적 대북지원의 방향 “룡천소학교 건립위원회”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대북지원단체들과 각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하여 ‘룡천소학교 건립위원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룡천소학교를 건립하는데 들어가는 기금은 대략 25억 원 정도다. 이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룡천 지원연대단체들이 다시 소학교 건립위원회로 일정 부분 재편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사회단체 및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특색을 담아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어떤 단체는 철근을 대고 어떤 단체는 목재를 대고, 또 교육용 텔레비전을 내놓은 사람, 소학교 내 탁아소를 지어주는 사람, 또 네티즌들은 벽돌 한 장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을 인터넷으로 모금하기도 하고 어떤 회사는 창틀을 몽땅 맡아줄 수도 있을 듯 하다. 이런 다양한 참여와 모금을 유도해야 학교 건립기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세째로 보다 대대적인 여론전과 결합된 형태로 이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룡천 소학교 건립위원회가 많은 사회단체와 각 분야의 정성을 통합해내고 대북지원과 민족화해를 높여내는 여론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면 아마도 룡천 참사에 대한 남쪽 주민들의 지원은 인도적 지원의 수준을 넘어 ‘룡천에 새희망’을 가꿈으로서 룡천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듯 싶다.
통일의 전제, 남과 북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서의 ‘구동존이’
그러나 룡천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꾸려는 국민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겨레 하나되는 날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필자는 수없이 북을 방문했지만 체제의 차이로 인한 가치관과 통념의 차이는 사람들 삶 구석구석에 배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남북간에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통일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역설적일까? 북이 최근 경제개선방안 등을 발표하고 개성공단의 완공을 서두르는 것을 보면서 북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장차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자본주의 사회와의 공존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 남쪽은 얼마나 진지하게 사회주의 체제인 북과의 공존의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고 있을까? 아직도 북의 체제와 사상을 존중하는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며 민족화해를 ‘남쪽의 논리를 북에 이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풍토가 남아있는 한 구동존이로서의 통일을 맞이할 준비는 요원하다.
북은 남과 60년 동안 전혀 다른 체제 속에서 형성된 역사 및 가치체계와 규범이 존재한다. 남녘은 그런 북과의 진정한 공존, 화해 협력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구체화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 남이 북에 비해 경제적으로 우월하다고 해서 북에 개혁.개방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남이 북과의 공존을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6.15공동선언 이후 마련된 남북화해와 협력의 물길은 통일의 바다로 흘러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분단의 영구화는 남과 북, 우리민족 모두에게 죽음을 초래할 뿐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도, 강대국 중심의 경제논리인 세계화를 강요하는 국제질서의 틈바구니에서 민족경제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남북 화해와 통일은 필수적 과제이다. 공동운명체로서의 자각은 ‘구동존이(求同存異)’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차이성 못지않게 민족동질성은 더욱 분명히 각인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공동운명체를 위한 과제 ‘법제도 개선’
그러면 이러한 방향을 구체화 하기 위해 우리의 남북관계 법과 제도의 정비방향은 무엇일까. 냉전시대 분단을 유지하는 틀이었던 국가보안법은 조만간 자기 운명을 다할 처지에 와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발전의 기본법 제정과 그리고 남북교류 협력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려는 구체적 대안은 하루가 시급한 상황이다. 지금의 남북교류 협력법은 90년에 만들어져 부분적인 개정이 있었을 뿐 6.15공동선언 이후의 특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즉 지금의 남북교류협력법은 국가보안법 하에서의 남북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근거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지, 남북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 위에서 전향적인 발전방향으로 정리되어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이 없어진 조건, 남북관계발전 기본법이 제정되는 조건에 맞추어 그 틀을 전적으로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 남북경협을 활성화하고 촉진하기 위한 제반 법적.제도적 장치를 완비하는 것, 경협을 가로막는 운용제도를 개선하는 것, 이런 적극적인 남북관계의 발전 대안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지는 것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시대적 과제다.
룡천 참사에 대한 전 국민적 지원으로 북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의 전격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론’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과 민주 시민들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와 고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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