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은 보통 사람들의 정치적 지지에 힘입어 탄생했다. 그 밑바탕에는 새 대한민국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땀 흘린 만큼 잘 사는 나라, 특권과 반칙이 통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노무현 후보의 약속에 대한 기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현 정부의 출범 이후에는 정치적으로 소외돼 있던 국민들을 주인의 자리에 복귀시키는 정치개혁과 참여가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개혁이 무디어지자 지체 없이 정치적 지지를 철회하는 모습에서 그 열망과 기대가 얼마나 크고 깊었는가를 알 수 있다.

국가를 압도하는 재벌들의 특권적 반칙에 대해 공정한 자를 적용하려는 노력도 그 열망에서 나왔다. 자본주의의 사회적 헤게모니가 강한 우리 사회이지만, 국민들은 재벌의 ‘부 세습’에 대해서는 그 부도덕성을 냉엄하게 비판했다.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야당 후보가 두 차례의 대선에서 패배하는 데 아들의 병역기피가 결정적이었다거나 정치인 집안의 원정출산이나 부정입학이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법조인들은 부와 존경을 누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회를 장악하여 스스로의 기득권을 방어하고 개혁을 저지하는 법률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오래지 않아 국민들은 이들에 대해서도 점검과 비판의 목소리를 내리라 기대한다.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내세워 대중들이 알아볼 수 없는 처방전을 쓰는 의사들의 특권의식 또한 이미 깨진 지 오래다. 교수집단은 그 실제와 무관하게 사회적 존경을 받는 지식인이라기보다 역량있는 지식생산자이자 지식전달자로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한 특권의 대상에는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의 열풍 속에서 엄청난 불로소득을 챙기는 모리배들이나 연줄망이 강한 사회에서 학연에 따르는 특권을 챙기는 일류대 출신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 정부는 실패와 미숙에도 불구하고 반특권주의와 탈권위주의만으로 그 정치적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탄핵을 반대한 국민들의 의식 속에는 정치적 특권계급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민의 일반의지를 배반한 데 대한 분노가 짙게 깔려 있었다. 불법정치자금을 차떼기로 수수하고 그러한 범법자를 풀어주는 데, 불체포특권을 남용하는 데에 이르면서 이 특권층의 정신질환은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초선 당선자가 전체의 3분의 2에 넘었던 이유는 새로운 정치인이야말로 기득권층의 특권의식을 물들지 않고 국민들과 호흡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면밀하게 살펴보면, 평등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에 이러한 특권과 권위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근대적 제도화가 미진한 사회에서 국가와 공동체의 보호보다는 친분이나 연고와 같은 사적인 연줄망을 통해 위험을 극복하다 보니 특권과 권위주의의 민주적 해체보다는 오히려 그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을 수도 있다. 민주화 이행 이전의 사회에서 국민의 참여가 제한되어 정보유통이 미흡하거나 왜곡되다 보니 실제로 어떠한 특권이 존재하는지에 무지했을 수도 있다. 이제 특권의 음습한 거래와 향유를 감시하는 시민사회가 조직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국민들은 그에 대한 정보와 비판의식을 공유하게 되면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요즈음 국회의원의 특권철폐와 관련하여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폐지하고 의원 세비를 포함하여 1년에 4억 원을 넘어서는 의원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축소하자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면책특권은 근거없는 흑색선전으로 정치판을 혼탁하게 하는 부도덕한 정치인에게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불체포특권은 부정부패에 연루된 정치인에게 공정한 사법적용을 가로막아 사회정의가 유실되는 결과를 낳았다. 민생보다는 권력투쟁에 매달려 국민의 대표 기능을 상실한 국회의원에게 국가예산을 낭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권을 어느 수준까지 폐지하는가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막강한 기득권에 도전하게 될 새로운 정치세력에게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지배세력과 국가권력의 압력에 맞서서 개혁과 진보를 일구어나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무기다. 대안적 정치세력이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우리 사회의 비전을 체계적으로 설계하는 데 충분한 비용을 제공하는 것은 결코 국가예산의 낭비가 아니다. 모두 합해 봐야 3000여 명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 절반인 비전문적인 보좌인력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국정과 예산을 감시하고 법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당이 불과 20여 명 안팎의 정책연구인력으로 국가체제를 구상하는 전방위적 정책이 생산될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국회의원이나 정당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국민을 대표하여 그 헌법적,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쓰인다면 결코 특권이 아니게 된다. 특권의 폐지에 몰두하여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이 볼모화 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될지도 모른다.

나는 오히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보상이 충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대의 공동 학위제를 실시하여 특정 대학의 특권을 폐지하고 경쟁을 통해 생산력을 제고할 수도 있지만, 대학 스스로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도록 독려하는 방안은 없을까? 교수집단의 특권을 폐지하기 위하여 현실적으로 병행 불가능한 강의와 연구의 과중한 부담을 줌으로써 좋은 선생도 연구자도 아닌 집단을 만드는 방식이 바람직한가? 부유한 자들에 대한 비난보다는 세금을 많이 내는 이들의 사회적 기여를 인정함으로써 탈세를 죄악시하는 도덕성을 심어줄 수는 없을까? 검찰이나 경찰이 부족한 수사비용에 전전긍긍하면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지원할 수는 없을까?

국민들이 특권에 대해서 비판하는 이유가 보통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그 무엇을 특정 집단만이 전유하는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 때문일까? 오히려 ‘고귀한 책임’을 다한다면 그보다 더 줄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공익에도 부합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윤상철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한신대 사회학과교수
2004/07/01 00:00 2004/07/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13597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