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10년 “재미있기 때문이죠.”
2004/2004년 07월 :
2004/07/01 00:00
김선웅 회원 인터뷰
십 년 사이에 참여연대 회원이 날로 늘어나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시민운동이란 문화를 직접 가꾸고 있다. 참여연대 10년의 의미를 짚어보는 가장 큰 의미는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려야 함일 것이다. 기쁨과 성취, 때로는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면서 지난 10년을 함께 해준 1만3천여 회원들의 격려 덕분에 지금의 참여연대가 가능했다.
‘자신이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청년마을에 들어올 수 있다.’ 회원모임 청년마을의 회칙이란다. 청년시절 십 년의 세월을 창립 전부터 용산시절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참여연대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밤새워 함께 고민해준 김선웅 회원. 10년의 세월이 지나 본인은 이제 장년이라며 다음 세대 청년들에게 이후를 맡긴 청년마을 OB(Old Boy)멤버라고 말하는 사람.
자주 만나는 친구일수록 할말이 더 많다고 하던가. 참여연대가 가는 길을 옆에서 같이 걸어간 김선웅 회원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는 참여연대 회원으로 따로 가입한 것이 아니라 참여연대를 만들고자 했던 세 그룹 중,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인 연합(이하 참사연)에서 활동을 했었고 이후 자연스럽게 참여연대 회원의 형태가 되었던 것이다.
아이와 함께 성장한 참여연대 10년
참여연대가 10년째 활동한 것을 회원으로서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대견하죠. 제 큰애가 13살입니다. 참사연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 참여연대 10주년이 되는 과정하고 거의 비슷할 겁니다. 어떤 부모나 같은 마음이겠지만, 건강하게 자라나 준 것에 굉장히 대견한 것처럼 참여연대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대견하고, 또 애를 보면서 이 놈이 더 커서 어떤 좋은 일을 하고 기대를 하는 것처럼 똑같이 참여연대에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10주년을 맞은 참여연대의 의미는 임원, 간사 그리고 회원의 입장에서 각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회원으로서 10주년을 어떤 의미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또 무엇을 돌아보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같은 느낌과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좋지 않은 의미일 수도 있지만, 처음에 세웠던 원칙과 생각들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동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뜻이나 생각은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이제는 형식적인, 내용적인 측면에서 다르게 모색할 시점이 됐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10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10년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분명히 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10년 전 1994년의 오늘과 2004년의 오늘은 분명히 틀리다고 보여지거든요. 제 스스로도 그렇고요. 그렇다면 변화된 환경, 조건에 맞춰서 형식과 의견을 내보여야 하죠. 변화가 필요하다면 또 다른 흐름이 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 집중화된 활동이 중심이었다면 이것을 분산시킴으로써 이미 참여연대에 관심을 갖고 들어와 있는 사람들 외의 사람들도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가까이 올 수 있게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하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형식과 내용들이 조금은 변화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그래야 또 10년에 대한 기대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고 얼마 전에도 생각했습니다.”
참여연대가 이룬 성과가 많아 도움이 됐다는 칭찬과 격려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관료화 됐다는 일부 지적도 있는데요.
“관료화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관료주의가 돼버려서 모든 사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면 문제가 되겠죠. 조직이 커지고 일이 많아지면 자원을 효울적으로 분배를 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차원에서 일정부분 관료화가 필요하지만, 정형화된 스타일을 고수하고 그 관료화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들이 올바른 기준을 가지고 중심을 잡지 않으면 힘든 일일 겁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기업이, 정당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여유와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더 잘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관료화와 그러한 여유들은 어떻게 보면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가져가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10년 역사 ‘청년마을’
참여연대엔 많은 회원모임이 있지만 자치모임인 만큼 스스로 왕성한 활동을 해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봅니다. 10년의 역사를 가진 회원모임, 바로 ‘청년마을’입니다. 청년마을 초기멤버시죠? 청년마을이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처음부터 청년마을이 생겨난 것은 아니었어요. 조직 내 시민위원회 산하에 청년위원회라고 청년들의 회원모임이 만들어졌었어요. 그 때 저에게 첫 청년위원장작이 억지로 맡겨졌고, 자연발생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했었어요. 과거 학생운동을 했던 그룹의 사람들도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들어오는 친구들, 전혀 상관없이 돈 벌어가며 직장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뭔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오신 분들도 있었고,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이 오는 경우도 많았죠. 1년 정도 운영되면서 뭔가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들을 동시에 여러 사람들이 한 것이죠. 조직 산하의 위원회 성격이 아닌 회원들이 스스로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원론적 의미에서 회원모임을 만드는 것이 옳다는 의견들이 워크숍을 통해 모아졌죠.
1대 총장인 최민섭 선배를 중심으로 청년위원회 활동했던 사람들이 청년마을로 옮겨감과 동시에 회원으로만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같이 참여를 하게 됐고, 약 30-40명 이상 되는 인원들이 모여 청년마을이 생겨난 것이죠. 일부 간사들도 청년마을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간사들과 회원들 사이가 형, 아우 하면서 편하고 재밌게 시작했습니다.”
청년마을은 단순히 친목도모 커뮤니티 모임이 아니라 사회발전에 힘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는 마치 하나의 조직, 단체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청년마을 촌장직을 할 때도 모토 비슷하게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재미’입니다.
절대로 억지로 못합니다. 지금까지 청년마을이 가져왔던 내적 재미가 동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나서 부담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또 술 한잔하면서 개인적 고민에서부터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청년마을을 이렇게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재미’라는 요소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재미있는 얘기 해드리지요. 저희 큰애가 유모차 타던 시절부터 최근까지 청년마을 뿐 아니라 참여연대 행사에는 대부분 참석을 하면서 참여연대가 뭔지 모를때는 ‘용감한 사람들 모이는 곳’이라고 표현을 하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알게 됐나봐요. “아빠는 거기가면 되게 재밌지?”라고 얘길하더라고요. 옆에서 보면서 느꼈던 거죠.
여기에 어떤 목적의식이나 과제를 강하게 부여했을 경우에는 자칫 깨지거나 흔들리기 쉽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화제가 되는 부분들을 본인 스스로가 개발하고, 밝혀내고, 서로 얘기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계속 운영되고 지속되는 것이 장수할 수 있고, 앞으로 또 밑에서 커오는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는 그런 장이 될 수 있겠다란 생각을 해요.”
보람된 일이라면….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했듯이 앞으로의 10년도 참여연대와 함께 할 생각인지요.
“오히려 가장 보람됐다라는 것으로 질문내용을 바꾸자면, 저희 애예요. 갓난쟁이서부터 엄마 아빠손에 끌려 다니면서 북한어린이돕기 옥수수죽을 끌이면 같이 국자를 넣어 짓고, 외국인노동자 송년의밤을 하면 직접 카레라이스 퍼서 주고, 독거노인돕기 할 때는 함께 식판 들고 나르고, 집회나오면 앞에 나가 어른들 하는 행동 보면서 박수치고, 왜 저렇게 하는지 질문하고….이러면서 10년을 함께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희 애가 공부는 못해도 잘난 것 없어도 건강하게 자랐다는 게 보람됩니다. 그리고 앞으로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춘기시절을 지나며 고민하겠죠. 이 애를 위해서라도 최소한 나중에 제가 힘없고 약해졌을 때, 그래도 우리 아빠는 이것 하나만큼은 나한테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조금 더 확대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하자면, 후세대의 사람들은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편안하고 바람직한 사고로 생활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기의견이나 주장을 얘기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와 제도, 상황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그것이 사회발전이 아닌가 싶어요. 이것이 제가 예전부터 생각하고 바랐던 사회상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것을 실천하고 싶어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참여연대의 방향도 이 생각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똑같은 열정과 힘, 느낌을 가지고 함께할 것입니다. 그래야 저희 애가 아빠는 배신자란 얘긴 안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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