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근거도 분명하지 않으면서 사람들 사이에 뿌리깊이 자리잡은 도그마(dogma)가 있다.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과 성토도 그 하나다.

하지만 ‘외국자본 폐해론’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부쩍 목소리가 높아진 외국자본 폐해론의 문제점을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짚어보면서 외국자본과 재벌 규제에 대한 시각을 점검해 본다.



5% 룰’ 보도로 불거진 FT에 대한 비난 논조

작년 말 국회는 기업에 대한 과도한 경영권 위협을 완화하기 위해 증권거래법을 개정하여 특정 회사의 지분을 5% 이상 갖게 되는 경우 금융감독원에 보유 목적과 자금의 출처 등을 밝히도록 했다. 문제는 영국계 신문인 파이낸설 타임즈(FT)가 이를 국수주의라고 비판한데서 시작됐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이에 대해 악의적 보도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발 더 나아가 FT가 영국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성 보도를 낸 곳도 있다. 어떤 인터넷 언론은 외국자본에 대한 세무조사를 비판적으로 본 한 신문사를 ‘외국자본의 이익 대변자’로 부르기도 했다. 재경부나 금융감독위원회의 대응수준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FT 기사의 원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FT가 “(한국정부의) 외국인 투자자를 원한다는 언행과 그들을 향한 행동 사이에 불일치가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했음을 알 수 있다. FT가 기사화한 5% 규정이나 진로나 우리은행 매각 과정에 대한 불만의 본질은 우리 정부가 시장에 보내는 불확실한 신호에 있다. 필요한 것은 기사에 대한 과민반응이 아니라, 시장에 정확한 신호를 보냄으로써 정부 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말끔히 해소하는 것이다.

외국 언론의 지적에 대한 신경질적인 대응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보자. IMF 환란위기 직전 FT를 비롯한 외국 언론들이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경고했을 때 관료집단과 언론의 반응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은 남미와 다르다는 이른바 ‘펀더멘털론’을 내세워 이같은 경고를 무시했던 것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외국 언론과 외국자본의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들어주는 사대주의적 태도도 문제지만, 거꾸로 무조건 이를 배척하는 태도 역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고로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 않았는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또 하나의 담론은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 유출론이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몇 년 동안 정부는 별다른 자격심사 없이 외국자본에게 국내 기업의 인수를 허용했다. 그 과정에서 외국자본에 대한 감독권(예컨대 금감위의 대주주 자격심사나 국세청의 세무조사)을 소홀히 행사했다.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도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문제는 투기자본의 국부유출을 강조하는 것이 우리가 외환위기 이후 어렵사리 도입한 기업 감시장치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투기자본의 국부 유출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국내 자본시장의 개방으로 인한 외국자본의 지분 상승 외국자본의 과도한 배당 요구나 경영권 위협 기업의 투자 위축 과소 투자로 인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 훼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성장잠재력의 훼손과 기업의 투자 위축을 막기 위해 총수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여기서 나온다. 재벌총수가 갖고 있는 주식과 일반 주주의 의결권에 차등을 두는 주식의 발행을 허용하거나 출자총액을 폐지하자는 주장들이 대표적인 예다.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유출론의 진실

하지만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은 외국자본의 지분상승이 과도한 배당 요구로 이어진다는 국부유출론의 핵심 주장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학계의 연구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배당성향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고, 배당은 외국인의 지분 비율보다는 세제나 해당기업의 성장성과 투자기회와 같은 변수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에 대체로 합의하고 있다. 실제로 기업의 배당에 대한 실증연구(박경서, 「상장회사 배당 및 유상감자 제도 개선방안」,2004 )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에는 외국인이 배당을 통한 자본 회수에 관심을 보였으나 경제위기 이후 국내기업의 경영투명성이 높아지고 경제구조가 안정화되면서 배당에 대한 압력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으며 “국내 상장기업의 배당 형태에 대한 외국인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으로 나타나며, 일부 증권사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과도 배당은 예외적 현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배당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에 대해서도 달리 보는 시각이 있다. 투자가 의미 있는 것은 그것이 고용으로 이어져, 국민 소득을 늘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정부가 재계의 경영권을 방어해주는 대신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사회적 타협’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변화한 우리나라 대기업의 생산형태를 간과한 주장으로서 실현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50대 대기업의 매출(67.8% 증가)과 영업이익(215% 증가)은 크게 늘어났지만 직원 수는 오히려 소폭 줄어들었다(-0.4%). 구조조정과 분사 등으로 기업의 수익은 늘어나지만 고용이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1% 경제성장 때 생기는 취업자 수가 과거에 비해 줄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보고(표 1 참조) 역시 이런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기업의 해외이전 등 변화된 사업 환경은 대기업들에게 과거와 같은 고용 창출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 대기업보다는 고용 효과가 높은 부품 소재 중소기업을 육성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결국 투자 확대를 위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묵인해주고 시장의 감시기능을 무력화시키면서 재벌의 경영권을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변화에 대해 무지하거나 다른 의도로 무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외국자본 폐해론을 바탕으로 정책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검증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근거로 성급하게 정책을 변경시킨다면 그 과실은 국민이 아니라 약 4%의 지분으로 수많은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소수의 재벌 총수에게만 돌아갈 우려가 크다.

최한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팀장
2005/05/01 00:00 2005/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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