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이익 위해 경제정의 저버린 사법부”
2004/2004년 08월 :
2004/08/01 00:00
삼성전자 전환사채발행무효소송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전환사채(이하 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이하 BW)는 원래 기업의 자금조달을 다양한 경로로 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재벌의 경영권 방어.강화 및 편법증여의 용도로 악용된 사례가 많았다.
삼성전자 사모CB 역시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97년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씨가 대부분 인수한 삼성전자 사모CB는 인수자에게 막대한 시세차익을 보장할 뿐 아니라, 발행 자체가 재용 씨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즉 이재용 씨는 삼성전자 외에도 제일기획과 에버랜드(당시 삼성중앙개발), 삼성SDS에서 발행한 CB, BW의 인수를 통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확실하게 승계하게 된 것이다.
참여연대는 97년 6월, 삼성전자의 CB발행이 이재용 씨에게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한 것으로, 결국 소액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친다는 이유로 CB발행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수원지법이 CB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과 달리 본안 소송에서 서울지법과 고법은 잇달아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특히 서울고법은 2심 판결에서 CB 발행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으며, 전환가격이 염가발행됐고, 발행목적이 이재용 씨에 대한 경영권 승계에 있음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이미 신주가 발행된 상태라 무효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참여연대는 즉각 대법원에 상고했으며 이후 2년여에 걸쳐 3심이 진행됐다. 그러나 지난 6월 25일 대법원이 선고한 판결은 2심보다도 더욱 납득하기 힘들다.
우선 대법원은 CB발행무효소송은 사채발행 후 6개월 이내에 제기해야 하므로, 무효를 주장하는 이유가 6개월 후에 추가되는 경우에는 “굳이 살펴볼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참여연대가 항소심 도중 CB발행을 결의한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거나 최소한 성원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발행무효 이유에 추가한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 검토조차 될 수 없었다. 이러한 논리는 사실상 위법사항을 제대로 은폐하기만 하면 차후에 법적 책임을 물 수 없다는 것과 다름없다.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궤변이다.
또한 이미 2심 판결의 문제로 지적된 “거래 안정성을 위해 무효로 할 수 없다”는 판시를 그대로 인용하고, 전문가의 평가에 의해 현저히 낮다고 판명된 전환가를 ‘다소 낮은 가격’이라고 모호하게 넘어가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로 원고의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참여연대는 소송 당사자로서 재판 결과를 수용하지만, 대법원이 경제정의보다 재벌그룹 지배주주 일가의 손을 들어주는 길을 택한 점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기자간담회를 통해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기득권자의 이익을 위해 법질서에 반하는 판결은 심각한 문제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참여연대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 필요성을 확인하고, 향후 법원의 비상식적 판례에 대한 모니터 및 공개운동을 벌이는 등 사법감시 및 개혁운동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무려 7년간 진행된 소송은 아쉽게 마무리됐지만, 이 사건을 통해 재벌 그룹의 편법적 경영권 승계 문제를 사회적 공론화하고, 일부 법제도를 정비하게 된 것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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