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로스타미의 ‘지그재그 삼부작’ 재개봉


영화와 국민국가의 동형성은 여러 번 언급되어 왔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거대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나라가 반드시 왕성하게 영화문화를 형성해온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규모에서의 민족국가의 형성과 경제성장과정의 불균형성과 마찬가지로 영화산업 또한 불균등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러한 불균등성은 기술 수준의 차이, 문화의 산업화 정도,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복 욕구, 국가 권력의 개입과 영화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관심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세계 영화계에는 큰 변화가 발생하는데, 무엇보다 호주, 대만, 중국을 위시한 영화 신흥국들이 등장해 새로운 영화미학을 탄생시킨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신흥국가의 하나가 이란이다. 90년대를 거치면서 이란영화는 국제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세계의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대표작인 ‘지그재그 삼부작’이 곧 재개봉될 예정이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무엇보다 그 사실성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의 영화는 프로 배우가 아니라 비전문 배우들을 기꺼이 영화에 참여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관객들은 화면에 등장한 아마추어들의 사실적인 연기에서 색다른 놀라움을 맛보게 된다. 키아로스타미는 자신의 구상을 고집하기보다는 아마추어의 실제 캐릭터에 맞추어 각본 없이 작품을 연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특징은 ‘지그재그 삼부작’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지그재그 삼부작’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나무 사이로>의 세 편으로 구성된 연작 영화라 할 수 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실수로 친구의 공책을 갖고 집에 돌아간 소년이 그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지그재그의 경사면을 몇 번이나 왕복하면서 이웃 마을의 친구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단순한 구성 안에 영화는 미묘한 긴장감을 담아낸다. 한가롭게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 소년의 절박한 심정은 전해질 길이 없고, 아무리 찾아도 친구의 집은 쉽게 발견되지 않기에 영화에는 기묘한 모험과 서스펜스의 기운이 흘러 넘친다.

두 번째 작품인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마을에 발생한 대지진 이후에 감독과 아들이 소년의 소식을 물어 재해지역을 방문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마을 사람들의 재건 노력이 담담하게 그려진 다큐멘터리 화면이 주를 이루지만 이런 비참한 현실에 마을 어른과 아이들이 월드컵 축구에 몰두해 있는 일상의 삶이 겹쳐진다. 영화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보인 예의 산 표면을 자동차가 지그재그로 오르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세 번째 작품인 <올리브나무 사이로>는 전작에서 대지진의 다음날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의 에피소드를 픽션화한 것으로 청년과 아가씨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세 편의 영화는 각각 우정, 인생, 연애를 테마로 하고 있다. 세 편 모두 다큐멘터리의 기조를 띠고 있지만 영화 대부분의 장면은 또한 철저하게 연출된 것이다. 아이들의 표정과 마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날 것’의 느낌을 주면서 영화의 원초적인 감동을 제공하고 있지만 단순한 표층 밑에는 주도면밀한 구성과 연출이 자리잡고 있다.

키아로스타미의 연출이 지닌 특이성은 기존의 영화와 달리 주된 갈등이나 이야기가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도 결코 종료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감독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영화나 결론을 내는 영화를 나는 믿지 않는다. 결말을 짓지 않으면서 극장을 나와도 관객의 머릿속에서 계속되는 영화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다”라고 말한다. 그의 영화에서 사건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표층의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머리 속에서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키아로스타미가 픽션에 근거해 아마추어 배우를 기용, 다큐멘터리와 같은 화면을 만들어내기에 관객들은 사실과 허구의 무경계성 앞에서 적지 않게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 없음은 또한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는 소박하고 단순한 영화와 만나는 기쁨을 동반하는 혼란이기도 하다. 영화의 장면들은 지극히 담담한 묘사로 관철되고 있지만 그 소박한 맛 때문에 신선한 충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의 영화를 특징짓는 지그재그의 운동 또한 직선적인 이야기 구조를 탈피하는 생의 운동이며 영화 자체가 지닌 고유한 운동이기도 하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언뜻 아동영화처럼 보이는데, 이는 90년대 이후 이란 영화의 일반적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 혁명 이후 영화를 검열한 체제에서 유일하게 용서된 장르가 아동영화였기 때문이다. 키아로스타미 문하에서 이란의 많은 감독들은 아이를 주인공으로 다소 소박해 보이는 천진난만한 스타일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끝없는 이데올로기적 감시 체제에 바람구멍을 연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영화는 더 미묘한 세계와 만나게 된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서 아이들은 어른보다 덜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잘 보고 더 잘 들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아이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사태를 지켜보며 결코 함구하지 않는,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시대의 증인인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훌륭한 영화는 적시에 관객을 만나지 못하고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시기를 맞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아울러 ‘다시 한번’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관객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키아로스타미 영화의 재개봉은 새로운 영화가 출현하는 순간의 환희가 무엇이었으며, 지금 이 순간 그의 영화가 지닌 온전한 미학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김성욱 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2005/05/01 00:00 2005/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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