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오월의 노래'
2005/2005년 05월 :
2005/05/01 00:00
다시 5월이다. 유난히 힘겹게 넘어온 봄날, 꽃잎 지고, 기억은 시든다. 붉은 동백 떨어진 자리에 나무 그림자 짙다. 다시 5월, 나무 그늘에 앉아 조선 말기 지식인 이덕무의 짧은 글 한편을 생각한다.
“깊은 밤중인데 이웃에선 무슨 즐거운 일이 있는지 연신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건너온다. 성근 창틈으로는 눈가루가 날아와 책상 위로 떨어진다. 싸늘하게 식은 화로의 재 위에 뜻 모를 낙서를 하다가 왁자한 웃음소리에 고개를 든다. 벽 쪽을 보니 웬 수척한 사내의 무거운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제 그림자를 보며 한 물음을 던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5월이 오면, 한번쯤은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80년대를 푸르른 기상으로 살아가던 우리에게, 오월은 이덕무의 그림자가 비친 벽처럼 삶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나태와 안일에서 번쩍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게 만드는 죽비소리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노래소리 들리지 않았다. 붉은 꽃잎 피었다 지는 모습 보이지 않았다. 각성은 무너지고 기억은 희미해졌다. 시대가 변한 것인가 내가 변한 것인가. 나는 지금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학살의 야만과 야수의 발톱, 피의 전투와 죽음의 저항 앞에서 풀잎과 바람과 서정을 노래하지 말라는 시인의 피맺힌 절규를 잊지는 않았다. 서정을 노래하기에 세상은 더욱 사납고 복잡하다. 자본과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역사와 인간의 자리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저항과 투쟁을 노래하기에 상대할 적의 정체는 점점 더 불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잔치는 끝나고, 오월의 간절한 염원은 이루어진 것일까.
얼어붙은 대지가 봄볕에 녹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난다. 앙상한 것은 앙상한 대로, 초라한 것은 초라한 대로, 상처는 상처대로, 그것이 만물의 본 모습이다. 아름다움이란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 상태를 이르는 것이다. 시대와 역사를 밀고 나가는 힘은 결국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성찰하며, 변화 속에서 진로를 수정하면서 끝까지 진보하려는 불굴의 인간정신에 있을 것이다.
오월의 정신에는 연민과 슬픔을 정직하게 간직한 인간의 서정과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투쟁정신이 녹아 있다. 연민이 없으면 분노도 없다. 연민이 없으면 투쟁도 없다. 투쟁 없는 연민은 무력하다. 투쟁하는 연민만이 진정한 연민일 것이다. 투쟁하는 연민, 연민을 담은 투쟁 속에서 역사가 살아나고 사람이 꽃피는 것이다. 전사로 살고자 했던 시인은 상처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다. 목적보다 과정의 섬세함과 숨결을 듣고 있었다. 무언가를 손에 움켜쥐려 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운동은 성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 주고 싶다”
먼지바람 어지러운 이 오월에 ‘고목’처럼 늙어가는 이 몇이나 되겠는가. 우두커니 서 있는 천년 나무의 우직함으로 살아가는 이 누구겠는가. 오월의 벽에서 흔들리고 있는 제 그림자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깊은 밤중인데 이웃에선 무슨 즐거운 일이 있는지 연신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건너온다. 성근 창틈으로는 눈가루가 날아와 책상 위로 떨어진다. 싸늘하게 식은 화로의 재 위에 뜻 모를 낙서를 하다가 왁자한 웃음소리에 고개를 든다. 벽 쪽을 보니 웬 수척한 사내의 무거운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제 그림자를 보며 한 물음을 던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5월이 오면, 한번쯤은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80년대를 푸르른 기상으로 살아가던 우리에게, 오월은 이덕무의 그림자가 비친 벽처럼 삶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나태와 안일에서 번쩍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게 만드는 죽비소리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노래소리 들리지 않았다. 붉은 꽃잎 피었다 지는 모습 보이지 않았다. 각성은 무너지고 기억은 희미해졌다. 시대가 변한 것인가 내가 변한 것인가. 나는 지금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학살의 야만과 야수의 발톱, 피의 전투와 죽음의 저항 앞에서 풀잎과 바람과 서정을 노래하지 말라는 시인의 피맺힌 절규를 잊지는 않았다. 서정을 노래하기에 세상은 더욱 사납고 복잡하다. 자본과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역사와 인간의 자리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저항과 투쟁을 노래하기에 상대할 적의 정체는 점점 더 불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잔치는 끝나고, 오월의 간절한 염원은 이루어진 것일까.
얼어붙은 대지가 봄볕에 녹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난다. 앙상한 것은 앙상한 대로, 초라한 것은 초라한 대로, 상처는 상처대로, 그것이 만물의 본 모습이다. 아름다움이란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 상태를 이르는 것이다. 시대와 역사를 밀고 나가는 힘은 결국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성찰하며, 변화 속에서 진로를 수정하면서 끝까지 진보하려는 불굴의 인간정신에 있을 것이다.
오월의 정신에는 연민과 슬픔을 정직하게 간직한 인간의 서정과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투쟁정신이 녹아 있다. 연민이 없으면 분노도 없다. 연민이 없으면 투쟁도 없다. 투쟁 없는 연민은 무력하다. 투쟁하는 연민만이 진정한 연민일 것이다. 투쟁하는 연민, 연민을 담은 투쟁 속에서 역사가 살아나고 사람이 꽃피는 것이다. 전사로 살고자 했던 시인은 상처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다. 목적보다 과정의 섬세함과 숨결을 듣고 있었다. 무언가를 손에 움켜쥐려 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운동은 성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 주고 싶다”
먼지바람 어지러운 이 오월에 ‘고목’처럼 늙어가는 이 몇이나 되겠는가. 우두커니 서 있는 천년 나무의 우직함으로 살아가는 이 누구겠는가. 오월의 벽에서 흔들리고 있는 제 그림자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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