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 주간 동안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패권경쟁체제가 어떤 밑그림을 그려나갈 것인지를 가늠하는 일련의 사건들과 직면했었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시발로 하여 역사교과서 논란 등을 통과하면서 일본의 우파는 보다 조직적인 집결을 시도했고, 이를 기반으로 매우 도전적이고 팽창주의적인 대외정책의 공세를 펼쳤던 것이다.

일본우파에겐 오로지 패전의 치욕만 존재할 뿐

일본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전전(戰前)의 질서”를 복구하면서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맹주로서의 위치”를 확인하는 동시에, 국제 외교적 발언권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과정임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는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진출이라는 그동안 절차부심 해왔던 대외적 과제 해결과 함께, 내부적으로는 전쟁 수행의 권리를 갖기 위한 현 평화헌법 개정이 그 주요 목표점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이는 주변국들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는 점을 충분히 고려한 끝에 나온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우파의 계산은, 밖에다가 선제 도발을 하고는 이를 일본 민족주의의 응집계기로 삼으려는 것에 모아지고 있다. 이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 전개과정에서 동일하게 반복됐던 전략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1868년 이후 명치유신의 구체적 절차에 들어간 근대 일본은‘구미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한 방책의 모색’이라는 논리를 통해 조선반도에 대한 장악과 지배를 꾀했으며,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팽창주의적 민족주의 집결을 강화해나갔던 것이다.

일본 문제의 근본은 미국

일본은 이를 토대로 하여, 국가체제를 침략과 정복, 그리고 식민 지배를 위한 모습으로 변화시켜갔다고 하겠다.

일본에게‘청-일 전쟁’은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청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킴과 함께 아시아의 중화주의적 축을 무너뜨린 쾌거인 동시에 문명이 야만을 이긴 사태로 호도됐다.“러-일 전쟁”의 경우는, 아시아를 백인 종족으로부터 방어해낸 싸움이자 일본의 근대적 발전의 수준을 국제적으로 확인시킨 역사의 전환점이 된다. 조선반도에서 청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구축하며, 동북아시아 전반에 걸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는 동시에 영국,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기반으로 한 이 일련의 전쟁은 일본 제국주의 강화의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 모든 상황을 ‘안보 위기에 대한 방어적 대응’과 ‘근대일본의 국제적 합법성을 가진 행동’으로 정당화했던 것이다. 결국, 일본 우파에게는 이전의 침략적 제국주의 지배 체제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패전(敗戰)의 치욕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기에 이들 일본 우파로서는 패전의 충격과 치욕을 아직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일본사회의 현실을 어떻게든 반전시키고,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이 이른바‘대동아 공영권’을 재현하면서 주도적 위치에 도달하는 것이 역사의 이성적 발전과정을 완료시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과정을 더더욱 강화, 촉진시키고 있는 것은 일본을 동북아시아에서 주요 군사기지 심장부로 삼고 동북아시아 사령부를 건설하려는 미국이다.

일본의 패전을 가져온 가장 결정적인 세력이 오늘날, 일본을 새로운 맹주로 부상시키는데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한-미 동맹체제에 대한 전환기적 변모를 요구하게 하고 있는 근거가 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은 한-미-일 세 축을 중심으로 중국 포위 전략을 장기적으로 진행시키고 있으며, 그 최전선에 일본을 앞세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주한미군은 소위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의 역할 확대전략을 통해 한반도 남쪽을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의 주요 거점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이 뒷받침되고 있는 일본 우파의 대외정책은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수용하고 중국과의 적대전선을 형성하는 쪽으로 몰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국의 전략과 일본의 구상은 생각만큼 여의치 않다는 것이 이번 동북아시아의 반일 시위를 비롯한 일본에 대한 비판여론에서 드러났다.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서 있는 한반도

한국은 일본에 대하여 매우 강력한 비판세력으로 자신의 대외적 정체성을 확고히 했고, 중국은 일본의 공세적 팽창주의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점을 또한 분명히 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에게 있어서 한-미-일 연합 동맹 체제를 기반으로 한 중국 포위 전략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자 일본의 국제적 위상 강화에 중대한 경보가 울렸음을 뜻한다.

실로, 오늘날 미국의 일방주의적 선제공격 전략을 이끌고 있는 신보수주의자들의 역사적 경험과 국제 정치 철학은 일본의 우파와 그대로 겹쳐 있다. 일본의 우파에게 있어서 2차 대전 패전의 경험이 지속적으로 일본 팽창주의를 강조하는 역설적 동력이 되고 있다고 한다면,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에게는 베트남 전쟁 패전 이후의 경험과 동일한 기능을 하고 있다. 군사력 동원에 대한 내부의 정서적 거부감을 비롯하여, 미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한 부정적 비판을 극복하고 미국의 안전을 위하고 미국의 가치관(민주화 전략)을 확산하려는 국가체제의 강화는, 일본의 우파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대목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 두 세력의 손잡기, 동맹적 연대는 서로 간에 아무런 갈등이 없다.

따라서 어떤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전쟁이 필요하다면 전쟁을 하겠다는 의지를 굳게 가진 이들 두 세력이 연합전선을 결성하고 있는 상황이 다름 아닌 동북아시아 전반에 걸친 안보 위협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독도문제와 역사교과서로 촉발된 우리 내부의 반일 시위는 이러한 지점까지 그 인식이 발전하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으며, 중국의 반일시위와 연대할 수 있는 공간도 그래서 포괄적으로 확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 내부에서는 이제 일본과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어떤 목표를 겨냥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이전에 비해 보다 명료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현실이다. 기존의 한-미 동맹 기능변화가 우리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다든지, 아니면 “침략동맹”으로 진행하는 것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내부의 동력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문제의 근본에는 미국이 있으며,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자세가 보다 뚜렷하게 정리되어갈 때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는 이루어져나갈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을 더더욱 절박하게 인식, 동맹의 고리로 이어지고 있는 전쟁의 기세를 꺽을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김민웅 성공회대학 사회과학부 교수
2005/05/01 00:00 2005/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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