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고 한국보다 시민참여가 활발하다고 평가받는 일본.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의 보수 우익화 현상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왜 시민사회가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먼저 일본 시민사회운동 내부, 그리고 정치와의 관계 속에서 일본시민사회운동에 대해 들어본다. 편집자주

어느 나라나 사회운동의 호칭은 학문적 정의와는 다르게 그 사회의 역사와 경험을 배경으로 특수한 의미가 부여되면서 정립된다. 한일 두 나라는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시민운동’ 또는 ‘시민운동단체’라고 할 때 단어는 똑같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에 일본 시민사회운동의 문제들이 집약되어 있다.

사회운동의 정당계열화, 정치계와 시민사회운동의 이간(離間)

노동운동은 사회운동 중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사회운동의 역사적 전개과정도 그렇고, 지금도 동원 가능한 많은 조합원과 재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들은 노조가 가지고 있는 조직력과 표를 중시해왔다. 최근의 투표율 저하 추세에 따라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조직표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실제로 노동운동은 사회적인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구심력이 저하된 이유 중 하나로, 2차대전 직후부터 노동운동을 비롯한 모든 사회운동을 공산당에 계열화시키려는 미숙한 사회운동관과 잘못된 조직방침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노동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우부리엘리즘(노동운동 지상주의)’도 적잖은 갈등과 혼란을 일으켰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950년대에 옛 소련이 핵무기 개발경쟁에 몰두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 보기 드물게 범국민적으로 펼쳐졌던 평화운동에는 하나의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사회주의 진영의 핵무기는 계급적인 무기이기 때문에 깨끗한 핵무기”라고 주장하는 공산당계열의 단체들과 “평화운동은 모든 핵무기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들간의 논쟁이었다. 핵무기를 누가 갖느냐에 따라 깨끗한 무기로 변한다는 논리가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는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이러한 독선주의 때문에 범국민적인 평화운동이 분열되고 말았다. 노동운동, 여성운동 청년운동, 학생운동 등 모든 영역의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 영역의 운동에 이러한 분열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으며 시민들이 운동참여를 기피하는 요인이 되었다. 대중평화운동은 아직도 50년대의 분열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70년대에 들어 고도경제성장의 부산물로 각지에서 공해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미나마타병 피해자들의 운동은 일본 공해반대운동의 상징이다. 당시 일본 정계는 ‘혁신지자체’들이 대거 탄생해 사회당과 공산당의 좌파연립정권의 성립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미나마타병 피해자들의 투쟁에 대해 노동운동계에는 이런 시각이 있었다. “공해피해자들이 장애에 대해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프티부르조아(소자산계급)적인 운동이다. 자민당 정권의 잘못된 정책이 가져온 피해는 사회당-공산당 좌파연립정권이 성립되야 지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반공해운동도 사회당-공산당 좌파연립정권 구현을 위한 운동에 종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경직되고 미숙한 사회운동관과 노동운동지상주의는 정당과 노동운동부터 시민운동의 이탈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정치계와 시민사회의 거리가 멀어졌지만 시민운동단체들도 저마다 자기 단체의 틀에 갇힌 채 연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분열을 초래했던 빈곤한 사상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관용의 정신, 연대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전공투 세대의 ‘하방(下放)’과 시민운동

일본시민사회단체의 지도자들은 연령이 대개 50대 후반부터 60대에 몰려있다. 60년대는 ‘정치의 계절’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일본 학생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이다. 안보투쟁을 했던 안보세대, 68년을 정점으로 활발했던 전공투(全共鬪)운동에 참여했던 전공투세대라고 불리는 세대가 있다. 그 지도자들 중에는 대기업이나 관료사회에 들어간 사람들도 많지만, 중앙정치에 실망해서 지방도시로‘하방’했던 이들도 적지 않다. 70년대, 80년대 일본 시민운동, 지역주민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주로 이 세대에 속한 사람들이다.

일본은 특수하게 생활협동조합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나라다. 생협 중에서도 가장 활동적인 생활클럽생협의 지도자들, 그리고 생협을 모체로 지방의회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에 시민이익을 대표하는 정치인을 내보내는 이른바 ‘대리인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들도 이 세대들이다. 생활 공간인 지역사회에서의 창의적인 프로그램이나 활동을 고안하고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운동을 하는 시민사회의 인재들은 거의 전공투 세대다. 공투는 당시 정당에 종속되어 있었던 당파(黨派)학생운동에 반발해 무당파(無黨派)학생들이 만든 학생운동조직이었다. 전공투 세대에서도 지방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나 시민운동에 들어간 사람들은 특히 정당과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의 ‘시민운동’은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융성했던 사회운동이다. 독립적인 시민 개개인이 모여 지역을 넘어서 평화, 인권, 공해 반대 등 시민으로서 반대와 항의를 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운동은 정당으로부터 자유롭게, 노조보다 유연하게 개개인의 자발적 참여와 자유로운 토의를 통해 결정해나가는 새로운 사회운동 집단으로 등장했다.

일본에서 시민운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작가 오다 마코토 등이 중심이 된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베평련)’이다. 베평련과 노조운동을 비교해보면 일본 시민운동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노동조합은 정당에 계열화되어 경직된 모습을 보여준다. 선거 때에는 사회당, 공산당 표밭 노릇을 하면서 노동계 대표들을 각 정당 후보로 정치계에 보내는 대신 정당의 방침에 좌우된다. 베평련은 중앙정치 상황이나 정당 사정이 어떻든 상관 없이 자기방침, 자기주장을 결정한다. 노조가 대규모 조합원과 재원, 관료적 조직을 갖고 움직이는 반면 베평련은 가두시위 반전신문광고 캠페인 등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다양한 운동을 펼쳤다.

한국에서는‘시민운동’이라는 말이‘시민단체’,‘NGO’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일본에서는 아니다. 일본에서의‘시민운동’은 정당이나 조직된 노조와 달리 시민적 가치를 주장하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평화적인 방식으로서의 항의운동, 반대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의 시민운동은 기본적으로 네거티브 운동이고, 그 이면에는 근대적인 국가관이 공유되어 있다. 시민들이 동의를 해주기 때문에 정부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한편 정부는 인권을 보호하고 행복 추구를 보장해야 한다. 정부는 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공공 사업을 벌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부정부패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국가관이다. 이러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잘못된 정책이나 권력의 잘못에 대해 비판·항의·시정하는 주권자의 권리와 책임을 행사하는 존재가 시민운동인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시민운동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와 NGO(비정부조직)나 NPO(비영리조직)의 이미지에는 차이가 있다.

NGO 와 NPO

NGO(Non Government Organizaiton)는 원래 유엔헌장에 규정돼 있는 개념이고, NPO(Non Profit Organizaiton)는 미국의 세법에서 공익적인 사업을 하는 조직에 면세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실체적으로 보면 둘은 같은 사회조직인데 다른 시각으로 규정을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NGO는 8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했고, 제3세계에 대한 국제협력 및 긴급구호 활동을 추진하는 단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NPO는 90년대 초반부터 시민단체들이 추진해왔던 NPO 법인격 제도화를 위한 운동을 바탕으로 95년에 일어났던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에서 시민단체들의 대활약에 힘입어 탄생했다. 이 때 일본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NPO법이 시민입법으로 제정된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일부 특수한 사람들만 참여하는 협소한 시민사회운동공간을 확대시키는 목적으로 NPO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NPO라는 말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다.

NPO 법인격을 갖는 단체를 협의의 NPO로 규정할 때, 이 NPO중에는 의료복지분야에서 활동하는 단체가 약60%를 차지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상당수가 98년 NPO법이 제정된 뒤에 생긴 단체들이다. 이 때문에 NPO라고 하면 복지사업을 추진하는 단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복지 단체가 많은 것은 고령자 등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개호(介護)보험제도와 관련된 사업자로 NPO법인격을 갖고 있는 단체도 지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운동단체’들은 법인격 취득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시민운동계에는 NPO에 대해 조심스럽게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발상에 사로잡혀 정부의 책임을 포기하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시민단체를 정부의 하청업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 때문이다.

걸프전쟁, 아프간전쟁, 이라크전쟁을 겪으면서 NGO계 일각에서는 정치와 NGO의 관계, NGO의 정치에 대한 책임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정치와 시민사회의 거리가 먼 일본에 있어서 잘못된 정부 정책의 뒷처리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불안감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 NGO들인 것 같다.

필자는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비영리 공익 시민사업자로서의 역할이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문제의 현장에서 필요한 사업이 있으면 정부나 지자체가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필요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사회변혁의 주체로서의 역할이다. 현장에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법, 제도, 운영시스템 등에 관한 전문지식을 동원하여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주체이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역할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교육훈련과 단체 틀을 넘어선 문제의식 교환 및 소통을 통해 시민사회 내부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힘을 기르지 않으면 정부하청업체로 전락하는 위험도 찾아올 것이다.

협의의 NPO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현재 NPO 조직들은 사무국장급이 거의 세대교체 되면서 2세대들이 운영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2세대들의 주요 관심사는 조직 유지를 위한 자금 문제 등에 집중되어 있다. 사회개혁자로서의 문제의식이 약해져 있다는 이야기다. NPO법 제정 이후, 언론에의 노출도 많아지고 자원봉사자들도 늘어났다. 급속히 커진 시민사회활동공간에 비해 시민사회의 능력이 따라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프지만 타당한 분석일 것이다.

일본시민운동, 정치권력에 대한 길항력 키워야

94년 자민당, 사회당, 사키가케의 3당 연립정권 이후 사회당은 몰락했고 정치판이 깨지면서 시민적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게 축소되었다. 자민당도, 민주당도 정책에 크게 차이는 없다. 일본 정계는 자민당이냐, 반자민당이냐라는 대립구도밖에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민당의 사민주의적 정당 근대화도 실패했다. 이러한 정치 구도에서 시민사회적 가치를 정치에 전달하면서 현실 세력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일본시민사회의 정치에 대한 길항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국시민사회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평화헌법 개악, 북한정책 등 시민사회가 정치에 개입해야 하는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손명수 재일교포, 한일시민스퀘어(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교류를 지원하는 단체) 공동대표
2005/06/01 00:00 200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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