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다가와 조선학교, 재외동포를 다시 보는 계기로
2005/2005년 06월 :
2005/06/01 00:00
지난 5월 12일 국내외 29개 시민사회단체는 “도쿄도(東京都)는 에다가와 조선학교 토지에 관한 소송을 취하하고,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 권리를 보장하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비록 짧은 성명서 한 장이지만 이것은 해방 후 60년 간 완고하게 닫혀 있던 빗장 하나를 여는 큰 사건의 실마리가 될 지도 모른다.
도쿄도는 2003년 12월, 에다가와에 있는 조선제2초급학교가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도유지(都有地)를 반환하고, 그 동안의 사용료로 4억 엔을 내라는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냈다. 에다가와는 도쿄도가 1940년 올림픽 개최(나중에 취소됐다)를 위해 대회 예정지에 살던 조선인 노동자 1000명을 강제 이주시켜 형성된 지역이다. ‘쓰레기 매각장의 악취에다 비가 내리면 공동화장실에서 나온 오물로 가득 차 인간이 살기 힘든 곳’인 이곳에서 재일조선인들은 지역을 자치적으로 운영하며 1949년 학교를 세우고 자녀들을 교육해 왔다. 도는 역사적 경위 등을 고려해 1970년부터 20년 간 학교토지를 무상으로 빌려주고 계약이 끝난 뒤에도 학교용지로 계속 사용할 필요가 있으면 협의하여 선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990년 이후 토지불하 교섭이 진행되던 중, 도쿄도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반환소송을 걸었다.
당시 일본 신문도 “교육기관에 대해서는 이례적인 강경조치(아사히 신문, 2003년 11월 30일)”로 평한 이 소송사건은 표면적으로는 토지 사용을 둘러싼 법률 문제이지만, 그 뒷면엔 복잡한 사회적 의미들이 깔려있다. 가깝게는 2002년 9월 납치사건을 빌미로 전개된 일본 사회의 ‘북조선 때리기’에 편승한 것이며 일본의 대표적 극우파인 이시하라 도쿄 지사의 정치적 성향이 개입된 폭거이다. 길게는 1948년 이후 폐쇄·방치·배제의 형태로 지속된 민족학교에 대한 탄압정책의 연장선 위에 있는 사건이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유사헌법 제정, 교육법 개정, 국기와 국가 사용, 교과서 개정, 독도 소유권 주장 등 치밀한 계획에 따라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일본 우경화의 흐름 속에 있는 사건인 것이다.
일본에게 있어서도 북조선과의 국교정상화는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총련계가 지금처럼 살아 있는 한 국교정상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총련계가 무력화되었다고 판단될 때가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은행과 조선학교가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은 불문가지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소송 사건은 1972년의 무상임대계약에 대한 법률적 해석과 일본헌법과 국제인권법상의 교육 받을 권리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의 일부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지원단체를 구성하고 보편적 인권 보장에 대한 일본 사회의 수준을 묻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역사책임을 명분으로 힘을 보태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언론 기사나 학교 간의 개별적 교류는 있었지만, 한국의 시민사회가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선학교 문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해결을 요구하며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왔던 재외동포 문제가 우리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재외동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와 그들은 어떤 관계를 가져야 되는가? 이 문제는 우리사회에 해방의 원점으로 돌아가 역사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
도쿄도는 2003년 12월, 에다가와에 있는 조선제2초급학교가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도유지(都有地)를 반환하고, 그 동안의 사용료로 4억 엔을 내라는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냈다. 에다가와는 도쿄도가 1940년 올림픽 개최(나중에 취소됐다)를 위해 대회 예정지에 살던 조선인 노동자 1000명을 강제 이주시켜 형성된 지역이다. ‘쓰레기 매각장의 악취에다 비가 내리면 공동화장실에서 나온 오물로 가득 차 인간이 살기 힘든 곳’인 이곳에서 재일조선인들은 지역을 자치적으로 운영하며 1949년 학교를 세우고 자녀들을 교육해 왔다. 도는 역사적 경위 등을 고려해 1970년부터 20년 간 학교토지를 무상으로 빌려주고 계약이 끝난 뒤에도 학교용지로 계속 사용할 필요가 있으면 협의하여 선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990년 이후 토지불하 교섭이 진행되던 중, 도쿄도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반환소송을 걸었다.
당시 일본 신문도 “교육기관에 대해서는 이례적인 강경조치(아사히 신문, 2003년 11월 30일)”로 평한 이 소송사건은 표면적으로는 토지 사용을 둘러싼 법률 문제이지만, 그 뒷면엔 복잡한 사회적 의미들이 깔려있다. 가깝게는 2002년 9월 납치사건을 빌미로 전개된 일본 사회의 ‘북조선 때리기’에 편승한 것이며 일본의 대표적 극우파인 이시하라 도쿄 지사의 정치적 성향이 개입된 폭거이다. 길게는 1948년 이후 폐쇄·방치·배제의 형태로 지속된 민족학교에 대한 탄압정책의 연장선 위에 있는 사건이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유사헌법 제정, 교육법 개정, 국기와 국가 사용, 교과서 개정, 독도 소유권 주장 등 치밀한 계획에 따라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일본 우경화의 흐름 속에 있는 사건인 것이다.
일본에게 있어서도 북조선과의 국교정상화는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총련계가 지금처럼 살아 있는 한 국교정상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총련계가 무력화되었다고 판단될 때가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은행과 조선학교가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은 불문가지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소송 사건은 1972년의 무상임대계약에 대한 법률적 해석과 일본헌법과 국제인권법상의 교육 받을 권리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의 일부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지원단체를 구성하고 보편적 인권 보장에 대한 일본 사회의 수준을 묻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역사책임을 명분으로 힘을 보태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언론 기사나 학교 간의 개별적 교류는 있었지만, 한국의 시민사회가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선학교 문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해결을 요구하며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왔던 재외동포 문제가 우리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재외동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와 그들은 어떤 관계를 가져야 되는가? 이 문제는 우리사회에 해방의 원점으로 돌아가 역사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