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한양주택 이야기
2005/2005년 09월 :
2005/09/01 00:00
말복이 지나자 더위가 가시는 것 같았다. 며칠 뒤 다시 장대비가 퍼붓더니 정말로 더위가 한풀 꺾였다. 지구온난화가 무섭기는 하지만 아직은 계절의 흐름이 살아 있는 모양이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위기의 징후에 올바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결국 위기는 재앙으로 폭발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다.
구파발은 조선 중기부터 공문서를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한 파발역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이 주변은 서울의 서북쪽으로 나가는 관문과 같은 곳이다. 다시 말해 서북쪽에서 들어오는 관문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나가는 길은 ‘통일로’라고 불린다. 1972년에 만들어진 이 길은 1990년 자유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임진각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구파발역 주차장의 길 쪽 귀퉁이에는 ‘통일로’라고 쓰인 유명한 돌이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그러나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변은 크게 변했다. 한적한 농촌이 번화한 도시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이명박 시장의 당선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명박 시장이 이곳을 이른바 ‘뉴타운’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허름한 주택을 졸지에 고급 아파트로 만들겠다고 하자 대다수 주민들이 두 손을 들어 환영하고 나섰다. 설령 비싸서 자신이 살 수 없더라도 약간의 목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대 ‘뉴타운’에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외치고 나선 주민들이 있다. 바로 ‘한양주택’의 주민들이다. 구파발역을 지나 수도권 방호벽 바깥에 자리잡고 있는 한양주택은 1978년 박정희의 명령으로 급조된 단층주택단지이다. 어느 날 아침 박정희가 골프를 치러 가다가 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 똥통을 지고 길을 걷던 늙은 농부를 치었다. 똥통이 길바닥에 뒹굴고 똥 냄새가 진동했다. 차에서 내린 박정희는 중요한 선전로인 통일로에 똥통이 뒹구는 현실에 아연했다. 그는 이곳을 깨끗하게 정리하라고 명령했다. 구자춘 시장이 명령을 받들었다.
이렇게 해서 근처에 흩어져 살던 농민들이 모여 살도록 한양주택이 지어졌다. 농민들은 졸지에 땅을 수용당하고 거금을 들여서 한양주택 주민이 되었다. 그리고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민들은 한양주택을 주민 공동체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태주택단지로 가꾸었다. 1996년 서울시는 이곳을 ‘아름다운 마을’로 지정했다. 지금도 한양주택의 입구에는 이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이 은행나무 아래에 서 있다.
이명박 시장은 이곳을 깨끗이 밀어 없애고 고층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주민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예전에 땅을 수용당한 것도 억울하기만 한데, 이제 다시 땅을 수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30년의 세월을 들여서 이곳을 이렇게 아름다운 곳으로 가꾸지 않았는가. 한양주택으로 가자. 그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가을을 느끼며, 한양주택의 소중함을 새기자. 그리고 뉴타운사업과 이명박 시장의 불도저를 세우기 위해 힘을 모으자.
구파발은 조선 중기부터 공문서를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한 파발역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이 주변은 서울의 서북쪽으로 나가는 관문과 같은 곳이다. 다시 말해 서북쪽에서 들어오는 관문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나가는 길은 ‘통일로’라고 불린다. 1972년에 만들어진 이 길은 1990년 자유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임진각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구파발역 주차장의 길 쪽 귀퉁이에는 ‘통일로’라고 쓰인 유명한 돌이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그러나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변은 크게 변했다. 한적한 농촌이 번화한 도시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이명박 시장의 당선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명박 시장이 이곳을 이른바 ‘뉴타운’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허름한 주택을 졸지에 고급 아파트로 만들겠다고 하자 대다수 주민들이 두 손을 들어 환영하고 나섰다. 설령 비싸서 자신이 살 수 없더라도 약간의 목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대 ‘뉴타운’에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외치고 나선 주민들이 있다. 바로 ‘한양주택’의 주민들이다. 구파발역을 지나 수도권 방호벽 바깥에 자리잡고 있는 한양주택은 1978년 박정희의 명령으로 급조된 단층주택단지이다. 어느 날 아침 박정희가 골프를 치러 가다가 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 똥통을 지고 길을 걷던 늙은 농부를 치었다. 똥통이 길바닥에 뒹굴고 똥 냄새가 진동했다. 차에서 내린 박정희는 중요한 선전로인 통일로에 똥통이 뒹구는 현실에 아연했다. 그는 이곳을 깨끗하게 정리하라고 명령했다. 구자춘 시장이 명령을 받들었다.
이렇게 해서 근처에 흩어져 살던 농민들이 모여 살도록 한양주택이 지어졌다. 농민들은 졸지에 땅을 수용당하고 거금을 들여서 한양주택 주민이 되었다. 그리고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민들은 한양주택을 주민 공동체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태주택단지로 가꾸었다. 1996년 서울시는 이곳을 ‘아름다운 마을’로 지정했다. 지금도 한양주택의 입구에는 이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이 은행나무 아래에 서 있다.
이명박 시장은 이곳을 깨끗이 밀어 없애고 고층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주민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예전에 땅을 수용당한 것도 억울하기만 한데, 이제 다시 땅을 수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30년의 세월을 들여서 이곳을 이렇게 아름다운 곳으로 가꾸지 않았는가. 한양주택으로 가자. 그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가을을 느끼며, 한양주택의 소중함을 새기자. 그리고 뉴타운사업과 이명박 시장의 불도저를 세우기 위해 힘을 모으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