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9월호] 박영선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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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박원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작년 12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강의를 맡았다는 핑계를 대고 한 언론이 붙여준 ‘보헤미안’이란 별명을 제 것으로 굳히려는 듯이 무지막지하게 벌여놓은 많은 일들을 툭툭 털어버리고 떠났던 그가 마침내 7개월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다. ‘이제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하며 기다리던 어느 날, “별일 없지요?”라는 그 특유의 목소리를 들었다. 통화를 끝내자마자 이번 호 <아름다운 사람>의 주인공으로 그를 초대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가둬놓아도, 풀어놓아도

그는 석 달만 바깥바람을 쐬고 와도 책 한 권을 펴내는 사람이다.『NGO,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98),『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2000),『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 박원순 변호사의 독일시민사회 기행』(2004)등이 그 증거다. 그랬기에 그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우리에게 또 어떤 유익한 선물을 준비했을지 제일 먼저 우리 회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인터뷰 당일, 유난히 빡빡한 일정 때문에 준비한 자료조차 꼼꼼히 읽지 못해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약속 시간이 되기도 전에 그로부터 “왜 안 오냐”는 전화가 왔다. 그는 30분, 한 시간 단위로 무수히 약속을 잡으면서도 약속이 유효한지 반드시 사전 확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만나자마자 첫 마디가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해요?”다. 이런 구박은 처음이다. 하지만 굴할 순 없다. 그에게서 듣고 싶은 얘기가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책을 열 권 정도 쓰려고 갔는데, 대학 강의 외에 아름다운재단 남가주 지부 만들고 남아공부터 캐나다까지 한국의 시민운동에 대해 강연하러 다니다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많이 못 썼어요. 고문에 대해 일제시대부터 현대사까지 정리했어요.”

미국에서 놀다 왔다며 눙치더니, 그러면 그렇지 그동안 책을 4권이나 써서 출판사에 넘긴 상태란다. 아무도 못 말린다. 그에게 “어딘가에 가둬놓기만 하면 책이 나오겠네요.”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쁜 노트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출판 계획 목록을 보여준다. 대충 훑어보았는데도 나치 청산 문제부터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헌법개정을 포함하여 이미 1권이 나온 『세기의 재판』후속편까지 꽤 구체적이다. 목차까지 잡아 놓은 것은 물론 한국의 지역 시민운동까지 포괄해서 쓰겠다고 구상한 책은 아예 『Mapping Korean Civil Society』라는 제목까지 붙여 놓았다. 지금 힘을 쏟아야 하는 아름다운 재단이나 가게 일과는 관련 없는 주제가 아니냐는 내 뾰족한 시비에 그는 “70, 80년대부터 쓰려고 작정하고 자료를 모으고 있는데, 밀려있는 거예요. 고문은 형법학자나 역사학자, 사회학자들이 다뤄야 하는데. 비극적 역사를 아무도 정리하지 않잖아요.”하고 푸념을 내뱉는다. 누가 빨리 나서야겠다. 그가 자기 일에 시간과 정력을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그의 외유의 대표적인 산물은 앞에 열거한 책보다도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라는 살아있는 조직일지 모른다. 그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재직하면서 쏟아놓은 무수한 아이디어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는 미국의 지역 재단들을 둘러보고 한국 최초의 시민공익재단인 아름다운재단을 만들었고, 일본의 생협을 관찰하고 돌아와서는 아름다운가게를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지혜와 진실은 평범한 이웃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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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새로운 구상은 무엇일까? 다른 이들에겐 꿈으로 남아있을 이상들이 그에게선 언젠가 현실이 된다. 그의 구상을 듣다보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열쇳말이 보인다.

“싱크탱크를 만들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대뜸 어디서 들었냐며 놀란 기색이더니 “그거 하려고 해요”하고 곧 시인한다.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에 끼어 있어서 작아 보이는데 실제로 굉장히 큰 나라예요.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관리 역량이 부족해요. 대통령부터 국회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찰력과 비전, 전문지식이 없잖아요. 정치풍토가 정책 중심이 아니니까 훈련받을 기회가 없었지요.”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한마디 놓치지 않는다.

“시민단체는 워낙 무인지경이니까 깃발 하나 들고 했는데, 반대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다른 세력을 견인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거라고 봐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 정책생산집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것들과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를 탈피해서 좀 더 미세한 부분, 현실에서 적용 가능한 정책이 필요하지요. 또 전문가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평범한 시민들도 나름대로의 자기 영역, 경험에서 비롯된 ‘시민적 지혜’랄까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 걸 모두 모아내야지요.”

아, 언젠가 그가 얘기했던 영국의 창안연구소(The Institute for Social Invention)가 기억났다. 사회에 이익이 되는 창조적이며 과학적인 발상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시민들의 대안 아이디어 소통장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학교의 학급이 지구의 특정 지역을 정해 지속적으로 돌보는 ‘지구입양프로젝트’나 세계사회포럼의 개최지로 유명한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시민들의 생각과 주도로 전망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소신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지혜와 진실은 평범한 이웃에 있어요.”

이 한마디는 그가 새로 꿈꾸고 있는 구상의 실체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더 자세하게 캐묻고 싶었지만, “당장 뭘 하겠다는 게 아니니까 너무 자세하게 묻지 말아요. 아직 초기단계잖아요”라고 비켜간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가오는 지방 선거 때 “실현 가능한 정책을 생산해내면 지자체들이 그 아이디어를 가져가려고 하지 않겠어요”라며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 전모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무뇌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 변화와 대안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론화시킬 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내놓는 아이디어를 잘 정리해서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게 하는 것’이란 그의 구상은 흐름을 조직하는 과정이란 측면에서 아름다운재단의 1%나눔 운동이나 헌 물건을 가공해서 싸게 파는 아름다운가게 운동과 일맥상통한다.

그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것은 지면 낭비일 것이지만, 어떤 글에서도 그가 왜 시민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는지 또렷하게 대답하는 걸 보지 못했다.

“자기 계획대로 되는 게 있나요? 자유의지도 있지만 주변환경도 크지요. 우연으로 감옥 갔다가 거기서 인권 변론하는 사람들 만나게 되었고. 참여연대도 그렇고.”

우연으로 하게 된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혹시 어릴 때 욕심이 많았나요?”

승부욕이 좀 있었단다.

“어렸을 적 귀 당기기 놀이를 했는데 한번도 진 적이 없었어요. 조금만 참으면 다 이기니까요. (하하) 어려운 고비가 많았잖아요? 여건이 좋은 상태에서 저절로 되는 게 운동인가요?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바꿔내는 것이 운동이지요.”

“공직에 가시면 좀 더 효과적이란 유혹도 있을텐데요.”

“이만한 공직이 어디 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체신부나 철도청만큼 공공적인 거 아녜요?”

그의 시원한 답변을 들으며 녹 한 번 먹지 않고 조정에 올곧은 소리를 냈던 조선의 선비 남명 조식을 떠올리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시민운동은 샅바를 잡아야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마지막으로 참여연대에 한마디 해주시지요.”

“잘하고 있으니까 간사들 밥이나 사주는 게 내 역할이지, 뭐.”하면서도 끝내 속내를 감추진 못한다.

“솔직히 불만이 많아요. 참여연대는 그냥 존재하는 단체가 아녜요. 한국사회를 뒤흔들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는 단체입니다. 면도날을 벼리는 것처럼 날카롭게 구체적인 사안을 붙들고 늘어져야 해요. 그동안 장풍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착각을 했지만 샅바를 잡아야 해요.”

좀 더 치밀하고 미세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나는 이번 인터뷰에서 그의 ‘오늘’은 어떤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까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 의해 일방적으로 줄어든 인터뷰 시간 때문에 집중 탐구는커녕 일반론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말았다. 다소 허탈하게 인터뷰를 끝낸 뒤 그에 관한 자료를 여기 저기 뒤지다 2002년 성탄절에 그가 작성한 유언장을 읽게 되었다. 딸과 아들에게, 아내에게, 가족과 지인들에게 남긴 유언장에는 그의 정수라고 할 만한 것들이 담겨져 있다. 물론 내가 궁금해했던 것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남긴 유언의 일부를 미리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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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동네 친구들, 장난꾸러기에 지나지 않던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 주신 초등학교 선생님들, 많은 꿈을 심어주신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함께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을 뛰놀며 꿈을 꾸던 친구들, 변호사 일을 하는 동안 나를 도운 사무장과 사무원들, 인권 변론을 함께 하면서 그 어두운 시절을 보낸 동료, 선배 변호사님들,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에서 함께 희망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밤낮을 잊으며 살고 있는 간사들, 거기에 기꺼이 회원이 되고 도움을 주신 분들……. 그 모든 분에게 나는 큰 신세를 졌습니다. 많은 배움과 도움을 얻었습니다. 때로는 내 원만하지 못한 성격으로 상처를 입기도 했을 것이고 억지스런 요구로 손실을 입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꿈꾸어 오던 깨끗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고, 그 못 다한 몫은 바로 이제 여러분들이 이뤄줄 것임을 믿습니다.…”

‘현재의 그’는 그와 함께 있었던 ‘우리’였다는 걸 나는 유언장을 읽고서야 알아차렸다.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5/09/01 00:00 2005/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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