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는 무엇으로 사는가
2005/2005년 09월 :
2005/09/01 00:00
[참여사회 9월호] 창립11주년 특집-참여연대와 돈
참여연대에서 함께 일했던 명광복 씨는 ‘우리는 가난과 긍지를 양손에 들고 일 한다’고 했었다. 돌이켜보면 참여연대 간사들과 참여연대의 살림은 가난했다. 그러나 누구도 가난 때문에 구차해 하지는 않았다. 참여연대와 간사들을 움직이는 힘은 돈이 아니라 자긍심에서 나왔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돈의 힘을 맹신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여연대의 지칠 줄 모르는 활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불가사의하게 여겨질 것이다. 조선일보가 총선연대에 대해 ‘정부 돈 받고 낙선운동’ 운운했다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칸막이 쳐진 독서실보다 별로 나을 게 없는 좁은 사무실에서 빽빽하게 들어찬 자료들에 둘러싸인 채 40여 명의 간사들이 낡은 모니터와 사양 낮은 컴퓨터를 가지고 10여 개의 활동기구와 부설기관을 운영하며 권력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믿기 어려울 것이다.
참여연대를 ‘담당’하는 삼성 직원이 지금도 가끔 전화를 걸어올 때가 있다. 참여연대를 그만둔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러는 것을 보면 조금 소름이 끼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나는 그저 웃고 만다. 그는 다른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서 밥 한 번 먹자는 것인데 왜 그조차 거절하는가 푸념을 한다. 경제민주화위원회(현 경제개혁센터) 간사들에게 자동차를 사주겠다는 식의 무모한 로비를 시도한 적도 있는 그는 참여연대를 제대로 ‘담당’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이 생각하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요즘도 가끔 참여연대 꿈을 꾼다. 매주 상임집행위원회 회의가 열리던 수요일 오전 7시. 겨울철 그 시간이면 안국동 거리가 여전히 어둠에 휩싸여 있다. 백발이 성성한 박상증 대표, 귀가한 지 불과 서너 시간 만에 다시 출근하는 박원순 사무처장, 전날 밤늦게까지 진행된 회원행사 때문에 아예 귀가를 포기하고 종로2가 대중사우나에서 쪽잠을 잔 조희연 선생 등이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를 내며 사무실로 들어선다. 공동대표였던 박은정 선생은 아침을 거르고 회의에 참석한 분들을 위해 과일이나 떡을 가방에서 꺼내놓곤 했다.
언젠가 박원순 변호사가 참여연대 월급날이 돌아오면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 사장의 심정이 되곤 했다는 글을 읽다 코끝이 찡해졌다. 회의 때 재정 현황을 보고하다보면 아무런 기여도 못하고 있던 나 역시 애가 타긴 마찬가지였다. 참여연대의 재정 형편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회원들의 회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늘어난 지출과 줄어든 신입 회원 수를 보면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이 사실이다.

시민감사국에서 일하다 그만두게 된 한 간사는 참여연대 2층 느티나무 카페에서 가진 송별모임에서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왔다. 더 이상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며 울먹였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주부의 몸으로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 했다. 늘 초읽기에 몰린 프로기사처럼 모니터에 눈을 고정한 채 성명서나 자료를 작성하던 그 모습이 얼마나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끝내 참여연대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처럼 안타까울 수 없었다.
완전연소에 가까운 효율의 배경은
사실 참여연대 간사들이 일반 기업체 직원이나 공무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완전연소에 가까운 높은 효율을 발휘해온 것은 개인들의 헌신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의 응원과 지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간사들의 급여는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가구당 월 평균소득 280만 원의 1/3쯤 될 것이다. 부모나 배우자가 나머지를 벌충하지 않고는 가계가 유지될 수 없다. 참여연대 간사들이 대단한 게 아니라, 그 가족들이 대단한 것이라는 박원순 변호사의 말도 그런 맥락이다.
급여뿐만이 아니라 간사들이 얼마나 알뜰하게 참여연대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여연대 지방출장비 지급기준을 보면 일반고속버스 운임을 기준으로 왕복 교통비를 준다는 것 말고는 다른 경비에 대한 언급이 없다. 보통 기업체 직원들이나 공무원들이 우등고속버스비와 숙박비와 일일 경비와 매끼의 식비를 받는 것과 비교하면 참여연대의 씀씀이가 어떤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해외출장도 주최측이 여비와 경비를 대고 초청 해야만 갈 수 있다고 못박아 놓았다.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지출내역을 보면 40여 명의 상근자가 일하는 참여연대의 교통여비가 월 5~6만 원인 달이 허다하다. 화장실 변기 청소를 비롯해 사무실의 청소와 유지 관리도 간사들이 직접 해온 것은 물론이다. 기구나 비품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창립 당시 재활용품 가게에서 사온 낡은 책상과 의자를 도저히 더 사용할 수 없어 바꿀 때도 당시 협동사무처장이었던 차병직 변호사가 책 인세 500만 원을 기증했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월간 『참여사회』에는 복사용지나 프린터 등이 필요하다는 ‘날개를 달아주세요’ 광고가 실린다. 회사원이나 공무원들은 업무에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기안서를 작성하지만 참여연대 간사들은 필요한 물품을 사달라고 감히 요구하질 못했다. 스스로 어떻게든 조달해보려고 애를 쓰던 광경은 가난한 집 자식들이 부모 몰래 신문을 돌리곤 하던 1970년대의 풍경만큼이나 애틋하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도 매달 『참여사회』가 배달되어오면 수입과 지출, 그리고 새로 들어온 회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일일이 세어보는 습관을 못 버리고 있다. 그것은 시골에 사는 팔순의 우리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회비를 1만 원 씩 밖에 못 보내는데 잡지까지 보내주면 도대체 무슨 돈으로 살림을 하겠느냐며 소식지를 보내지 말아달라고 몇 번씩 당부를 하곤 했다.
참여연대 앞을 지날 때면 늘 복잡한 심경이 되곤 한다. 어쩌다 자정 넘은 시각에 불 켜진 사무실을 발견하면 방황하는 탕자가 교회의 불빛을 보는 것만큼이나 가슴이 뜨끔해진다. 뉴스에 참여연대가 거론되면 또 누군가 밤을 새워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자료를 챙겼겠지 자연스레 떠올리곤 한다. 아마 아침을 향해 초침이 달리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참여연대의 누군가는 깨어 있을 것이다. 잠든 우리를 대신해서 말이다. 개인들의 무한한 희생과 인내에 기대어 있는 우리 사회의 시민운동이 너무 위태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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