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기금? 그럼 좋은 사람!
2005/2005년 09월 :
2005/09/01 00:00
한때 내게는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나만의 잣대가 있었다. 바로 ‘도시락기금’을 후원해 주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흔쾌히 응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과분하게 도와주면 훌륭한 사람으로 격상시켰으며, 경제적 여력이 있음에도 거절을 하면 다시는 상종 못 할 사람으로 마음에서 밀어내었다.
도시락기금 후원은 그만큼 절박하고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한달 급여 80여만 원으로 생활하는 상근자들에게 인사동의 밥값은 너무 비쌌다. 하루 5,000원이면 한 달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뿐인가. 야근을 밥먹듯 하니 저녁도 사먹어야 했다. 식대로 20여만 원을 지출하면 무슨 돈으로 생활할 것인가.
‘하루 2만 원짜리 아르바이트도 점심은 주는데, 참여연대는 불 켜진 창(窓)이 자랑일 정도로 밤늦게까지 일을 시키면서 상근자들에게 점심도 주지 않느냐’고 따져 묻자 당시 사무처장이었던 박원순 변호사는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고 얼굴을 붉혔다. 간사들은 걸핏하면 라면이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시간이 없어서’라고 했지만, 가벼운 지갑 사정이 느껴지는 때가 많았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서 도시락을 싸오는 간사들도 늘었다. 그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싶었다.
상근자 40여 명의 한달 점심 값 400만 원, 우선 반이라도 만들어주자고 아는 사람들을 설득했다. 대다수가 좋은 생각이라며 다달이 1~2만 원을 내기로 약정했다. 하지만 30여 년 살림만 하고 산 내게는 친척, 친구를 다 동원해도 50명이 한계였다. 70~80만 원에 불과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공연히 일을 벌였다는 후회로 며칠을 끙끙거렸지만 그렇다고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도시락기금은 육체적인 영양분을 공급하는 몇 끼 식사의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바람 부는 들판에서 외롭게 사회정의를 외치는 시민운동가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는 정신적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늘 지켜봐 주고 성원해 주는 이들이 뒤에 서 있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까지 배부르게 하여 명예나 권세, 물질의 유혹에 실족치 않는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었다.
도시락기금을 인연으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음식값을 30%나 깎아주던 음식점 주인들, 고학(苦學)하면서도 기금을 내겠다던 여대생, 복 받을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던 초면의 남도(南道)사나이, 자원해서 기금을 보내 주었던 임원 Y 등. 도시락기금은 나의 마음도 풍요롭게 해주었다. 특히 참여연대 여름캠프가 열렸던 강원도 평창의 달빛 아래서 거나한 기분에 도시락거금(巨金)을 약속한 박변호사의 선배가 기억에 남는다. 그가 술김에 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발뺌할까봐, ‘어디로 돈을 보내며 되겠냐’고 그쪽에서 물어올 때 때까지 나는 열흘 동안 연락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였다.
도시락기금은 6년째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혜택은 처음의 반으로 줄어 활동가 한 명에게 겨우 쿠폰 5장이 지급되고 있다. 힘에 부친 내가 한발 뒤로 물러서 있는 탓이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상근자들이 점심 값을 후원해 달라고 선뜻 나서지 못하여서이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회원 확보나 회비 수입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고, 상근자들의 급여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현실은 여전하다.
“생활비가 바닥난 월말에도 도시락기금 쿠폰만 있으면 걱정 없어요.”
눈웃음이 예쁜 상근자의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월초에도 점심값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너도나도 도시락기금을 내주면 정말 좋겠다.
도시락기금 후원은 그만큼 절박하고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한달 급여 80여만 원으로 생활하는 상근자들에게 인사동의 밥값은 너무 비쌌다. 하루 5,000원이면 한 달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뿐인가. 야근을 밥먹듯 하니 저녁도 사먹어야 했다. 식대로 20여만 원을 지출하면 무슨 돈으로 생활할 것인가.
‘하루 2만 원짜리 아르바이트도 점심은 주는데, 참여연대는 불 켜진 창(窓)이 자랑일 정도로 밤늦게까지 일을 시키면서 상근자들에게 점심도 주지 않느냐’고 따져 묻자 당시 사무처장이었던 박원순 변호사는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고 얼굴을 붉혔다. 간사들은 걸핏하면 라면이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시간이 없어서’라고 했지만, 가벼운 지갑 사정이 느껴지는 때가 많았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서 도시락을 싸오는 간사들도 늘었다. 그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싶었다.
상근자 40여 명의 한달 점심 값 400만 원, 우선 반이라도 만들어주자고 아는 사람들을 설득했다. 대다수가 좋은 생각이라며 다달이 1~2만 원을 내기로 약정했다. 하지만 30여 년 살림만 하고 산 내게는 친척, 친구를 다 동원해도 50명이 한계였다. 70~80만 원에 불과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공연히 일을 벌였다는 후회로 며칠을 끙끙거렸지만 그렇다고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도시락기금은 육체적인 영양분을 공급하는 몇 끼 식사의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바람 부는 들판에서 외롭게 사회정의를 외치는 시민운동가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는 정신적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늘 지켜봐 주고 성원해 주는 이들이 뒤에 서 있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까지 배부르게 하여 명예나 권세, 물질의 유혹에 실족치 않는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었다.
도시락기금을 인연으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음식값을 30%나 깎아주던 음식점 주인들, 고학(苦學)하면서도 기금을 내겠다던 여대생, 복 받을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던 초면의 남도(南道)사나이, 자원해서 기금을 보내 주었던 임원 Y 등. 도시락기금은 나의 마음도 풍요롭게 해주었다. 특히 참여연대 여름캠프가 열렸던 강원도 평창의 달빛 아래서 거나한 기분에 도시락거금(巨金)을 약속한 박변호사의 선배가 기억에 남는다. 그가 술김에 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발뺌할까봐, ‘어디로 돈을 보내며 되겠냐’고 그쪽에서 물어올 때 때까지 나는 열흘 동안 연락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였다.
도시락기금은 6년째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혜택은 처음의 반으로 줄어 활동가 한 명에게 겨우 쿠폰 5장이 지급되고 있다. 힘에 부친 내가 한발 뒤로 물러서 있는 탓이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상근자들이 점심 값을 후원해 달라고 선뜻 나서지 못하여서이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회원 확보나 회비 수입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고, 상근자들의 급여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현실은 여전하다.
“생활비가 바닥난 월말에도 도시락기금 쿠폰만 있으면 걱정 없어요.”
눈웃음이 예쁜 상근자의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월초에도 점심값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너도나도 도시락기금을 내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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