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병상 중에서 민간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90%를 넘는 현실에서 보듯 한국의 의료는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다. 새로 건물이 들어서면 교회 십자가 다음으로 병·의원 십자가가 걸린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이처럼 거센 민간 의료 자본의 경쟁은 바람직한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세계 최고 수준의 CT, MRI 보급률로 나타나고 이는 다시 과잉진료로 흐르기 쉽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항생제 내성률, 제왕절개율도 이같은 의료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의료생협은 의료, 건강, 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힘을 모아 만든 협동조합이다. 의료생협은 환자의 권리와 생명 가치가 존중되는 의료의 실현과 질병의 발생을 사전 제거하는 보건예방의료를 목표로 하며 이를 주민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이루려는 조직이다.

대전의 민들레의료생협은 2002년 8월 지역통화운동단체인 한밭레츠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단체로 현재 750여 명의 조합원이 1억7,000여 만 원을 출자하여 민들레의원과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민들레의료생협은 ‘건강한 마을’ 실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가 지역공동체 활성화라고 보고 있다.

33인의 건강독립선언, 민들레 건강실천단

올해 3월 25일 민들레의료생협 사랑방에서는 건강실천단으로 활동할 개인 24명과 세 가정이 참가한 가운데 ‘건강실천 다짐의 날’ 행사가 열렸다. 건강실천단은 병의원과 약물, 건강보조식품이나 값비싼 웰빙 상품으로부터 벗어나 이웃, 자연 속에서 건강한 생활습관을 지켜나가려는 조합원들의 소모임이다.

이날 참가자들 모두 기본건강검진을 받았다. 키, 몸무게, 체지방, 체질량, 혈압, 혈당, 골밀도를 측정하였다. 참가자들 사이게 가장 관심이 큰 것은 건강나이였다. 30살의 김창일 조합원은 건강나이가 56살로 나타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반면 38살의 권성희 조합원은 건강나이가 23살로 나타나 부러움을 샀다.

이어 민들레의료생협 양·한방 원장들이 나서 ‘생활습관과 건강’에 대해 각각 설명했다. 그들 역시 건강실천단에 참여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건강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방법을 발표하였고 이 내용은 조합원 전체에게 발송되는 소식지에 실렸다. 책임감과 실천 의지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식생활 습관이 서구화되면서 나타나는 문제는 건강실천단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32살의 오민우 조합원은 15㎏ 감량을 목표로 정하고 금주와 함께 1시간 가량 걸리는 출퇴근 시간에 걷기로 했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복부 비만이 심해진 임창웅 조합원은 건강나이 10살 이상 줄이기를 목표로 삼아 주 3회 기체조, 금연, 금주, 자전거 타기를 하기로 했다. 반면 너무 말라 고민인 고연 조합원은 몸무게를 50㎏ 이상으로 늘리는 건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점심 꼭 먹기를 실천하기로 했다. 가족실천단은 부부와 그 자녀들이 모두 참여하는데 개인 실천 과제와 더불어 가족 공동의 목표도 갖게 된다.

이날 협동조합의 상징이기도 한 무지개 빛깔의 7개 건강 모둠이 만들어졌다. 참가자들에겐 모두 일일 건강 점검표가 주어졌다. 일상적인 건강실천 점검은 모둠 별로 이루어질 것이다. 건강은 개인의 과제이지만 개인 건강은 사회 건강의 시작이라는 생각에서 모둠을 만든 것이다. 참여와 협동으로 서로 격려하고 지지할 때 효과는 더 커진다. 건강 실천의지를 다지기 위한 행사로 계족산 만 걸음 걷기 대회와 가족 건강 캠프도 열렸다. 건강실천단 각자의 노력은 ‘건강편지 이어 쓰기’를 통해 홈페이지와 소식지에도 소개되고 있다. 건강을 위한 노력은 이렇게 이웃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행복을 나누는 좋은 이웃, 법동 품앗이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공동체는 허약해졌고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확보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 되었다. 아이를 잠깐 맡기더라도 돈이 필요하다. 한 두 번 쓰고 말 고가품을 사기 위해 큰돈을 지불해야 한다. 자녀가 경쟁사회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학원비와 과외비를 부지런히 대야 한다. 예전보다 많이 벌지만 버는 것 보다 더 많이 써야 한다. 인간관계는 점점 피폐해지고 자연은 망가진다. 모두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해결방법을 모른다. 법동 품앗이는 그 해결의 열쇠를 찾고 있다.

법동 품앗이는 민들레의료생협이 있는 법동의 주민 공동체 모임이다. 30여 명의 회원과 8개의 회원업소가 있다. 그동안 대전 전체에서 조합원도 모으고 한밭레츠 활동도 펴왔지만 공동체를 이야기하기에 대전은 너무 커졌다. 삶을 나누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서 동 단위로 범위를 좁히기로 했다.

올해 법동 품앗이를 주축으로 두 개의 종합사회복지기관과 의료생협이 함께 ‘행복한 법동 만들기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사회복지서비스와 보건의료서비스를 연계해보려는 의도가 있지만 곧 ‘서비스’라는 말은 버리게 되었다. ‘서비스’를 주는 사람은 누구이고, 받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동네 일은 주민 스스로 해나가는 것이다.

이웃 사이, 자연과 인간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어가지 않고는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의 건강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 실천이 화려한 사업계획과 거대한 프로젝트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생활을 이웃과 만나 나누려는 마음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본다. ‘이웃’이라는 열쇠!

희망과 계획을 주로 이야기했지만 우리 앞에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경영 악화, 의료의 질에 대한 지적도 많지만 제일 큰 문제는 지역주민이 조합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경영난에 빠지게 되는 것이며 서비스의 질이 문제가 되는 것이리라. 또 최근 보험청구 잘못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을 지역주민과 조합원이란 이름의 이웃에게 물어볼 참이다.
김성훈 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 사무국장
2005/09/01 00:00 2005/09/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14477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