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의 기억’이 ‘피해의 기억’과 마주하기 위해
2005/2005년 09월 :
2005/09/01 00:00
일본의 과거청산 위해 특별법 제정운동 펼치는 일본인 변호사, 니와마사오
동아시아에게 일본은 여전히 ‘과거형’이다. 일본과 연관된 뜨거운 이슈는 대부분 역사인식과 과거청산이라는 뿌리를 갖고 있다. 광복60주년 8·15민족공동행사가 성대하게 열리던 8월 13일 작지만 뜻깊은 포럼이 열렸다. 한국의 참여연대, 일본의 아시아태평양인권정보센터와 코리아NGO센터 공동주최로 열린 <한일시민포럼>은 한국과 일본의 시민이 만나 한일간 현안과 쟁점을 짚어보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모색하는 자리가 되었다. 일본의 시민단체인 모든 외국인노동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지키는 간사이 네트워크 대표인 니와마사오 변호사는 이 포럼에서 ‘일본에 있어서 과거청산은 어떤 문제인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포럼이 끝난 뒤에도 8·15민족공동행사를 참관하기 위해 며칠 더 머물렀다. 8월 15일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회’를 보고 나오는 니와마사오 변호사를 만났다.
8·15 공동행사를 본 소감이 어떠십니까?
“통일을 방해해 온 일본의 국민으로서 죄송한 마음부터 들었습니다. 한국에게는 광복 60년이고 일본에게는 전후 60년입니다. 오늘 행사는 감동이었습니다. 조선민족 남과 북, 해외동포가 힘을 모아 통일의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고 이를 계기로 한민족이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참관인으로나마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다만 통일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분단 해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쉽습니다. 분단과 통일이 아니라 희망과 통일을 위해서는 동아시아 평화, 보편적 인권, 차별 없는 평등 등이 공통의 과제라는 생각입니다.”
일본인인 당신에게 있어 역사청산은 어떤 의미입니까. 역사청산이 왜 중요합니까.
“지난 50여 년 동안 일본은 가해자였습니다. 그리고 가해자의 입장으로만 보아왔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은 미국에게 졌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피해자 의식이 강합니다. 특히 원폭에 대한 피해의식이 큽니다. 그러나 미국과의 전쟁 전에 우리가 침략국이었다는 사실은 잊어왔습니다. 이런 역사 망각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교과서 문제,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비롯해 헌법 개정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80년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변호사를 포함한 1천 여 명의 시민들은 역사인식과 피해보상운동, 특히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운동을 꾸준히 추진해 왔습니다. 저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호소를 직접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이 가해자였으며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당신은 일본 정부에 1965년 한일조약의 재검토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보상에 관한 특별입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후보상은 왜 중요하며, 그에 대한 당신의 주장은 무엇입니까.
“피해를 보상하지 않으면 화해도 있을 수 없습니다. 독일과 일본을 비교해 보십시오. 독일은 지난 과오를 사죄했기 때문에 유럽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앞으로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는 일본을 동료로 받아들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한중일 3국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일본이 역사청산을 하지 않는다면 점점 심한 소외를 겪게 될 뿐입니다. 다행히 일본 경제인들도 이 점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한중일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침략과 지배의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피해의 기억과 가해의 기억을 서로 털어놓고 역사의 진실을 마주할 대화의 기회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특히 재일한국인은 ‘한일조약’으로 인해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버림받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재일한국인은 양국의 미래를 잇는 가교가 될 존재이며 일본인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재일 고령자·장애인 무연금 문제, 재일 지방 참정권 문제, 민족 교육 문제, 민족차별문제, 국적문제 등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습니다. ‘재일의 법적 지위와 권리에 관한 기본법’ 등 특별법이 필요합니다.”
우익세력의 위협은 없었습니까.
“우익세력에게 우리와 같은 이들은 비국민이자 매국노입니다. ‘등급이 높은’ 매국노 명단을 뽑아놓은 사이트가 있는데, 저는 등급 2에 속해 있습니다(웃음). 가끔 면도칼이 들어있는 협박편지를 받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희망적이라고 보십니까.
“유감스럽게도 가해역사를 인정하는 일본인은 적습니다. 그 중에는 시민운동가가 많구요. 적더라도 연대하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비관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포럼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일본 헌법 개정 문제가 일본만의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큰 감동입니다. 일본에서 한 걸음 나와보니 아시아 시민들과 연대 가능성이 보입니다. 더 넓게 열심히 움직여야겠다는 다짐이 생깁니다.”
일본의 역사청산과 전후보상은 동아시아 평화와 연대의 키워드입니다. 하지만 일본 혼자서 풀기에는 실타래가 많이 얽혀 있고 낡았다는 우려가 되는군요. 주변국, 특히 한국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입니까.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시민운동이 우리에게 큰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여러분의 눈부신 성장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최근 일본 시민운동의 구호는 ‘한국 시민운동에게 배워라’입니다. 나의 굳은 바람은 미래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역 : 림혜영 KIN(지구촌동포청년연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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