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수능부정사건은 3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무더기로 성적무효처리되면서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부정행위에 가담한 학생들은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예행연습까지 했지만 정작 자신들의 문자메시지가 이동통신사에 고스란히 저장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수능 당일 전송된 문자메시지는 대략 3억 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처음에 1∼5까지의 숫자가 포함된 28만여 건을 압수수색했고 나중에는 ‘언어’, ‘가형’ 등 문자와 ‘?’ 등 특수기호가 포함된 메시지까지 확대해 샅샅이 조사하는 바람에 결국 이들의 부정행위 전말이 드러난 것이다.

일부 학생들의 부정행위에 대해 분노한 다수의 선량한 수험생과 시민들은 경찰의 과학적인 수사에 안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찰의 조사대상에는 한 여고생이 친구에게 보낸 ‘22222너22222’라는 낯간지러운 내용(‘이안에 너가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이나 전화번호, 계좌번호 등 수능부정과 무관한 사적인 문자메시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수능당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부정행위자로 의심을 받은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적인 문자메시지가 자신도 모르게 저장되어있었고 수사의 편이를 위해 이용되었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범죄수사를 위해서는 개인정보와 사생활 침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범죄의 모의나 실행이 전화통화를 통해 이루어 질수 있으므로 모든 통화내용을 저장해야 옳을까?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면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녹화해야 할 것이다. 범죄가 어디 길거리에서만 발생하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통화내용을 저장하고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상황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내밀한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의 사생활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알려지는 것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이것은 단지 감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 엿듣고 있다면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다. 누군가 엿보고 있다면 우리는 하고 싶은 행동을 할 수 없다. 이런식으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행동의 제약을 받고 결국은 사상의 자유까지도 침해받게 될 것이다.

최소한 개인정보는 철저히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생성·보관·이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동통신사가 고객의 동의없이 문자메시지를 보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능 당일날만이라도 문자메시지를 저장하는 방안이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근시안적인 대책은 수능부정을 막기는 커녕 또 다른 기상천외한 부정방법을 찾아내도록 부추길 뿐이다. 더 이상 문자메시지에 매달려 본질을 흐려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부정행위를 하도록 유혹하는 잘못된 교육정책이고, 여전히 학벌을 중시하고 결과로만 평가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백종운 참여연대 사회인권팀 간사
2005/01/01 00:00 2005/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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