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없는 천국보다 신랑과 함께 하는 지옥이 낫죠
2003/2003년 11월 :
2003/11/01 00:00
오광언·정은미 부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
2003년 10월 4일 토요일 어떤 결혼식 “신랑 신부는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결혼식장에 다녀본 사람은 다 안다. 지극히 평범한 주례사가 오래∼ 지속될 때의 그 고통을. 그래서 결혼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소망이 있다. 평소에 정말 좋아하고 존경했던 분에게 두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축사를 들을 수 있기를. 10월의 어느 가을날 실제로 그런 결혼식이 있었다. 참여연대 회원 오광언 씨와 정은미 씨의 결혼식장엔 이들이 오랫동안 흠모해왔던 박원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가 주례로 서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박원순 변호사님과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늘 존경하던 분이었죠. 시민운동의 새 틀을 제시하셨고 항상 무언가를 시작하는 분. 선구자 같이 느껴졌거든요. 결혼식 주례사를 부탁드리면 꼭 해 주실 줄로 예전부터 생각했었지요.” 신랑 오광언 씨의 말이다. 그는 1999년 무렵 박 변호사가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을 보고 나서 참여연대 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오광언 씨는 매달 2만 원, 정은미 씨는 1만 원씩 회비도 꼬박꼬박 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신부가 자신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하고 나섰는데, 이건 아무래도 신랑의 ‘사랑의 전도(?)’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둘은 지난해 노사모 회원으로도 여러 활동을 했는데, 특히 오광언 씨는 유세 때 도우미로 춤도 추고, 대선 전 이틀 동안은 휴가까지 내서 운동했던 열성파라고.
주례모시기 대작전개인적으로 박원순 변호사를 모를 뿐더러, 설사 안다 해도 대한민국에서 ‘그보다 더 바쁠 순 없다’고 인구에 회자되는 분을 어떻게 ‘섭외’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것이 알고 싶다! “생각은 남편이 먼저 했지만, 정작 처음 전화를 걸어 물어본 건 저였답니다. 아름다운재단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는데, 어느 간사님이 받으셨어요. 저희 뜻을 전했더니 아마 힘들 거라고 답하더군요. 전에 함께 일하는 간사 한 분이 부탁드렸을 때도 성사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렇게 예비 부부가 낙담하고 있는데, 얼마 후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참여연대 안진걸 회원참여팀장이었다. 자신이 대신 부탁해보겠다는 것이었다.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회원들을 위해 애써주겠다니 예비 부부는 감동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초조하기도 했다. 결혼이 2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진걸 팀장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떻게 할까 창 밖을 망연 자실 바라보는데, 마침 박 변호사가 지나가기에 애걸복걸 매달려 겨우 성사시켰노라 농담을 하더란다. 부부는 박 변호사를 만나러 가기 전에 이메일을 한 통 적어 보냈다. 자신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이력을 가졌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 지에 대해 쓴 편지였다. 그리고서 오광언 씨는 9월 18일 참여연대 후원의 밤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으로 찾아가 주례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어찌나 떨리던지 가슴이 두근거려 혼났다고 털어놓는다. 그러자 신부가 아주 여유 있는 표정으로, 며칠 후 혼자 아름다운 재단으로 찾아가 인사했던 자신은 편안했었다고 말한다. “신랑이 술을 한잔 한 게 아니냐고 웃으며 말씀하시더군요. 긴장을 많이 해서 얼굴이 빨개졌을 거라 제가 대답했죠. 워낙 존경하던 분이라 좋아하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서 그랬을 거예요.” 옆에서 듣고 있던 신랑이, 재치 있고 야무진 신부에게 사랑의 눈길을 마구 보내고 있다.
소금이 되어 살려는 부부를 위하여 박원순 변호사의 주례사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었을까? 정은미 씨에게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물어보았다. 신부는 잠시 결혼식 장면을 떠올리는 듯했다. 여기에, 조금 길지도 모르지만 가능한 한 그녀가 기억하는 것을 다 옮겨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도 박 변호사의 조용조용한 목소리를 상상하면서 어느 예쁜 결혼식장의 하객으로 함께 앉아봄이 어떨지, 함께 아름다운 축사를 들으며 축하해 줌이 어떨는지…. “제 나이가 아직 주례를 볼만큼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잘 서지 않지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웬만하면 주례 보기를 꺼려하는 저로서 이번 두 사람의 결혼식에 주례를 맡기로 한 것은 이들의 남다른 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뛰어난 학력을 가졌다거나 사회적 지위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청첩장에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가정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자신들을 제게 단지 생활인이라 소개했지만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지요. 바닷물은 그것에 섞인 단 3퍼센트 소금 덕분에 썩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도 소금과 같은 이들로 인해 유지되어 나가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신부가 제게 와서 했던 말 중에 ‘오광언 없는 천국보다 오광언과 함께 하는 지옥이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물질로 사람을 선택하고 좇아가는 세상에서 사랑이 바탕이 된 결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이 같은 부부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며 주례는 10분 정도로 길지 않았지만, 그 여운은 길었다. 빽빽한 일정 때문에 식사도 못 하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부부는 죄송한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쉬움을 달랠 좋은 기회가 곧 다가오고 있단다. 며칠 후 열리는 회원대동제에 박 변호사도 온다고 해서 그리로 인사하러 가기로 한 것이다. 오광언 씨에게 마지막으로 참여연대 회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그가 해준 말은 정말 단단한 소금 결정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페미니스트 잡지 좬이프좭를 봤습니다. 거기에 어떤 여성 소설가가 제사에 관해 쓴 글이 있더군요. 우리가 제사 비용의 절반만 사회를 위해 쓴다면, 가난 때문에 밥을 굶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답니다. 저도 적은 돈이지만 시민단체에 후원금을 낼 때, 부모님 제사에 쓸 돈을 조금 덜어서 낸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은미 씨가 오랜 이야기 자리를 정리하며 다시 ‘박원순표’ 주례사를 인용해 ‘신부답게’ 예쁜 말을 남겨놓는다. “뜨거운 것은 금방 식어버린대요. 사랑도 마찬가지고요. 뜨거운 것보다 은근한 사랑으로 오랫동안 함께 하는 사랑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말, 오래 간직하며 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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