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타성은 진절머리 나도록 따분한 것이지만, 우리의 일상, 삶, 한평생도 알고 보니 바로 그 관성의 지칠 줄 모르는 줄달음이었다”는 어느 소설의 한 대목처럼 그저 한 번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성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자각이 때로 아프게 다가와 고개를 푹 숙이고 주저앉게 되는 순간이 있다. 주저앉게 하는 힘은 질주 자체가 아니다. 나아가려는 방향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자각은 때로 소설의 한 구절을 통해 우연히 얻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같이 앞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곁눈질하면서도 얻게 된다. 무작정 달리는 듯 보이지만, 부단히 자신의 관성을 의심하고 제어하며 달리는 사람들 말이다. 김제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도 그런 자각을 주는 사람 중 하나이다.

낯을 익힌 지 몇 년이 지났건만, 그에 대해 아는 게 변변치 않다. 이것저것 자료를 뒤적였지만 실속이 없었다. 직접 듣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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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토박이예요. 고등학교 때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을 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께서 왕림하신다고 해서 카드섹션을 했는데 그거 왜 하냐고 했다가 학교 그만두라는 권면을 받은 기억이 있네요. 대학교 2학년 때 우스운 사건으로 감옥에 갔어요. 유인물 한 300장 등사해가지고 시외버스에 몰래 올려 놓았지요. 버스 환기통에 유인물을 올려 놓으면 출발하면서 각도가 틀어지고 가속도가 붙으면 날리게 되거든요. 안 잡히려고 연구 무지 했는데, 나흘 만에 잡혔지요.”

그는 “안 잡혔으면 어떻게 고시공부 좀 하고 취업하고 했을 텐데”라고 가정법을 동원했지만, 현실에서의 그의 인생은 전형적인 운동권의 경로였다. 그 당시 공부 좀 하고 사회 이치에 눈 밝은 똘똘한 친구들이 독서모임을 통해 사북항쟁과 같은 민주화 역사를 학습하고, 대학에 들어가 비합법 서클에 들어가고, 감옥 갔다와 공장에 들어가는 그런 행로 말이다.

참여와 자치를 위한 지역 모임이 씨앗이 되어

그가 본격적인 지역대중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충남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시절이다.

“87년 6월 항쟁 때, 운동권들이 누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느꼈어요.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걸 느꼈지요.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공개적인 대중 단체운동의 흐름에 몸을 담그면서 그는 계속 지역에서 새로운 일을 경험한다.

“미8군 기지를 대전으로 옮기겠다는 정부 방침이 있었어요. 지역에서 미8군 이전 반대운동이 큰 현안이 되었는데, 색다른 경험을 했지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운동 세력부터 대전의 건강한 생활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보수 세력까지 모두 참여하는 운동을 처음 해본 거예요. 또 민선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지역 정치에 대한 모임도 해봤는데, 대선 두 차례 치르면서 노선이 다른 운동권끼리는 인사도 안 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 것들의 고리를 푸는 모임을 하면서 선거에 후보도 내보내고. 자민련 바람이 불어서 모두 전사했지만 지방정책에 대응하는 조직은 여전히 필요한 게 아닌가, 참여와 자치라는 가치를 가지고 활동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고민 끝에 ‘지역운동의 발전을 생각하는 작은 모임’을 만들었고 그 작은 모임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출발이 되었다. 올해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생긴지 10년째 되는 해이다. 사람에게 있어 열 살은 미래의 무궁무진한 설계만 보이는 나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운동의 현실을 보자면 지역시민단체 10년의 역사에서는 고단한 과거만이 연상될 뿐이다. 온갖 신산을 버텨온 것만도 버거웠을텐데 그는 부지런하게도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기 위한 발동을 걸고 있다.

“우리 단체는 전문화되어야 살 거 같아요. 그래서 한 사람이 200만 원 씩 내서 부설 정책연구소를 만들었어요. 지금까지는 절차적 투명성, 합리성 자체를 가지고 운동했다면, 사회적 인권을 강화하는 활동으로 내용을 바꿔가야 할 거 같아요. 그리고 지역운동의 성장을 위해서는 일반시민이 주체화되는 게 시급하지요. 그래서 주민공동체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운동을 시작했지요.”

제5회 시민운동가대회에서 풀뿌리 시민운동의 모범사례로 뽑힌 ‘알짬마을 어린이도서관’운동도 그런 문제의식이 낳은 결실이다.


“지역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지역문제에 무관심하고 냉담한 중앙집권적 사회에서 ‘지역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지론 하나로 십여 년을 한자리에서 지켜온 그에게 지역운동의 어려움에 대해 물어 보았다.

“지역운동이니깐 어렵다는 것에는 동의하진 않아요. 참여연대만큼 어렵겠어요? 그래도 지역의 어려움이 뭐냐고 물으면, 상대적으로 운동역량의 총량은 작은데 그걸 쪼개 해야 할 일은 많은 점이죠. 예를 들면 활동가 교육, 사업 기금 마련, 주민공동체 지도자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이 굉장히 필요한데도 당장 투자를 못하잖아요. 그리고 좁으니까 생기는 어려움, 서로의 배경 같은 것을 다 아는데서 오는 어려움, 이런 것들이 있지요.”

하지만 그는 불리한 점을 유리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좁으니까 복잡하지 않게 사람들을 규합하고 함께 일 할 수 있고. 분화가 안 되어 어려울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총량이 작으니깐 전체적 사고나 연대감을 유지할 수 있는 측면이 있지요.”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며 그는 자기 몫의 일을 헌신적으로 수행했을 것이다. 개발 대신 삶의 질로 선거 쟁점 선점해야 시민운동의 위기라는 주제로 그의 이야기는 이어 졌다.


“계속 변화되어온 쪽은 그렇게 어려움이 없어 보여요. 준비를 계속하고 과제를 찾아서 능동적으로 움직였던 곳은 그렇지 않은데, 관성적으로 운동을 해온 데는 어려움이 있지 않나?”

그렇다면 시민운동이 능동적으로 도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권력 감시에서 시민생활의 문제로 전환하는 과제, 지역운동에서 보면 주민공동체를 스스로 가꾸고 만들어가는 과제 등 여러가지 중에서 그가 가장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신개발주의 문제였다.

“지방자치 역사가 10년이 되었고, 아무리 참여정부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주장해도 성장주의는 여전해요. 전국적인 개발열풍이 불어서 누가 더 지역의 개발을 많이 이끌어 낼 수 있을까가 선거의 중요한 이슈가 된지 오래죠.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는 정신질환자 취급을 받을 정도로 지역사회의 반발이 심각해요.”

그는 지역 개발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이슈로 선거의 쟁점을 선점하는 운동을 제안했다.

“선거를 후보 중심으로 생각하면 항상 집니다. 개발주의 지방정치체제가 외면하는 보육, 교육, 고용불안, 노부모 봉양 등 삶의 질 문제를 중심으로 선거 국면을 만들어야지요. 이를 위해서 전국적인 지방선거 대응조직의 결성이 필요한데, 저는 요즘 연대 관련해서 걱정이 많아요. 다원화되는 것은 맞는데, 서로 모여서 싸워야 할 때 모이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잘 될 때는 마음을 모으는데, 잘 안될 때는 마음을 못 모으는 건가….”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다원화라는 미명 하에 모여서 싸우지 않는 현재의 운동 풍토에 불만이 많은 표정이다.

관성에 대한 답은‘사람’이다

그를 놓아주어야 할 시간이다. 어느 틈에 온전히 그의 몫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아침밥 수발로 시작되어 소주든, 폭탄주든 열 잔까지만 먹는다는 이상한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그의 빡빡한 일상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인천으로 갔다가 다시 대전으로 내려가 무시로 울려대는 핸드폰 발신자들과 현안을 해결해야 하는 그가 얼마나 분주한 처지인지 짐작되고 남음이 있는 바에야.

인터뷰를 끝내자 그는 가까운 곳에 헌혈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물어왔다. 시간이 늦어졌다고 말문을 막았지만, 그는 어디 가면 헌혈을 할 수 있는지 거듭 답변을 재촉한다. 아마 누군가에게 오늘 당장 헌혈증을 손에 쥐어주어야 하는 사정이 있으리라. 그의 피가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아닐 텐데도 그는 외면하지 못한다. 그 까닭은, 그가 누구를 만나도 배우고, 그 배움을 마음에 심어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 같다. 그는 누구를 통해서나 사람의 품위를 배운다. 그리고 그 품위를 다른 사람과 반드시 나눈다. 그렇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도 될 것을 굳이 자기 몫으로 새기는 것이 아닐까?

그는 “이 바닥에 오래 있으니까 이상하게도 능숙한데 편하지 않고, 좁은데 깊지가 않다”고 했다. 또 짧은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면 “세상 물정을 반듯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고 했다. 관성의 법칙은 그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지만, 그는 10년 동안 ‘관성’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며 달려왔다. 그리고 그 물음의 밑바닥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그를 만난 이유다.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5/11/10 00:00 2005/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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