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토론회 참석자가 “인류는 세균과 끝없는 싸움을 벌여왔지만 결과는 늘 세균의 승리”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세균에게 인류가 무력하게 무너지던 시대에 세균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1928년 영국인 알렉산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이후 인류는 세균을 극복하기 위한 끝없는 도전을 시작했다. 생명에 최대 위협이 되어 왔던 감염증을 치료할 수 있게 됨으로써 큰 외과 수술, 항암요법, 나아가 장기이식에 이르는 의학적 혁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세균과의 전쟁은 지금까지 1,000종이 넘는 항생제의 개발을 가져왔으며 이중 수십 종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항생제는 환자 치료 외에도 농·수산물과 동물 사료, 생활용품에까지 들어가는 등 일상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

물론 이것은 인류의 큰 진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이면을 들춰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기적의 약’으로 일컬어지던 페니실린도 1940년부터 대량으로 환자들에게 사용되면서 불과 1년 뒤에 페니실린에 내성을 가진 포도상구균이 발견되었다. 1942년에는 30%, 1950년에는 70%의 포도상구균이 페니실린에 내성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에는 세계적으로 페니실린에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균주가 5% 미만에 불과한 실정이다. 세균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무척 강하며, 유전자변이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간과한 결과이다.

점점 높아지는 항생제 내성율

항생제에 대한 과신과 오·남용으로 인한 내성 증가의 문제는 현재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최근 들어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은 현저히 둔화되는 추세인데 반하여 중요 항생제에 대한 내성 발현과 확산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항생제 오염의 고비를 넘길 수 있는 최선책은 바로 오·남용을 없애는 것이다. 오·남용을 없애려면 의료계의 자성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축산과 수산 등 의료 밖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항생제의 무분별한 사용을 주시해야 한다.

축·수산용 항생제는 첫째, 젖소의 유방염 등과 같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다. 둘째는 일종의 성장촉진제로 사료에 배합되어 사용된다. 1946년 정제된 사료에 스트렙토마이신을 첨가하였더니 병아리의 체중이 늘었다는 보고가 나온 이래 가축의 성장 촉진 및 사료 효율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현재는 광범위하고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항생제를 사용할 경우 10~15%의 성장촉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치료용으로 투여되는 항생제 양에 비하면 현저히 작은 양이라 힘겹게 축산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항생제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사용되는 항생제의 양은 축산물 생산량 대비 세계 최고로 알려져 아무리 필요해서 사용한다 하지만 심각하게 남용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항생제 내성율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축·수산에 사용된 항생제의 위험성은 동물의 몸 안에 남아 식품을 통해 옮겨질 수 있다는 것 말고도, 동물의 배설물 등을 통해 주변의 수질과 토양을 심각하게 오염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소비자보호원에서 실시한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항생제 사용량과 주변 토양 오염이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보호원이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같이 전국 4대 도시의 도축장, 백화점 및 할인마트 등에서 판매하는 국내산 및 수입산 육류 300점(쇠고기 120점, 돼지고기 120점, 닭고기 60점)을 수거하여 항생제 등 잔류물질을 검사한 결과에서도 쇠고기에서는 잔류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반면 일부 돼지고기 및 닭고기에서 항생제 등 잔류물질이 검출되었다. 또, 경북대 의대 조동택 교수는 특별한 오염원이 없는 서울의 중랑천에서도 슈퍼 박테리아가 발견되었으며, 이미 우리나라의 주요 하천은 항생제 내성균으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자연이 대안이다

이렇게 식품, 토양, 물 등이 항생제에 오염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항생제 내성균에 늘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국가적이고 종합적인 관리가 시급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축산용 항생제의 오·남용에따른 대책으로 스웨덴은 1986년 모든 성장촉진용 항생제를 가축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덴마크는 1995년과 98년에 각각 아보파신과 버지니아마이신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유럽연합(EU)도 1999년 항생제의 신중한 사용 원칙에 따라 아보파신을 비롯한 5가지 항생제를 성장 촉진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또한 성장촉진을 위해 항생제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였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는 물의 새로운 오염원으로 항생제와 호르몬, 기타 약제들을 관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까지 나서고 있다. 뒤늦었지만 우리나라도 2004년 12월 배합사료 제조에 사용되는 항생제의 종류를 53종에서 25종으로 대폭 감축하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가짓수의 감축과 함께 사용량의 감축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사실들을 국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론의 형성일 것이다.

‘항생제 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의료용 뿐만 아니라 의료 밖에서 사용되는 항생제 또한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답 또한 함께 노력하여 사용을 줄이자는 간단한 것 아닌가. 이전에는 농약과 화학비료가 없으면 식량의 생산과 증산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불과 한 세대가 지나고 난 지금 농약과 화학비료의 폐해로 땅의 생산력이 저하되었고, 환경오염과 인체에 대한 위협으로 인해 친환경 유기농법이 최선의 대안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축·수산 또한 정부의 급속한 증산·확대 정책으로 인해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제 등이 필수품처럼 사용되어 지금에 이르렀지만 조류독감, 광우병, 브루셀라 등 축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새로운 질병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더 많은 화학물질과 항생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생명을 지킬 것으로 맹신하던 시대는 지났다. 인간의 생명을 건강하게 지키는 길은 항생제와 약물의 사용이 아니라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의 조성임을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우리는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다. 축·수산 또한 마찬가지이다. 가축을 질병으로부터 지키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은 항생제가 아니라 답답한 우리를 터주고, 제대로 된 먹이를 주며, 적당한 운동을 시켜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지현 서울환경연합 벌레먹은 사과팀 국장
2005/11/01 00:00 2005/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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