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치도 않은 소금 한 포대 때문이었다. 해묵은 숙제가 발목을 붙든 것은. 얼마 전 동네 일 하는 이가 농협에서 파는 소금과 보리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농협 회원은 아니지만 회원이 아니어도 농협에서 나오는 소금을 사서 쓰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나도 한 포대 주문했다. 여러 날이 지나 동네에 소금이 왔다. 우리 집에는 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까닭을 물어보니 짐작했던 대로 신입례 때문이었다.

재작년 가을, 집을 짓고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 이장이 발걸음을 했다. 마을에 새로 들어온 집들은 신입의 예로 30만 원을 내야 한다며 협조해달라고 했다. 음식으로 대신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건 알아서 하고 30만 원은 무조건 내야 한다고 했다.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는 아직까지 내지 않았다. 주변에서 이미 3년을 살았지만 이처럼 과한 신입례는 금시초문이었다. 30만 원이 적은 돈도 아니지만 그게 아까워서도 아니다. 마을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문제가 돈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부자 되라는 말이 최고의 덕담으로 받아들여지는 세태가 못마땅해 비교적 순박해 보이는 마을을 골라 터를 잡았건만 여기서도 돈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적이 실망스러웠다. 각자 분수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정을 표시하면 되는 것이지 마을에서 정해놓은 대로만 하고, 싫으면 말라는 것이 야속했다. 이름도, 얼굴도, 어디서 어떻게 살다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돈부터 내라는 것이 이곳의 인사법인지 되묻고 싶었다.

시골은 도시와 달리 이웃과 완전히 담쌓고 지낼 수는 없다. 마을에 들어와 사는 이상 더는 지도 들고 지나가며 멋진 풍경에 감탄하는 여행자처럼 행동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을에 일이 있을 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 길섶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거나 겨울에 폭설을 치우는 따위의 공동부역도 가끔 있다. 몽당비나 무딘 낫이라도 들고 나가 서툰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갈수록 젊은 사람 찾아보기 힘든 우리 농촌 아니던가.

나 또한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자연 예찬이나 하며 살아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멀찍이 떨어져 담장 높이 쌓고 따로 노는 전원생활을 머릿속에 그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집을 상량한 뒤 방앗간에서 시루떡을 해 집집마다 돌리며 잘 부탁드린다고 일일이 인사를 드렸다. 이사온 뒤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약주도 한 잔 대접했다. 그렇지만 그런 건 나에 대한 평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문제는 30만 원이었다. 그 때문에 여태 마을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있는 듯 없는 듯, 아는 듯 모르는 듯, 엉거주춤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다. 살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몇몇 어른들은 신입례 하고 정식으로 마을 사람되라고 설득도 하셨지만 죄송하게도 아직까지는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옛말도 있지 않으냐, 이 마을에 왔으면 이곳 법을 고분고분 따르면 되지 신참자가 웬 군말이 그렇게 많으냐고 꾸짖을 지도 모르겠다. 까짓 30만 원 그냥 내 버리고 마음 편하게 지내지, 그런 걸 가지고 신경 쓰고 속 끓이냐고 딱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쉽게 살고 싶지 않다. 아집일 수도 있겠지만, 조급해 하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서히 마음으로 마을을 만나가려 한다.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2005/11/01 00:00 2005/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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