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조각을 선택할 겁니다
2005/2005년 11월 :
2005/11/01 00:00
경기 안산 류영복 회원
참여연대에서 전철을 타고 한 시간 반쯤 가면 안산 반월역이다. 그 정도면 출퇴근도 가능할 만큼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이 곳엔 아직도 시골의 정취가 남아있다. 반월역을 나와 야트막한 야산과 텃밭을 끼고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가면 류영복(36세, 조각가) 회원이 동료 조각가 2명과 함께 사용하는 공동작업실이 나온다. 넓은 잔디밭에 가지런히 놓인 조각상들 한 쪽에 컨테이너로 지은 작업장에서 류영복 회원을 만났다.
그는 조각 작품을 만들고 그 일로 먹고사는 조각가다. 다들 먹고살기 힘들다지만 조각가로 사는 건 다른 어떤 직업보다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생업을 꾸려가는 직업으로서 조각가는 쉽지 않죠. 외환위기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도 문화예술분야의 직업이었고요. 그나마 저는 아내가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어 생계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리고 문화예술인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 조형물을 제작하도록 한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간간히 조각품의 수요가 있어, 운 좋게 이런 일을 맡으면 그간의 빚을 청산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돈이 되는 일보다는 대부분 순수창작활동에 매달리고 있는 조각가들에게 먹고사는 일은 장난이 아니에요.”
쉽지 않은 길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다시 태어나도 조각가로 살 거란다. 그에게 조각은 어떤 의미인걸까?
조각의 매력, 자유와 생동감
“좋아서 선택한 길이고, 아직까지 후회나 변함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억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잖아요. 열 번 아니 백 번을 다시 태어나도 조각하는 일을 할 겁니다. 일하다 답답할 때면 근처 바닷가에 가서 낚싯대 드리우고 물가에 앉아 있으면 그렇게 편할 수 없어요. 내 맘 내키는 대로 할 자유가 있는 직업입니다. 경제적인 문제요? 그것도 큰 욕심 안내고 살면 다 즐기며 살 수 있는 겁니다. 남들만큼 살아야 된다고 비교하면서 살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지, 자기 주관이 있으면 없으면 없는 데로 고구마를 쪄먹고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봐요.”
줏대를 가지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물질적인 조건들은 그리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그의 조각들은 모두 인체를 소재로 한다. 그 중에서도 남자의 인체에 주목한다.
“인체는 주제가 다양해서 하면 할수록 흥미로워요. 반면 모두가 잘 아는 소재이기 때문에 함부로 표현할 수 없어 더 어렵기도 하지만요. 저는 인체 중에서도 남자의 근육질에 관심이 많아요. 조각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인체보다도 더 사실적인 근육을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는 동적인 것, 또 살아 움직이는 힘을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컸다. 그런 선호는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제가 운동을 즐겨하는데, 좋아하는 운동을 보면 제 몸을 혹사해서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운동들이 대부분이예요. 조각의 재료로 돌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돌은 다른 재료들에 비해 제작하기 더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려 어렵지만 그런 어려움을 즐긴다고 할 수 있죠.”
그가 조각을 시작하게 된 것도 조각이 갖는 생동감과 힘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조소는 회화에서 느꼈던 답답함에서 벗어나 동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그가 만든 조각들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작품마다 일관된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기억에 남는 작품을 소개했다.
“2000년 당시 연일 뉴스에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이 등장해 다투며 서로를 물어뜯는 모습을 보면서 작품구상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알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통해 우리 모두가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조각으로 형상화한 것이죠. 그 작품의 제목이 ‘이젠 다시 태어날 때…’였어요. 또 청담동에 소재한 건물 앞 조형물로 만든 돌조각에선 개구리가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어요. 자연 전체에서 보면 인간 역시 작은 미물이란 것을 사람을 한탄스럽게 쳐다보는 개구리의 시각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었어요.”
최소한의 후원으로 이뤄지는 엄청난 사회운동
인체에 대한 미적인 관심만큼이나 사람들과 사회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설까 그가 참여연대에 관심을 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5년 전 참여연대 회원이 된 그는 매체를 통해 본 참여연대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대항해 당당하게 비판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좋아 참여를 결심했다고 한다.
“마음에 두면서도 계속 미루고 있다가 문득 나부터 참여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작지만 우선 발이라도 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후원을 시작했지요. 참여하는 만큼 세상이 바뀐다는 문구도 있잖아요. 한달에 고작 5,000원 후원하는데 비해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대변하고 많은 일을 해주는 참여연대를 보면, 최소한의 후원으로 엄청난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그는 조각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서슴없이 참여연대를 소개하고 기회 닿는 대로 가입을 권한다.
“친구들이 사회에 대해 비판할 때면, 말로만 하지 말고 시민단체라도 가입해서 목소리를 내야 사회가 변화되는 거 아니냐고 한마디 하죠.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슬쩍 『참여사회』에 끼어오는 회원가입서를 건넨 적도 꽤 되지요. 기회가 되면 안 빠지고 참여연대를 자랑한답니다. 저는 참여연대 회원인 것이 자랑스럽거든요. 친구들도 제가 참여연대 회원인 것을 알고는 은근히 기뜩하게 생각하더라고요. 하하”
그는 지금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좀 더 넓은 곳으로 나가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접하기 위해서다. 여건에 맞지 않는 외국 현대미술의 조류를 유행처럼 받아들여지는 우리 현실이 화가 난다는 그는 우리만의 독창적인 문화와 양식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흉내 내는 것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 고무신을 신고 자랐는데, 고무신에 나이키를 그려서 신었던 것과 같은 거라고 봐요. 운동화는 신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처럼 이해는 못하고 흉내만 내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세상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고자 애쓰는 그의 마음가짐이 밝고 건강해 보였다. 그의 걸음이 멈추지 않고 씩씩하게 앞으로 내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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