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파키스탄의 지진 현장으로 떠났다. 사흘 먼저 들어간 긴급구호 1차 팀은 여진이 계속 되고 있다는 소식과 산 속 텐트에서 지내게 될 테니 침낭을 준비해 오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번 현장도 녹록지 않을 게 뻔하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파키스탄에는 가지만 지진피해 지역으로 가진 않는다는 뻔한 거짓말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월드비전에서 일한 지 7년이 넘었지만 긴급구호 현장은 이번이 두 번째다. 올해 초 쓰나미로 피해를 본 스리랑카에 의료진과 함께 다녀온 게 유일한 긴급구호 현장 경험이다. 월드비전은 긴급구호 현장에 훈련되지 않은 직원의 접근을 통제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훈련되지 않은 직원은 도움보다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긴급구호 현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우리와 숙식을 함께 하며 도와준 세 명의 자원봉사자다. 한 명은 미국 유학중인 파키스탄 만세라 출신의 이샴, 또 한 명은 아버지가 군 고위직에 있다는 KJ,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30대 초반의 사업가 아가다. 보석 무역을 하는 아가는 생업을 제쳐 두고 우리와 함께 먹고 자며 구호활동을 도왔다.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구호활동을 도와주고, 통역을 위해 가족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집도 기꺼이 내주는 헌신성을 보여주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현지 활동은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쓰나미 현장인 스리랑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무슬림 여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었다. 당시 개학할 시기가 지났지만 난민들이 교실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는 개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뾰족한 대책을 세울 수 없었던 스리랑카 정부는 강제로 개학할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이 무슬림 학교는 정부의 이러한 조치 이전부터 수업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자기 집에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렇게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교장 선생님께 물었다. 그는 “이 아이들은 몹시 가난한 집의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언제 이런 상황이 다시 닥칠지 모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려운 상황에 맞서나갈 힘을 길러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을 시킵니다”라고 대답했다. 가슴이 찡했다.

긴급구호 현장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사람들의 절박한 상황이나 우리가 주는 도움에 대해서만 말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동포의 고통을 가슴 아파하며 생업조차 포기하고 도와주는 이들,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악조건 속에서도 노력하는 현지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난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다. 스스로 노력하는 그들을 만날 때 돕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지고, 그들이 있어 한숨짓는 땅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희망을 우리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혜원 월드비전 홍보팀 주임
2005/12/01 00:00 2005/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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