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서른다섯의 나이를 꽉 채워 결혼했다. 서른여섯인 올 연말엔 첫 아기를 출산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나와 12월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달인 12월이 결혼기념일과 내 생일, 첫 아기의 생일을 몽땅 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기가 출산예정일인 12월 31일을 정확히 맞춰야 하고, 만일 단 하루라도 출생 일이 뒤로 미뤄진다면 이 얘기는 오보가 될 수 있다.

임신 34주차를 보내고 있는 임부의 일상은 하루하루가 참 버겁다. 임신 8개월까지는 그럭저럭 견딜만했지만 9개월로 접어들면서부터는 그야말로 몸이 ‘장난이 아닌’ 상태가 됐다. 일상적으로 해왔던 일도 배가 불러오는 만큼 힘겹게 느껴진다. 산고의 고통을 겪은 여자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 임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심각한 저출산 시대에 고통을 이기고 아기를 낳아주는 ‘고마운 여자’이자, 함께 일하기에는 영 ‘불편한 객체’라는 생각이다.

우선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만나는 뭇 사람들의 표정에서 불편함을 역력히 읽는다. 신문을 보거나 차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임부와 눈이 마주치면 갑자기 신문을 접고 눈을 감아버린다. 더러는 ‘제발 저 여자, 내 앞에 서지 말아줬으면…’ 하는 눈길을 만나기도 한다. 요즘엔 버스 안에도 노약자석이 마련돼 있지만 출근시간에는 똘레랑스가 발휘될 턱이 없다.

동종업계 종사자들도 임부와 일할 때 유감없이 불편함을 드러낸다. 지난 9월 해외출장 당시 프레스센터에서 남성 기자들은 임부를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워댔다. 주변에서 대여섯 명이 담배를 동시에 피워댈 때는 차라리 임부가 자리를 떠나는 편이 나았다. 출장 마지막 날엔 모두 한마디씩 사과하기는 했지만, 돌아서면 다시 담배를 피워 문다. 변화는 없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작은 분노거리는 개별적으로 풀어갈 수 있지만, 육아문제는 사회가 나서주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뱃속에 있는 아기가 생후 3개월 이후엔 어딘가 맡겨져야 하는데 정말 대책이 없다. 얼마 전 ‘만 2세 이하 영아전문 보육원’이 문을 닫게 되자 엄마들이 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것도 그냥 스쳐지나 보낼 수 없는 일이다. 한국사회의 영유아 보육문제는 매우 개인화 돼 있다. 영유아 보육에 대한 사회적 기반마련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있지만 언제쯤 현실화 될 수 있을 지 답답한 실정이다.

이 가운데, 얼마 전에 만난 50대 선배 여성언론인들의 ‘사회적 할머니론’은 귀가 번쩍 뜨일만한 얘기였다. 대부분 전문직 여성으로서 일을 놓지 못해 애를 낳기만 하고 보육은 모조리 친정엄마나 시어머니한테 맡겼던 세대들이 이제는 ‘사회적 할머니’가 되어 아기 봐주기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아름다운 가게처럼 ‘아름다운 사회적 할머니’들이 동네마다 있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았다. 사회가 흉포화 되면서 안심하고 아기를 맡길 터전이 없기 때문에 아기는 무조건 가족이 돌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엄마들도 있다. 그러나, 편안한 ‘사회적 할머니’들이 동네 곳곳에서 팔을 내민다면 30대 직장여성 엄마들이 맘놓고 사회활동과 보육을 동시에 척척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 할머니를 기다려본다.

장윤선(오마이뉴스 민족국제부 기자)
2005/12/01 00:00 2005/12/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1532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