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의 ‘독립선언’
2006/2006년 02월 :
2006/02/01 00:00
테마기획_인터넷
“너는 우리를 지배할 도덕적 권리도 없고, 우리가 무서워할 만한 강제적인 방법도 갖고 있지 못하다.” 1996년 사이버공간의 해방을 추구하며 발로우가 내뱉은 저항의 한 구절이다. 밀턴이 인쇄매체의 출현에 즈음하여 출판의 검열과 허가제를 추구하는 권력에 저항했듯이, 사이버스페이스독립선언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자신의 세력권 안에 묶어놓고 식민화하고자 하는 산업권력, 정치권력에 단호한 투쟁의 결기를 내보인다. 그리고 이 독립선언은 인터넷을 명실상부한 해방공간으로 재구축하고자 하는 무수한 노력과 투쟁의 지침이 되어 왔다.
인터넷 통제방식의 허구성
민주주의라는 것이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치권력이 그 매체를 통제해야 할 이유는 결코 적지 않다. 아직도 정치후진국에서는 전화나 팩스가 통제되고 있으며 인터넷의 연결지점마다 검열 체제를 구축하고 있음은 그 좋은 예다. 국민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통제되어야 의식과 사상을 통제할 수 있으며 그 결과로서 행동에 대한 통제까지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통제의 필요성은 민주화가 상당히 진척된 ‘정치선진국’들이라 해서 없지 않다. 단지 그 방법과 기술과 체제가 보다 은밀하고 정교해질 뿐이다.
그 첫 번째 방법이 낙인을 찍는 것이다.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혐오발언을 사이버폭력이라 이름짓고 성폭력, 학교폭력 등과 나란히 규제하고자 하는 최근의 시도들은 그 전형이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탈 문제를 굳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하고, 전자에 대하여 후자와는 다른 가치판단을 행하면서 사회문제로 과장하는 것이다. 통신실명제 운운하는 대책들은 이런 허구성을 드러낸다. 일탈행동을 치유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행위특성이나 요인 분석은 생략한 채 오로지 익명성이라는 단 하나의 인터넷특성에만 규제의 초점을 맞춘다. 통신실명제는 그래서 음모론으로 치부될 가능성을 안게 된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의사소통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실명자로 한정함으로써 일종의 진입장벽을 설치하는 효과를 거두게 되고, 인터넷 의사소통 체계를 국가가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게 하는 것이다.
이런 통제방식은 인터넷상의 음란 유해표현의 통제라는 명제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어떠한 표현유형들을 도덕적, 혹은 사회적 악이라고 낙인찍고 인터넷의 특유한 현상으로 포장하면서 그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표현의 영역에 국가가 간섭하게 된다. ‘청소년 보호’라는 담론의 허구성은 차치하고 사이버포르노 운운하면서 이로부터 아동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제시되는 각종 여과 프로그램들은 국민들을 향해 은연중에 ‘유해’의 개념을 섹스, 폭력, 언어(폭언), 누드의 네 가지로 한정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그것은 아동을 유해표현으로부터 차단하는 효과를 거둠과 동시에 일반 국민에 대하여 이 네 가지의 표현 또는 행위들은 언제나 사회적 악으로 규정될 수 있음-역으로 이 네 가지 외의 것들은 ‘유해’ 하지 않음-을 훈육하는 일종의 미시권력으로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오프라인의 실천 윤리로 확장되어야 할 온라인 독립선언
저작권과 같은 사적 권리는 국가가 사이버공간에 개입하는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한다. 실제 정신적 창작의 경우 동시대에 공유되고 있는 문화의 한 결과로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은데도 시장주의에 빠진 국가는 이를 재산으로 규정한다. 더 나아가 이에 관한 분쟁을 형사문제로 만들어 범죄로 처벌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대중문화의 형성과 발전을 저작권자들의 처분에 종속시킴으로써 상업주의 산업주의가 문화를 농단하게 만들어버린다. 저작권침해범죄의 단속권을 가지는 국가는 P2P, 웹하드 등 다양한 인터넷소통방식들에 대한 전방위적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조작을 바탕으로 인터넷 전반에 걸친 감시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사이버폭력을 예방 교정하고 사이버포르노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나 사이버수사대와 같이 전방위적으로 인터넷 공간을 훑어 나가는 감시체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이들은 인터넷상의 표현들을 감시하면서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그 표현의 게시를 정지하거나 삭제 폐쇄를 정보통신부장관 등에게 권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실제 이런 통제장치들은 미국연방대법원이 말하는 검열에 해당되어 위헌이 된다. 하지만, 우리의 둔한 인권현실은 오히려 정권의 차원에서 혹은 국무총리의 단호한 결단이라는 이름으로 이것들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퇴행성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 ‘저격’ 만평사건에 이르러서는 수사착수, 혐의검토 등 형사사법권을 전제로 한 협박을 하며 물리력에 의한 사이버공간 통제 의도까지 드러내 보였다.
문제는 이 모든 통제가 온라인에만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국가권력이 온라인을 통제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오프라인의 질서를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이버폭력은 오프라인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MP3파일 공유는 신자유주의적 재산권 개념을 흔들어놓는 도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이버공간의 해방성에 힘입어 자유로이 형성되는 하위문화, 대항문화들은 새로운 문화정치의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한다. 그래서 국가권력은 인터넷 의사소통에 주목하게 되고 ‘참여’ 정부라는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물리력 사용도 서슴지 않으려 한다.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은 타당하다. 그것은 온라인공간과 오프라인공간을 가르고 전자의 이념적 해방을 지향한다는 맥락보다는, 사이버공간의 문제를 핑계삼아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인간생활을 훈육하고자 하는 미시권력의 폭력을 방비하기 위해 필요하다. 바로 이 점에서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은 오프라인의 실천윤리로 살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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