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몰고 온 일상의 변화
2006/2006년 02월 :
2006/02/01 00:00
테마기획_인터넷
‘사이버여론’ 또는 ‘넷심’을 배제한 채 여론을 파악하고 민심을 읽을 수 없는 시대다. 삶의 영역에도 인터넷이 깊숙이 개입해 ‘온라인 삶’이란 용어가 낯설지 않다. 인터넷을 매개로 개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의 집합체는 ‘가상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삶의 일부 ‘인터넷’
초기에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이 정보와 의견을 소통하는 편리한 ‘도구(tool)’였다. 이메일로 문서를 전달하고 웹으로 자료에 접근하는 등 인터넷은 커뮤니케이션의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점차 인터넷은 ‘장소(place)’로 활용되었다. 인터넷이 창출하는 사이버공간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고(채팅), 놀이를 즐기며(게임), 취미를 공유한다(동호회).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동창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매일같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의 폭발적 인기는 도구로서의 인터넷이 장소화된 대표적 사례다.
인터넷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인터넷은 삶의 ‘존재양식’이 되었다. 필요에 따라, 특정한 목적을 갖고 인터넷에 접속하고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끼니를 때우고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인터넷이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일부로 편입된 것이다. 마치 사람이 안경을 끼고 또렷하게 세상을 보면서도 안경을 의식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 인터넷을 이용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익명성의 긍정적인 힘과 부정적인 힘
인터넷이 자연스레 일상의 일부가 되었기에 삶의 양태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인터넷은 기존 미디어와, 사이버공간은 현실세계와 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 의사소통과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많은 사람들이 익명성을 꼽는다. 익명성은 현실세계에서 드러나기 마련인 ‘사회적 맥락 단서’의 부재를 의미한다. 사회적 맥락 단서란 대면 상황에서 외모나 옷차림 등을 통해 드러나며 현실세계에서 종종 차별적 요소로 작용한다.
사회적 맥락 단서의 부재, 즉 익명성이 용인되는 사이버공간에서는 자신의 정체가 잘 드러나지 않기에 신분 노출에 대한 거리낌 없이, 그리고 차별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누구나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또한 지위에 따른 말 순서의 배분이 존재할 수 없기에 모든 사람들의 평등한 참여가 저절로 보장된다. 사이버공간에서 사람들이 개방적 태도를 취하고 쉽게 연대감을 느끼며 새로운 유대관계를 맺는 주된 이유다.
익명성은 개인으로 하여금 행위의 결과에 아무런 책임의식을 갖지 않도록 하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무책임한 행동을 유발하거나 흥분되고 절제되지 않은 표현을 남발하며, 심지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위협을 가함으로써 사이버공간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도 사이버공간에서 이용자들이 무책임한 행동과 극단적인 사고를 더 쉽게하며 이러한 경향은 연령이 낮을수록 두드러진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익명의 개인들이 모여 형성하는 가상공동체에서는 동조행동과 집단사고가 횡행하기 쉽다.
그리고 이는 배타성을 특징으로 하는 집단적 양극화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때때로 이러한 가상공동체의 특성은 국가나 사회적 차원에서 역동적인 에너지로 작용한다. 2002년의 월드컵 축구와 대통령 선거에서 목격한 붉은 악마와 노사모의 활약이 그 단적인 경우다. 하지만 최근의 황우석 파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사이버공간은 마녀사냥식 집단광기가 기승을 부리는 온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인터넷 보편화에 따른 일상생활과 개인의 심리·행동적 변화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 그리고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법칙은 현실의 그것과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와 평가는 사이버공간에서 일어나는 특징적 현상을 현실세계에서 통용되던 기준으로 재단하는 맹점이 있다. 사실 일상과 그 주체인 인간의 심리와 행동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해석과 관점의 문제다. 따라서 이에 관해서는 비근한 예로 성선설이나 성악설 등 다양한 이론과 원리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현실세계에 기반을 둔 것이며, 인간이 발 딛고 사는 현실세계의 법칙은 사회적으로 부여되고 강제된 질서와 규범에 기초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이버공간은 물리적으로 형성된 현실세계와 다르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질서와 규범에 토대를 두기보다 인간의 욕구충족 심리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현실세계에서는 인간의 욕구가 충족되면 그 물건의 가치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즉, 배고플 때 먹는 자장면 한 그릇은 3,000원의 가치가 있지만 배부른 뒤의 자장면은 그만한 가치를 상실한다. 하지만 사이버공간에서는 특정 방식의 행동을 취하고 나면 그 행동이 갖는 효용이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증가하는 행동체증 현상이 벌어진다. 현실에서 자장면을 매일 먹으면 질리지만 사이버공간에서는 더 많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온라인게임에 빠져드는 등의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이버공간의 심리와 행동법칙은 따로 있다.
사이버공간이 현실세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인지하면서도 정작 사고의 틀은 기성의 가치판단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서는 인터넷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를 바로 볼 수 없다. 시선을 바꾸는 것. 인터넷이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양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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