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건조하고 황량했다. 간간히 눈이 내렸으나 예전만큼의 분량은 아니었다. 문명으로 가열된 이 도시에서 예전의 함박눈을 기대하기란 이미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슬픈 일이다. 순백이 떠나버린 겨울은 얼마나 황량한 것인가? 우리의 겨울은 언제나 순백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지난 시간의 아픔과 착오들을 지우개로 싹싹 지우고 새로운 붓질을 기다리는 도화지. 망각의 기다림 인지도 모를 일이다. 밤새 소복이 눈 내리고 간유리 창으로 푸르고 흰 새벽빛 스미는 아침나절, 창을 열면 온통 순백으로 묻혀있을 풍광이 참으로 그리웠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올겨울은 그런 날이 없었다. 겨울은 그저 힘겨웠다. 흉흉한 바람 몰아치던 빌딩 숲 그늘 아래서, 나는 몇 해전의 겨울 동강을 떠올렸다.

그해 겨울에 이 길을 걸었었다. 겨울의 동강은 레프팅 객으로 붐비는 봄에서 가을과 달리, 인적이 거의 끊기는 천혜의 대자연, 맑고 외진 옛 동강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목표로 잡은 구간은 강원도 영월군 거운리부터 정선군 귤암리까지의 60여 키로미터. 수은주는 영하 십오도까지 떨어졌고 강은 꽁꽁 얼어붙었고 게다가 많은 양의 눈까지 내려 길도 끊긴 상태였다. 쉽지 않은 길이었으나 출발한지 반나절도 못되어 이내 겨울 동강의 마력과도 같은 매력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꼬박 하루를 걷고 칠족령 초입의 민박집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새벽에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서둘러 길을 나섰다. 그러나 그날의 일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연거푸 강을 두 번 건너야 했었는데 두 번째 건넘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언 강 위를 걷다가 얼음이 깨지고 만 것이다. 물이 휘돌며 잠시 숨을 고르던 그 곳은 매우 깊은 곳이었다. 침잠. 빙하의 겨울 강속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우습게도 죽음이 아니었다. “죽고 사는 일이야 운명일테지… 난 내가 여기서 죽을 운명이라고는 절대 생각 안해. 다만 동상에 걸려 발가락이라도 한마디 자르게 되면 참 불편할테지, 검지손가락을 자르면 큰일이지, 사진 찍는 놈이 검지가 없으면 어떻게 사진을 찍지? ”

배낭을 강의 한가운데 놔둔 채 겨우 몸만 빠져 나왔다. 몸은 금새 얼어붙기 시작했다. 동상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다행히 폐가가 한 채 나타났다. 허름한 목조로 된 그 집의 벽 한 면을 모두 부쉈다. 그리곤 불을 지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네 시간 동안 옷을 말리고 몸을 녹였다. 그리곤 다시 밤이 왔다. 마른 옷을 입고 강에 나가 소리를 질렀다. 강 건너의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산과 산, 강의 이편과 저편으로 부질없이 메아리만 흘러 다녔다. 폐가에서 먹빛보다 짙은 밤을 보냈다.

그로부터 다시 동강을 찾기까지 4년이 걸렸다. 이듬해는 강이 두려웠고 그 이듬해와 또 그 이듬해는 강을 잊었다. 지난 해 겨울은 춥고 힘겨웠다. 힘겨움 속에서 불현듯 동강이 떠올랐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동강은 그리움이 되어 있었고 겨우내 강의 물비린내가 콧등 주위로 어른거렸다. 순백의 언 강이 그리웠지만 다시 찾을 땐 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생한 바람이 부는 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 것들이 스르르 녹고 움츠렸던 것들이 기지개를 펴는 강을 걸으며 나 또한 그처럼 봄이 되길 희망했다.

남정우자유기고가
2006/03/01 00:00 2006/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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