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 미국과 한국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했다. 사실, 양국 정부로서는 거의 10년 만에 ‘꿈’을 실현한 샘이다. 한미FTA는 경제위기 이후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한 97-98년 ‘양자간 투자협정(BIT)’ 형태로, 한일BIT 및 한-칠레 FTA와 함께 제기됐다. 한-일 BIT는 2001년 말에 타결됐고, 한칠레FTA도 진통 끝에 2004년에 비준됐다.

그러나 한미BIT는 미국과의 협정인 만큼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스크린쿼터 논쟁과 쇠고기 파동 등으로 계속 표류해왔다. 그러다가 최근 양국 정부는 조건이 형성됐다는 판단을 한 것이고, 나아가 ‘투자’만을 다루는 ‘투자협정’을 넘어, 상품무역, 농업, 서비스, 지적재산권까지 포괄하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협상을 시작한 것이다.

FTA, 기본적인 노동권과 환경권도 주장 못하는 결과 초래

자유무역협정은 어느 나라와 체결하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역’을 자유화한다고 하지만 농업을 개방하고, 공공서비스를 상업화하고, 산업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야기하는 등 전체적인 사회양극화를 야기한다. 1994년에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이 어떻게 미국, 캐나다, 멕시코 노동권과 인권을 침해하고, 사회양극화를 악화시키며 전체적인 삶의 질 저하를 가져왔는지는 이미 많이 알려졌다.

발효한 지 얼마 안된 한칠레FTA의 악영향도 점차 나타나고 있다. 슈퍼에 한국과일보다 미국 딱지가 붙은 칠레과일이 더 많다는 사실은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대칠레 수출 급증으로 삼성전자가 기록했다는 엄청난 이익은 일반 국민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도 누구나 느

낄 수 있다.

그러나 FTA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분쟁해결절차를 가지고 있어 무역협정이 사실상 국제‘법’으로 작용하고, 국내법보다 우선시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일국 정부의 정책결정권 나아가 민주주의가 침해당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국제법’이 오로지 기업의 이익만을 보호하고 있다는 면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이번 한미FTA는 위와 같은 일반적인 문제점에 더해, 몇 가지 문제점을 추가로 안고 있다. 첫째는, 양국 정부가 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을 대체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한미FTA가 얼마나 정치적인 협정인지를 드러내주며, 또한 양국간 군사·외교적 동맹을 넘어, 경제·사회·정치 모든 부분에서 ‘동맹’-사실상은 ‘종속’- 관계를 강제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한미FTA는 나프타와 2004년 미국 정부가 내놓은 ‘모델 투자협정’의 문안을 그대로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인데, 이 두 협정은 기업의 이익과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는 면에서 광범위한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한 국가로부터 이윤활동을 ‘방해’받았다고 판단한 기업은 한 국가 정부를 분쟁해결절차에 회부할 수 있고, 여기에서 국가가 패소할 경우 국가는 기업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대부분의 FTA는 ‘국가 대 국가’ 조항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프타와 모델 투자협정은 ‘혁신적’이다. 이 악명 높은 ‘투자자-국가’ 조항은 기업으로 하여금 타국의 환경이나 노동권 등에 대한 각종 보호정책을 ‘이윤활동에 대한 방해물’로 간주, 이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나아가 국가 혈세를 기업에 ‘배상’하도록 하는데 이용당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에틸(Ethyl)사와 캐나다 정부 간 분쟁인데, 캐나다가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있던 미국의 에틸사에 영업유예 처분을 내리자 에틸은 나프타를 이용해 캐나다 정부를 제소하였고, 패소한 캐나다 정부는 1,300만 달러를 에틸에 헌납해야 했다. 또 다른 사례는 역시 미국의 메탈클래드(Metalclad). 메탈클래드도 ‘부당한’ 환경규제로 영업을 방해했다며 멕시코 정부를 제소했고, 1,560만 달러를 배상금으로 얻어낸 바 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활동하던 캐나다 장례업자가 부당영업행위로 벌금령을 받자 ‘보복’하기 위해 미국정부를 제소한 사례, 탈세 혐의로 벌금을 내야한 미국 기업이 멕시코 정부를 제소한 사례 등, 지난 10년 간 나프타 하에서 발생한 이와 같은 사례는 끝이 없다. 미국 주들이 최근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내놓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

투자협정이나 FTA 내 투자자유화 조항이 투기를 투자로 둔갑시킨다는 것도 문제이다. 한국 정부는 대내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대외적으로는 FTA나 투자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면, 경제가 발전할 것이라 주장한다.

이미 초국적 기업들이 온갖 불법 행위를 일삼고 투자가 아닌 투기로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는데, 한미FTA는 단시기성 ‘투자’도 보호하기 때문에 지금 한국 금융부문이 안고 있는 이런 문제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통상적으로 FTA나 투자협정은 ‘이행의무부과금지’ 조항을 가지고 있어 장애인고용·내국민고용·국내자제사용 등 각종 ‘의무’를 부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오히려 투자가 아닌 ‘투기’를 장려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미FTA가 체결되면 현 98억 달러의 대미무역흑자가 4년 뒤에는 9억 달러 감소하고, 5년 뒤에는 무역적자로 바뀔 것이라 한다. 쌀을 제외하면 농업총생산액 2조 원 감소, 쌀을 포함하면 8조 원이 넘는 손실을 보게 된다고 한다.

나아가 지난 1998년 한미BIT가 제기될 시절, 미국이 BIT를 통해 에너지 사유화나 핵폐기물처리 ‘수입’도 협상하려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또한 미국 기업들이 한국 교육시장이나 의료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으며, 이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각종 교육, 의료 상업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미 알려진 바이다.

이렇듯 한미FTA는 그야말로 ‘자본을 위한 권리헌장’이며, 이 속에서 인권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한미FTA를 비롯해 WTO나 각종 자유무역협정을 막아내는 것은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전소희 자유무역협정 WTO반대 국민행동 사무처장
2006/03/01 00:00 2006/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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