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는 학교에서 우유 안 먹어. 걔네 아빠가 우유를 반대해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대. 엄마도 그렇게 좀 해 줘, 제발.”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큰 아이가 며칠 전 대단한 사실이라도 발견한 듯 호들갑을 떨며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우유를 좋아하지 않는지라 우유 급식을 여간 큰 고역으로 여기지 않는다.

“○○가 오늘 우유 먹고 토했어. 걔는 원래 우유를 잘 소화 못 하는데 억지로 먹는대.”

“우유를 빨리 먹는 모둠에 선생님이 사탕을 주시는데, 나 땜에 우리 모둠이 사탕을 못 받았다고 애들이 나한테 뭐라 그래.”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아이는 우유와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시시콜콜 전하며 몇 해째 스트레스를 하소연해오고 있다. 그런데 주변 아이들 말을 들어보니 우유를 싫어하는 아이가 비단 우리 아이만은 아닌 듯 어른들 눈을 피해 우유를 처치하는 편법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창문 밖으로 쏟아버리기, 변기에 흘려버리기는 고전적인 수법에 든다. 질주하는 자동차 바퀴에 우유를 던져 터뜨리는 ‘우유폭탄’ 놀이를 즐기는 악동들이 있고, 슈퍼마켓에 급식용 우유를 들고 와 과자와 바꿔달라는 맹랑한 꼬마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간단한데, 문제는 안 먹을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어린이신문의 경우 구독 의사와 보고 싶은 신문 종류까지 물어본다는데 우유를 마시겠는지 물어보는 설문지는 받아본 적이 없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우유를 점심 급식에 포함시켜 급식비를 받고 있고, 급식을 할지 말지 의례적으로라도 물어보지를 않는다. 몇몇 학교에서 흰 우유 대신 요구르트나 가미 우유를 마실 것인지 물어주는 것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아이가 저학년이었을 때 점심과 우유 급식을 안 할 수 없는지 조심스럽게 문의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담임 선생님은 부드럽지만 분명한 어조로 안된다고 하였다. 그 뒤로 까다로운 학부모로 비춰질까 겁나 두 번 다시 말을 못 꺼냈다.

우유 급식은 아이가 아토피 체질이든,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체질이든 예외가 없다. 이웃의 한 아이는 아토피를 앓고 있어서 집에서 유제품을 먹이지 않고 가공식품과 육식도 피한다. 그런데도 아이 엄마는 우유 값을 꼬박꼬박 내면서 집에서 가져간 미숫가루를 아이에게 먹게 하고 우유는 가져와 개에게 주도록 했다.

우리 아이들이 젖먹이가 아니고 송아지는 더더욱 아닌데, 입에 안 맞고 소화가 잘 안 된다는데, 왜 날마다 소젖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죽을 때까지 좁은

우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항생제 투성이의 사료를 삼킨 소들이 온갖 스트레스 받으며 생산한 젖을 아이들 또한 스트레스 받아가며 먹는데 몸에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설령 그것이 가장 완전에 가까운 식품이라 할지라도 매일 강제로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답답하다. 어린이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어른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기만 하라는 어른 편의주의 아니면 무엇인가. ‘어떤 사회에서든 아기에게 우유를 주는 것 보다 더 훌륭한 투자는 없다’고 누군가가 한번 해본 말을 언제까지나 금과옥조로 떠받들어야 하는지 무력한 학부모는 새학기를 앞두고 또다시 고민스러워진다.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2006/03/01 00:00 2006/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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