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제일이요, 작물은 그 다음이드래요
2006/2006년 04월 :
2006/04/01 00:00
깨가 쏟아진다는 결혼 첫해, 우리 부부는 참깨를 쏟아지게 할 작정으로 묵은 모래밭을 찾았다. 누군가 깨밭은 마사 땅이 물도 잘 빠지고 씨도 잘 붙는다고 해서 박카스 병에다 깨를 넣고 구멍을 뚫은 다음 막대기에 매달고 다른 막대기로 탈탈 치면서 작은 비닐 구멍에 심고 모래를 덮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그러나 수확은 형편없었다. 이유인즉, 그해 탄저병이 온 것도 있었지만 깨송이가 작은 것이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이었다. 남들이 말한 마사 땅을 나는 모래가 많은, 영양분 없는 사토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1986년 강원도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농활 후배와 하루종일 밭에 있는 돌을 모아 밭 중간에 쌓는 일을 하면서 ?일일삼찬 보장하라?는 구호도 외치고 선배 흉도 보면서 비탈 밭에서 배꼽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인연이 되어 강원도에서 돌 많은 밭을 경작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땅심을 높이는데 거름이 최고라는 생각에 소똥 한 차에 5만 원씩 치고 내가 마구간에 가서 삼지창으로 실어봤자 고작 1t 차로 두 번 나르면 해가 저물었다. 남의 황무지 땅을 옥토로 바꿔놨더니 그 다음해 주인이 땅을 떼더라는 말을 들은 터라 돌 골라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땅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을 게을리 한 것이 결국 내 손해로 돌아오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였던 것 같다.
좌충우돌 귀농생활
내가 아는 농사꾼 한 분은 새벽에 어두울 때 하우스에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사위가 밝아지면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우스 안의 작물이 잘 자라지 않아 원인을 알아봤더니, 쌓아 놓은 지 얼마 안된 소똥을 거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부식이 덜 된 상태라 작물에 소화가 되지 않았고, 흙에 완전히 결합되지 못한 비료가 땅을 굳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흙과 작물의 관계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 해는 고추를 심는데 얼마만큼 간격을 두어야 할지가 고민되었다. 다른 사람 하던 대로 45㎝ 간격이 좋다고 하는데 땅이 척박하거나 걸찬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니 더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배게 심으면 많이 심겨지니 수확도 많을 것 같은데 땅이 걸차다고 많이 심었다간 고추가지가 엉겨 통풍이 안 되고 열매도 잘 익지 않으며 꽃 수정도 잘 되지 않으니 되려 손해가 아닌가?
콩만 보더라도 양분이 많은 땅보다는 수분을 유지할 수 있는 식양토가 수확이 많다. 우리 동네는 담배 후작으로 메주콩을 심는데 올콩이라 늦게 심어도 수확량이 많이 난다. 그래 동네에서 두 말인가 사서 심었는데 잎만 무성하고 줄기는 땅에 쓰러질 정도로 길게 늘어져 그냥 놔뒀더니 300평에 반 가마도 못했다. 전작으로 고추를 심었는데 거름을 거저 얻어다 쓴 것이 소 발톱도 나오는 축산 폐기물이었다. 덜 발효된 걸 뿌리고 비닐을 씌웠더니 시들음병이 심해지고 얼마 수확을 하지 못한 채 뽑아냈던 밭이었다. 거름기와 부패된 균이 많은 땅인데 콩을 심었으니 질소고정균인 근균균이 제대로 활동하기도 전에 웃자란 것이다. 그때 예초기로 두 번만 날려줬어도 ‘앗 뜨거!’ 하면서 생식성장을 하려고 열매를 많이 매달았을 건데 콩 농사가 게으른 놈에게 딱이라고 여겼으니 꽹과리치고 야단법석을 떤 것이 우습게 돼버렸다.
살려내어도 부족한 땅에 미군 기지를 세운다니
그러다 내가 대오각성한 계기는 친환경 농업한다고 흙을 살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수확을 포기한 오이, 토마토 재배부터였다. 청고병은 객토를 해도 온다는 말을 듣고 다시는 상업적 연작이나 비료에 의존하는 농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7년째 종균덩이나 경종부산물(볏짚, 콩짚, 깻짚, 쌀겨 등)을 집어넣고 손으로 김을 매거나 사료포대, 볏짚을 이용한 제초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동네 아저씨의 겨울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퇴비더미를 만들지 못하고 잡초 우거진 고추밭에서 별 대책 없이 흙을 원망하기도 한다.
얼마 전 평택 대추리에 논 갈러 갔을 때 쟁기에 뒤집어진 논흙을 보고 참 좋은 흙이라고 느꼈다. 개흙인데 기부리(뿌리)가 많이 들어있는 보드라운 식토가 농부의 마음 같아서 그렇게 서러울 수 없었다. 콘크리트에 덮여버리거나 무기탄약고에 돌아누울 어머니 젖가슴 같은 흙을 만지작거리며, 이 흙은 우리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것만도 아니고 물새와 바람과 고라니의 것만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인데 누가 감히 이 흙을 뺏으려드는가 고함이라도 질러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1986년 강원도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농활 후배와 하루종일 밭에 있는 돌을 모아 밭 중간에 쌓는 일을 하면서 ?일일삼찬 보장하라?는 구호도 외치고 선배 흉도 보면서 비탈 밭에서 배꼽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인연이 되어 강원도에서 돌 많은 밭을 경작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땅심을 높이는데 거름이 최고라는 생각에 소똥 한 차에 5만 원씩 치고 내가 마구간에 가서 삼지창으로 실어봤자 고작 1t 차로 두 번 나르면 해가 저물었다. 남의 황무지 땅을 옥토로 바꿔놨더니 그 다음해 주인이 땅을 떼더라는 말을 들은 터라 돌 골라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땅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을 게을리 한 것이 결국 내 손해로 돌아오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였던 것 같다.
좌충우돌 귀농생활
내가 아는 농사꾼 한 분은 새벽에 어두울 때 하우스에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사위가 밝아지면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우스 안의 작물이 잘 자라지 않아 원인을 알아봤더니, 쌓아 놓은 지 얼마 안된 소똥을 거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부식이 덜 된 상태라 작물에 소화가 되지 않았고, 흙에 완전히 결합되지 못한 비료가 땅을 굳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흙과 작물의 관계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 해는 고추를 심는데 얼마만큼 간격을 두어야 할지가 고민되었다. 다른 사람 하던 대로 45㎝ 간격이 좋다고 하는데 땅이 척박하거나 걸찬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니 더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배게 심으면 많이 심겨지니 수확도 많을 것 같은데 땅이 걸차다고 많이 심었다간 고추가지가 엉겨 통풍이 안 되고 열매도 잘 익지 않으며 꽃 수정도 잘 되지 않으니 되려 손해가 아닌가?
콩만 보더라도 양분이 많은 땅보다는 수분을 유지할 수 있는 식양토가 수확이 많다. 우리 동네는 담배 후작으로 메주콩을 심는데 올콩이라 늦게 심어도 수확량이 많이 난다. 그래 동네에서 두 말인가 사서 심었는데 잎만 무성하고 줄기는 땅에 쓰러질 정도로 길게 늘어져 그냥 놔뒀더니 300평에 반 가마도 못했다. 전작으로 고추를 심었는데 거름을 거저 얻어다 쓴 것이 소 발톱도 나오는 축산 폐기물이었다. 덜 발효된 걸 뿌리고 비닐을 씌웠더니 시들음병이 심해지고 얼마 수확을 하지 못한 채 뽑아냈던 밭이었다. 거름기와 부패된 균이 많은 땅인데 콩을 심었으니 질소고정균인 근균균이 제대로 활동하기도 전에 웃자란 것이다. 그때 예초기로 두 번만 날려줬어도 ‘앗 뜨거!’ 하면서 생식성장을 하려고 열매를 많이 매달았을 건데 콩 농사가 게으른 놈에게 딱이라고 여겼으니 꽹과리치고 야단법석을 떤 것이 우습게 돼버렸다.
살려내어도 부족한 땅에 미군 기지를 세운다니
그러다 내가 대오각성한 계기는 친환경 농업한다고 흙을 살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수확을 포기한 오이, 토마토 재배부터였다. 청고병은 객토를 해도 온다는 말을 듣고 다시는 상업적 연작이나 비료에 의존하는 농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7년째 종균덩이나 경종부산물(볏짚, 콩짚, 깻짚, 쌀겨 등)을 집어넣고 손으로 김을 매거나 사료포대, 볏짚을 이용한 제초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동네 아저씨의 겨울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퇴비더미를 만들지 못하고 잡초 우거진 고추밭에서 별 대책 없이 흙을 원망하기도 한다.
얼마 전 평택 대추리에 논 갈러 갔을 때 쟁기에 뒤집어진 논흙을 보고 참 좋은 흙이라고 느꼈다. 개흙인데 기부리(뿌리)가 많이 들어있는 보드라운 식토가 농부의 마음 같아서 그렇게 서러울 수 없었다. 콘크리트에 덮여버리거나 무기탄약고에 돌아누울 어머니 젖가슴 같은 흙을 만지작거리며, 이 흙은 우리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것만도 아니고 물새와 바람과 고라니의 것만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인데 누가 감히 이 흙을 뺏으려드는가 고함이라도 질러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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