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런 일을 믿을 수 있습니까? 대전에 사는 연봉 2,640만 원(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을 받는 4인 가족의 가장인 김 아무개 씨는 매년 780만 원씩 내는 단체의 회원이다. 아니 김 아무개 씨뿐 아니라 대전에 사는 사람 거의 모두가 그렇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나.

대한민국 헌법은 지방자치를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헌법 117, 118조). 또 이에 근거한 지방자치법은 국민은 자신이 사는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 주민이라는 지위를 갖는 회원이 되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를 스스로 책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지방자치법 12조). 이렇게 국가는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국민을 가입시킨 대신에 약간의 특권을 준다. 그것은 바로 지방자치단체 행정의 혜택을 균등하게 받을 권리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산과 공공시설을 이용할 권리다(지방자치법 13조).

이런 규정에 따라 대전시 행정의 혜택을 돈으로 예정해 놓은 2006년도 당초 예산 총액인 2조 8,600억 원(자치구 예산 포함)을 대전 인구인 146만 여 명으로 나누면 1인당 부담하고 혜택을 보아야 할 금액이 195만 여 원이다. 여기에 4를 곱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매년 780만 원의 회비를 강제로 내야 하는 단체의 회원으로 대전시민들은 가입되어 있는 셈이다.

물론 대전시의 예산 총액이 모두 지방세로 조달되는 것은 아니므로 지방세 부담액이 이 정도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낸 국세가 지방에 교부된 것이거나 지방세외수입이나 지방채 조차도 바로 우리 주민들의 부담이라는 점에서 1인당 195만 여 원의 회비를 내고 그 만큼의 혜택을 보아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780만원 씩 내는 회원이 된 비밀은 물론 대전시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 국민이 다 비슷한 형편이다.

지방자치의 혜택이 돌아갔는지 따져보는것도 필요

지방자치는 이렇듯 우리에게 엄청난 혜택을 베풀고 그 대신 부담금을 내도록 하는 민주주의 제도의 하나다. 평생에 한 번도 아니고 매년 이런 금액의 회비를 내고 있다면 그 만큼 혜택을 보았는지 따져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도 쓸 수 있고 저렇게도 쓸 수 있지만 그 돈의 쓰임새에 따라 누군가에겐 큰 혜택이 주어진 반면에 누군가에겐 쥐꼬리만한 혜택 밖에 돌아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1,200억 원을 들여 월드컵 경기장을 새로 짓는 일과 같은 금액으로 마을 도서관 100개를 짓는 일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매년 월드컵 경기장을 유지 관리하는 비용이 30억 원인데 도서관 100개를 유지 관리하는 비용도 같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선택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월드컵 경기장 건설과 같은 대형 공사의 경우 지역 기업체의 설계 시공 능력의 부족으로 외지 기업이 수주해서 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럴 경우 주민 혈세가 지역 밖으로 흘러나가고 고용 및 성장 효과도 미미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마을 도서관 100개를 짓는다면 지역의 건설 업체들이 참가해 지을 수 있고 유지 관리를 위해 지역민이 새로 고용될 가능성도 크다. 1,200억 원을 쓰는 일은 같지만 그 결과는 이처럼 전혀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대다수 지방자치단체는 마을 도서관을 짓기보다는 월드컵 경기장을 짓는다는 데 있다.

이렇게 지방자치가 주민의 이익을 배반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은 지방자치가 여전히 풀뿌리보수주의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고위관리들과 토호, 수구적인 관변언론이 삼각동맹을 맺고 너무 많은 결정을 할 수 있는 반면에 주민들이 참견할 기회는 너무 적다. 잘못된 지방정치인을 임기 중에 해임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도 없고 주민소송, 주민투표의 발의도 너무 어렵게 되어 있다. 여기에 관변언론과 관변교수, 관변단체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잘못된 결정이라도 주민들을 위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민들에게 세뇌를 일삼는다. 당연히 이에 맞서는 풀뿌리민주주의 개혁세력은 기를 펴기 어렵다.

일당지배 구조를 고치기 위해 주민참여가 관건

지방의회의 압도적 다수당과 자치단체장이 같은 정당 소속인 일당지배 구조를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주민참여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지만 주민이 관심을 가질 만큼의 결정 권한을 자치단체는 갖고 있지도 않다. 중앙정부가 75의 권한을 갖는 다면 지방은 25의 권한 밖에 없다. 더욱이 주민 생활과 밀접한 교육, 경찰, 법원과 같은 분야는 자치가 제대로 도입도 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지방정치인 스스로 주민소환조례를 만들어도 상위법이 없어 무효가 된다. 지방자치가 일상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생활에 쫓기는 주민들이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 작고 참여할 수단도 부족해 주민참여를 통한 지방자치 개혁은 어려운 형편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관계를 기관 분립·대립형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자치단체장을 견제하여야 할 지방의회의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 조차도 단체장이 갖고 있어 지방의회를 통한 최소한의 견제도 어렵다.

선거도 학연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마을과 지역, 시민생활의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지역 중심’의 선거가 아니라 중앙정파의 갈등, 서울시장, 광역단체장 중심으로 지방선거가 진행되면서 지방정치에 대한 제대로 된 심판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주민들이 겪는 고용 불안, 보육과 교육 문제에 대한 걱정, 노인 문제를 지방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외면한 채 난개발 공약이 난무해도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형편에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네 번째 치르지만 지방의 재정자립도는 오히려 떨어지고 지역경제의 황폐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농촌 지역은 지역공동체의 유지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농촌의 초등학교가 속속 폐교되고 있고 출생신고가 끊긴 면사무소가 한 둘이 아니다. 반면에 수도권의 과밀은 정도가 지나쳐 교통 주거 등 생활환경은 악화되지만 생활비 부담은 더 커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모든 것을 수도권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지방에 더 많은 권한과 자원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 자체가 민주화되지 않는다면 더 많은 권한과 자원의 배정이 결국 비효율과 낭비만 불러와 지방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지방에 주되 그 모든 것을 평범한 시민이 참견하고 이끌어가는 지방자치의 혁신이 필요하다. 그래야 매년 780만 원의 회비를 내는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주민의 지방자치가 열릴 것이다.

김제선참여자치연대 공동집행위원장
2006/04/01 00:00 2006/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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