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절인 것 같은데… 특별한 거라도 있나?

오늘은 격주 휴무에다 답사하는 곳도 집과 인접한 곳이라 가족과 함께 편한 마음으로 보광사로 길을 잡았다. 가을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워 자주 찾던 길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참여연대 간사들과 언제나 명쾌한 설명으로 답사를 알차게 만들어주는 박상표 회원, 그리고 나이 지긋한 여섯 명의 어르신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고 연락하여 모였다는 어르신들의 참석 연유가 궁금했는데 장기수 묘역인 연화공원에 도착해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실천불교전국승가회에서 주검조차 오갈 데 없었던 비전향 장기수 금재성 씨를 비롯한 6명의 유해를 안치하였으나 최근 색깔시비로 인해 공원이 철거되고 장기수들의 유골 또한 다른 곳으로 이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르신들은 이곳을 찾은 젊은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단다. 오늘의 답사는 그들에게 과거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과 고향 땅을 밟지 못한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애처러운 마음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으리라.

원래 보광사는 이름 없는 고찰이었다가 조선 영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출신이 미천한 어머니 숙빈 최씨를 위해 원찰로 삼고 위패를 모셨던 곳이다. 그런데 이곳 보광사 원통전의 외벽 다른 곳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벽화가 있었다. 중생의 고통을 씻어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관음보살이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 농민, 학생, 전경 등을 두루 보살피는 그림과 이들이 어깨동무하고 탑돌이를 하는 모습이었다.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불교의 자비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생소하지만 의미 있는 벽화라 생각된다. 또한 지장전 벽에는 민중들이 반야용선이라는 용이 끄는 지혜의 배를 타고 부처의 세계로 나아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눈을 돌려 보광사 뒤편을 보니 이곳의 전체적인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석조 미륵보살입상이 덩그러니 서 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사령관을 지낸 이희성이 시주한 것이라 한다. 아마도 자신의 죄를 면제받고 시왕들에게 잘 보여 극락왕생하려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나약함이라 여겨져 애처롭기까지 했다.

이번 보광사 답사는 원통전 벽화 화기(畵記)에서 전하는 “중생들이 사는 세상은 여러 가지 형상이 있으나 반드시 부처님의 법 가운데로 돌아온다(衆生世界諸形相 必竟歸來佛法中)”라는 한 구절로 귀결된다고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다음 달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둔 아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쉽지만 다음 답사지인 윤관 장군 묘는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답사에 따라나섰던 아내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딸 한비 데리고 좋은 공부하러 자주 다녀요, 네?”

김정태 참여연대 회원
2006/04/01 00:00 2006/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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