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경지
2006/2006년 04월 :
2006/04/01 00:00
정지아 소설가 골이 좁으면 사는 사람 속도 좁다더니 삼면이 높다란 산으로 에워싸인 좁은 골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속이 좁아 짜증이 많다. 뒤에 사람이 오건 말건 문 쾅 닫고 나가는 사람에게도 짜증이 치솟고, 대중음식점을 전세 낸 양 목청껏 소리소리 지르는 사람을 봐도 짜증스럽다 못해 입맛이 뚝 떨어진다. 그런 꼴 보기 싫어 현관문 걸어 잠그고 집에 틀어박혀도 세상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윗집에서는 무슨 공사를 하는지 한밤중까지 드릴 소리 요란하고, 계단 쪽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쿵쿵 발소리가 울려댄다. 그런 밤마다 나는 오래도록 뵙지 못한 고향의 한 어른을 떠올리며 속에서 치솟는 열불을 식힌다.
살아계시면 이제 아흔이 가까울 그 어른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다. 그러나 현명하기로는 근동에서 따라올 자가 없었다. 언젠가 우리 집에서 그 댁의 낫을 빌린 적이 있었다. 마실 나왔다며 우리 집 마루턱에 걸터 앉아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던 어르신은 대문을 나서다 말고는 문득 생각난듯 무심히 물었다.
“나가 혹 이 댁에 낫 한나 안 놓고 갔등가? 암만 찾아봐도 집에 없는디 어따 모리겄네.”
모르겠다는 어머니 한 마디에 어르신은 군말 없이 총총 사립문을 빠져나갔다. 며칠 후에야 집 어디선가 그 댁서 빌려온 낫을 발견한 어머니가 민망해 어쩔 줄 모르며 허겁지겁 달려가니 어르신은 아, 고놈이 그 댁에 있었구만, 하고는 무연히 웃었다.
어르신은 어린 우리가 그 댁에 가 난장판을 치고 놀아도 생전 나무라는 법이 없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이브던가. 나보다 두어 살 많던 그 댁 막내딸과 밤새워 놀다가 잠깐 쓰러져 자는 참에 인기척에 놀라 깨어났다. 어르신이 방바닥 여기저기 쓰러진 우리들을 피해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창호지 문틈으로 여명이 밝고 있었으니 깨운 연후에 청소를 해도 좋으련만. 어린 마음에도 고맙고 미안하여 벌떡 일어났더니 어르신은 굳이 나를 다시 눕히고는 다독거리며 말했다.
“월매나 곤하겄냐이. 아직 동 틀라먼 멀었응께 푹 자그라.”
밤새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느라 곤하기야 곤했다. 어머니 같은 다정한 손길에 에라 모르겠
다 다시 잠 든 걸 보면 그때의 나, 세상 물정 모르고 어리긴 어렸나보다. 어르신은 놉들과 일을 할 때면 놉들에게는 밭을 한 고랑씩 맡기고 당신은 두 고랑을 차지했다. 어린 눈에도 이상하게 보여 왜 그러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암만 해도 내 집 일이다봉께 나도 모리게 넘들보다 앞서 나가게 된단 말이다. 글먼 일허는 넘들이 월매나 힘들겄냐? 따라 허자니 힘들고 안 따르자니 눈치 뵈이고. 나가 두 고랑을 차지허먼 얼추 비슷허게 나강께 넘들도 맘이 편하지야.”
농번기에 일손 구하기 어려워 다들 발을 동동 구를 때라도 그 어른 댁만큼은 사람 귀한 줄 몰랐으니, 물론 어르신의 넉넉한 마음씀 덕이었다. 어르신의 남편은 평생 돈 한 번 벌어온 적 없는 술주정뱅이였다. 그런 남편에게 잔소리 한 번 하는 것 보지 못했다. 어떻게든 집안에 들어앉히고 일을 시키라는 어머니에게 어르신이 하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자개라도 글고 싶어 글겄능가. 타고 나기를 그랬든지 워쨌든지, 워짤 수가 없응께 글겄제. 수가 없응께 글겄제.” 아. 어르신은 문턱도 넘지 못한 학교를 대학원까지 마친 나. 나
는 언제나 그 경지에 도달할 것인가.
살아계시면 이제 아흔이 가까울 그 어른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다. 그러나 현명하기로는 근동에서 따라올 자가 없었다. 언젠가 우리 집에서 그 댁의 낫을 빌린 적이 있었다. 마실 나왔다며 우리 집 마루턱에 걸터 앉아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던 어르신은 대문을 나서다 말고는 문득 생각난듯 무심히 물었다.
“나가 혹 이 댁에 낫 한나 안 놓고 갔등가? 암만 찾아봐도 집에 없는디 어따 모리겄네.”
모르겠다는 어머니 한 마디에 어르신은 군말 없이 총총 사립문을 빠져나갔다. 며칠 후에야 집 어디선가 그 댁서 빌려온 낫을 발견한 어머니가 민망해 어쩔 줄 모르며 허겁지겁 달려가니 어르신은 아, 고놈이 그 댁에 있었구만, 하고는 무연히 웃었다.
어르신은 어린 우리가 그 댁에 가 난장판을 치고 놀아도 생전 나무라는 법이 없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이브던가. 나보다 두어 살 많던 그 댁 막내딸과 밤새워 놀다가 잠깐 쓰러져 자는 참에 인기척에 놀라 깨어났다. 어르신이 방바닥 여기저기 쓰러진 우리들을 피해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창호지 문틈으로 여명이 밝고 있었으니 깨운 연후에 청소를 해도 좋으련만. 어린 마음에도 고맙고 미안하여 벌떡 일어났더니 어르신은 굳이 나를 다시 눕히고는 다독거리며 말했다.
“월매나 곤하겄냐이. 아직 동 틀라먼 멀었응께 푹 자그라.”
밤새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느라 곤하기야 곤했다. 어머니 같은 다정한 손길에 에라 모르겠
다 다시 잠 든 걸 보면 그때의 나, 세상 물정 모르고 어리긴 어렸나보다. 어르신은 놉들과 일을 할 때면 놉들에게는 밭을 한 고랑씩 맡기고 당신은 두 고랑을 차지했다. 어린 눈에도 이상하게 보여 왜 그러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암만 해도 내 집 일이다봉께 나도 모리게 넘들보다 앞서 나가게 된단 말이다. 글먼 일허는 넘들이 월매나 힘들겄냐? 따라 허자니 힘들고 안 따르자니 눈치 뵈이고. 나가 두 고랑을 차지허먼 얼추 비슷허게 나강께 넘들도 맘이 편하지야.”
농번기에 일손 구하기 어려워 다들 발을 동동 구를 때라도 그 어른 댁만큼은 사람 귀한 줄 몰랐으니, 물론 어르신의 넉넉한 마음씀 덕이었다. 어르신의 남편은 평생 돈 한 번 벌어온 적 없는 술주정뱅이였다. 그런 남편에게 잔소리 한 번 하는 것 보지 못했다. 어떻게든 집안에 들어앉히고 일을 시키라는 어머니에게 어르신이 하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자개라도 글고 싶어 글겄능가. 타고 나기를 그랬든지 워쨌든지, 워짤 수가 없응께 글겄제. 수가 없응께 글겄제.” 아. 어르신은 문턱도 넘지 못한 학교를 대학원까지 마친 나. 나
는 언제나 그 경지에 도달할 것인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