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재벌과 같은 가족 기업(family firm)은 다음의 3가지 이유 때문에 세대를 넘어 유지되기 힘들다. 먼저 가족기업은 상장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공개를 하게 되고, 그러면 창업자의 지분 희석은 불가피하다. 두번째 대부분의 나라에서 상속(증여)세는 소득세에 비해 세율이 높다. 따라서 창업자의 지분이 상속과정에서 세금으로 인해 지분분산이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창업자의 경우 이미 경영능력과 리더십의 검증을 받았지만 2, 3세의 경우 그 과정이 생략된 채 경영을 하기 때문에 경영부진에 따른 변동이 가능하다.

그동안 한국의 재벌들은 상장으로 희석된 지분을 계열사의 순환출자로 보충하고 상속세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지분을 상속하고 (대표적인 것이 얼마전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발행건) 능력있는 전문경영가를 발탁하되 그룹의 최종 의사결정은 여전히 총수 개인에게 유보하는 방식으로 재벌 체제를 유지해왔다.

신종상속증여의 방법으로 고안된 회사기회의 편취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세계화에 따른 자본 시장의 개방, 시민단체와 언론의 감시에 따른 법집행의 정상화로 인해 한계에 봉착하여 있다. 이를 인식한 일부 재벌들이 신종 상속증여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 이른바 회사기회의 편취(usurpation of corporate opportunity)의 방법이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이는 재벌 그룹내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신세계를 들기로 하겠다.

신세계는 지난 1998년 당시 자신이 100%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광주신세계의 25억원(주당 5천원, 5천주)의 유상증자에 불참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 관계자는 회사에 추가 출자 여력이 없었고, 광주신세계가 자본잠식상태로 출자의 경제적 유인이 없었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신세계는 그 시기에 삼성전자의 주식을 41억원어치 매입한 사실이 있고, 광주신세계는 꾸준히 당기순이익을 내던 전도유망한 회사였다. (자세한 내용은 표 1 참고)

이후 지분은 당시 신세계의 지배주주인 정명희 회장의 아들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에게 배정되었고, 결국 그는 이후 지분 83.33%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후 광주신세계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2002년 주당 3만 3,000원에 거래소시장에 상장하였다. 현재 정용진 부사장이 보유한 광주신세계의 주식가치는 인수비용을 제외하고도 583억 3,300만원에 이른다. 한마디로 정용진씨는 신세계가 포기한 유망한 사업기회를 그것도 주당 5천원이라는 저가에 인수하여 손쉽게 재산을 증식한 것이다.

문제는 신세계 이사회가 광주신세계의 지분 취득이라는 유망한 사업기회를 포기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신세계의 이사이자, 지배주주의 아들인 정용진씨를 마치 의식한 것과 같은 비정상적인 정황들이 곳곳에서 포착된다는 사실이다.

정용진 부사장은 당시 신세계의 이사였다. 당시 신세계 이사회는 유상증자에 참여가 회사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광주신세계의 지분을 포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정작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실권주를 인수하는 모순된 행위를 보였다.

더군다나 신세계가 광주신세계에 지분인수를 포기하기로 통보한지 하루만에 광주신세계는 정용진씨에게 실권주 전부를 배정하기로 결의하였고 그후 이틀만에 정용진씨는 실권주 인수대금 25억원을 전부 납입하였다는 점에서는 사전공모의 의혹마저 엿보인다. 만약 신세계가 광주신세계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면 정용진 부사장이 취득한 주식평가차익 및 배당이익 등은 모두 신세계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신종 변칙·불법 증여 행위의 규제가 필요

참여연대가 규제하고자 하는 것은 이처럼 지배주주 일가가 그룹내 주력계열사와 거래하는 비상장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고, 그룹 주력 계열사와의 ‘몰아주기’ 거래를 통해 기업가치를 올린 후 이를 팔아 주력계열사의 지분을 사는 신종 변칙·불법 증여 행위이다. 기존의 공정거래법상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같은 규제장치로는 이러한 행위의 규율에 한계가 있다. 이사 또는 지배주주가 이해관계 당사자로 참여하는 거래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회사법상의 규율수단의 정비가 요청된다.

이는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바, 먼저 이사의 자기거래 규제(현행 상법 389조)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이사 또는 지배주주와 그 특수관계인, 그리고 이들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회사로 자기거래의 규제범위를 확장하고, 공시의무 강화와 독립적 의사결정자의 명시적 승인 요건 이외에 거래의 완전한 공정성(entire fairness)에 대한 심사를 의무화하고, 자기거래를 위반한 이사에 대한 사법적 규율이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앞서 언급한 회사기회의 편취 규제와 관련한 과제이다. 먼저 현재 이러한 조항은 상법에 그 근거규정이 없으므로 이를 신설하되, 그 대상은 이사 또는 지배주주와 그 특수관계인 및 이들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회사로 규정하고, 공시의무 및 독립적 의사결정자에 의한 회사의 기회포기 의결 절차를 의무화하고 원고가 회사기회의 편취임을 주장하면, 나머지 부분에 대한 입증책임이 원칙적으로 당해 이사 또는 지배주주에게 있음을 명시할 필요 등이 있다.
최한수 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
2006/05/01 00:00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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