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땅 끝까지, 시간은 값지게(투명사회팀 이경미 간사)
2006/2006년 05월 :
2006/05/01 00:00
들어왔다 나가고 들어왔다 나가고 다시 들어온, 참여연대에 3번을 들락거린 상근자가 있다.
바로 이경미 간사이다. 그는 1999년에 입사하여 두해를 일하고 대학 때부터 사귀던 마음 착한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서른 전에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다행히 곧 아기가 생겨서 2002년에 일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였다. 다시 삼년 만에 둘째아기가 태어나고 2005년에 다시 휴직하였다가 일년 후에 두 번째 복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아침마다 두 아이를 유치원과 놀이방에 데려다주고 온다. 두돌도 안 된 아기를 시설에 맡겨놓고 오는 엄마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늘 여유있게 웃는 얼굴의 비결이 무어냐고 물었다.
“워낙 아무 생각없이 태평스러운 성격이라서요. 무엇보다 남편이 육아며 집안일을 많이 분담해주고 신앙 역시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아침마다 아이들을 꼭 껴안고 간절히 기도해요. 오늘도 무사히 충실하고 건강하게 보내게 해 달라고 빌지요. 그리고는 아이들 걱정은 잊고 열심히 일해요. 집에 가면 사무실 일은 다잊고 집안일에만 몰두하구요. 쓸데없는 걱정대신 미련이 없도록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잘 돌보아 주실 거라는 확고한 신앙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그는 이화대학 시절에 여성운동과 환경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기독교와 환경운동이 합쳐진 YWCA 동아리 활동에는 얼마나 적극적이었던지 전국회장까지 맡아서 활동했다.
두 번이나 쉬었다가 일하는데 따른 어려움은 없었을까. 처음에 복직했을 때는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시민사회의 이슈에 대하여 토론회를 열고 ‘시민과 세계’라는 반년간지를 만드는 일을 하였으나 이번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에 일하던 정보공개 부서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되어 업무적응에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단다.
정보공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운동
그가 일하는 정보공개사업단의 일이란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운동으로, 8년간의 활동을 통해 제도적 절차를 확립하는 것 외에 정보공개에 대한 공무원들의 인식도 더디지만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초창기에 ‘정보공개’라는 제도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던 공무원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건 매년 중앙행정기관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정보공개성실도 측정 및 랭킹 발표가 주효했을 거라고 믿는다.
정보공개제도를 활용하여 예산 낭비를 감시하는 방법론을 확산 시킨 점과 ‘사인(私人)의 이름만을 제외하고 업무추진비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할 것’을 명시한 대법원 승소를 이끌어내어 기관장이 용돈처럼 쓰던 판공비에도 시민의 감시가 미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힘들고 품도 많이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라고 말했다.
참여연대의 어떤 점이 좋아서 일하냐고 질문하자 최근의 경우처럼 언론에서 침소봉대하여도 참여연대의 진정성을 믿어주는 회원들과 시민들이 있어 큰 힘이 되었으며 가끔 사무실에 들러서 상근자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회원들을 보면 정말 너무 고마워서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것이 뿌듯하다고 한다.
시간만큼은 값지게 쓰려고 참여연대에서 활동
오직 참여연대에서만 일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학 졸업 후 잠시 근무했던 직장을 그만 두었는데 그 이유는 시간과 돈을 바꾸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단다. 그래서 돈을 못 벌어도 ‘시간만큼은 값지게 쓰자’는 생각에 50대 1의 경쟁을 뚫고 참여연대에 들어왔단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사심없이 일하고 서로 격려하며 마음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이곳이 참 좋아요. 바램이 있다면 참여연대에서 의욕적으로 일하고픈 신입들이 많이 들어와서 사무실이 더 활기차고 와글법석해졌으면 정말 좋겠어요.”
인터뷰를 끝내면서 학생 때부터 연애하여 8년이나 정이 든 남편의 흉을 보랬더니 교회 같이 다닌 지가 4년째인데도 세례를 안 받는 것이란다. 그래도 착하고 한결 같으며 가부장적이지 않고 학생 때의 순수함을 지니고 있어서 살아갈수록 좋아진다며, 가장 좋았던 추억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땅끝까지 가는 해남 땅으로의 배낭여행이라던 얼굴에는 살포시 미소가 번져 나갔다.
바로 이경미 간사이다. 그는 1999년에 입사하여 두해를 일하고 대학 때부터 사귀던 마음 착한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서른 전에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다행히 곧 아기가 생겨서 2002년에 일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였다. 다시 삼년 만에 둘째아기가 태어나고 2005년에 다시 휴직하였다가 일년 후에 두 번째 복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아침마다 두 아이를 유치원과 놀이방에 데려다주고 온다. 두돌도 안 된 아기를 시설에 맡겨놓고 오는 엄마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늘 여유있게 웃는 얼굴의 비결이 무어냐고 물었다.
“워낙 아무 생각없이 태평스러운 성격이라서요. 무엇보다 남편이 육아며 집안일을 많이 분담해주고 신앙 역시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아침마다 아이들을 꼭 껴안고 간절히 기도해요. 오늘도 무사히 충실하고 건강하게 보내게 해 달라고 빌지요. 그리고는 아이들 걱정은 잊고 열심히 일해요. 집에 가면 사무실 일은 다잊고 집안일에만 몰두하구요. 쓸데없는 걱정대신 미련이 없도록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잘 돌보아 주실 거라는 확고한 신앙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그는 이화대학 시절에 여성운동과 환경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기독교와 환경운동이 합쳐진 YWCA 동아리 활동에는 얼마나 적극적이었던지 전국회장까지 맡아서 활동했다.
두 번이나 쉬었다가 일하는데 따른 어려움은 없었을까. 처음에 복직했을 때는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시민사회의 이슈에 대하여 토론회를 열고 ‘시민과 세계’라는 반년간지를 만드는 일을 하였으나 이번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에 일하던 정보공개 부서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되어 업무적응에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단다.
정보공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운동
그가 일하는 정보공개사업단의 일이란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운동으로, 8년간의 활동을 통해 제도적 절차를 확립하는 것 외에 정보공개에 대한 공무원들의 인식도 더디지만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초창기에 ‘정보공개’라는 제도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던 공무원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건 매년 중앙행정기관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정보공개성실도 측정 및 랭킹 발표가 주효했을 거라고 믿는다.
정보공개제도를 활용하여 예산 낭비를 감시하는 방법론을 확산 시킨 점과 ‘사인(私人)의 이름만을 제외하고 업무추진비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할 것’을 명시한 대법원 승소를 이끌어내어 기관장이 용돈처럼 쓰던 판공비에도 시민의 감시가 미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힘들고 품도 많이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라고 말했다.
참여연대의 어떤 점이 좋아서 일하냐고 질문하자 최근의 경우처럼 언론에서 침소봉대하여도 참여연대의 진정성을 믿어주는 회원들과 시민들이 있어 큰 힘이 되었으며 가끔 사무실에 들러서 상근자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회원들을 보면 정말 너무 고마워서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것이 뿌듯하다고 한다.
시간만큼은 값지게 쓰려고 참여연대에서 활동
오직 참여연대에서만 일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학 졸업 후 잠시 근무했던 직장을 그만 두었는데 그 이유는 시간과 돈을 바꾸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단다. 그래서 돈을 못 벌어도 ‘시간만큼은 값지게 쓰자’는 생각에 50대 1의 경쟁을 뚫고 참여연대에 들어왔단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사심없이 일하고 서로 격려하며 마음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이곳이 참 좋아요. 바램이 있다면 참여연대에서 의욕적으로 일하고픈 신입들이 많이 들어와서 사무실이 더 활기차고 와글법석해졌으면 정말 좋겠어요.”
인터뷰를 끝내면서 학생 때부터 연애하여 8년이나 정이 든 남편의 흉을 보랬더니 교회 같이 다닌 지가 4년째인데도 세례를 안 받는 것이란다. 그래도 착하고 한결 같으며 가부장적이지 않고 학생 때의 순수함을 지니고 있어서 살아갈수록 좋아진다며, 가장 좋았던 추억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땅끝까지 가는 해남 땅으로의 배낭여행이라던 얼굴에는 살포시 미소가 번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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