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민주주의 시험하는 남부 유혈사태

2004년 1월 4일 새벽, 말레이시아와의 접경지인 타이 남부 무슬림 지역 나라티왓에서 군부대가 습격당하면서 4명의 불교도 군인이 피살되고 400여 자루의 총이 탈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거의 같은 시간대, 같은 지역 내의 20개 학교에 동시적인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탁신 총리는 곧바로 타이 남부 빠따니, 나라티왓, 얄라 3개 주 8개 군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후 분리주의운동 조직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무슬림들에 대한 체포 영장이 남발되기 시작했고, 2004년 3월 남부지역 무슬림들의 인권 지킴이 역할을 하던 무슬림 솜차이 변호사가 실종되었다.

같은 해 4월에는 빠따니, 얄라, 송클라 지역에서 100여 명의 청년들이 경찰과 군 초서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부군은 이 중 일부가 이슬람 유적지인 크르세 사원으로 피신하자 이들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여 모두 살해했다. 이어 10월에는 나라티왓주의 탁바이에서 분리주의자들에게 무기를 넘겨주었다는 죄목으로 구금된 6명의 마을 자경단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진압하고 시위 참여자들을 군용 트럭에 싣고 가는 과정에서 78명이 질식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렇듯 타이 남부지역의 폭력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자 타이가 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타이족만의 나라가 아니라 중국계, 말레이족, 라오족, 몬족, 여러 고산족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종족 사회임을 재인식한 시민사회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다종족 민주주의’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좌절과 차별을 겪어온 타이 무슬림

타이 무슬림은 타이 전역에 분포되어 있으나 이 중 절반 가량이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타이 남부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의 타이 남부지역은 말레이 술탄이 통치하던 빠따니 이슬람 왕국의 영토였으나 1902년 싸얌(현재의타이)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었고, 1909년 영국 제국주의와 타이왕조에 의해 분할되었다.

한편, 마지막 술탄이었던 압둘 까디르 까말 루딘, 그리고 하지 쑤롱 같은 무슬림 사회의 지도자들이 타이 중앙정부에 말레이 정체성과 이슬람법의 집행이 보장될 수 있도록 무슬림에 의한 통치를 허용해달라고 청원하였으나 이들은 투옥되거나 피살되었다. 특히 타이 남부 무슬림들은 국호를 시암에서 타이로 바꾼 피분정권 시기에 타이족 중심의 민족통합 정책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국제환경이 조성되고 있던 시점에 얄라, 나라티왓, 빠따니 등 타이 남부 3개 주의 주민들은 이 지역을 새로운 말라야 연방에 편입시켜줄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으나 실패하였다. 일부 무슬림 지도자들은 타이 정계에 진출하여 의회를 통해 자치권 획득을 실현하고자 했으나 역시 좌절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60년대부터 분리 독립을 목표로 하는 무장투쟁 조직들이 등장했고, 68년에 조직된 빠따니통일해방조직(PULO)이 가장 강력한 분리주의 운동조직으로 성장하였다. PULO는 종교, 종족, 조국, 인도주의를 조직 이념으로 내세우고 자주적인 이슬람국가수립을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 중앙정부도 경찰특공대와 민간자경단 등을 동원하여 이들에 대한 진압작전에 나섰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중앙정부가 분리주의자들에 대해 사면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의 포용정책을 펴자 무장투쟁 조직들이 약화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민주화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이 지역은 남부 출신인 추언 전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의 표밭이 되었다. 탁신이 이끄는 타이락타이당이 전국적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2001년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이 지역에서 절대적 우위를 유지하였다.

현실 직시와 상호 인정이 갈등 치료약

탁신은 집권과 동시에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인 남부지역에 대한 중앙통제를 강화하였다. 특히 과거 쁘렘 정권 때 무슬림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무력 강경책을 온건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설치했던 남부국경지역행정센터와 민·정·군 공동 사업단을 폐지하였다.

또한, 2003년 2월부터 4월까지 전국적으로 전개된 마약과의 전쟁이 마약 밀거래지역으로 찍힌 이 지역의 주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빠뜨렸다. 그 해 8월 중앙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대 이라크전쟁에 병력파견을 결정하자 말레이 무슬림들의 불만은 한층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4년 1월의 군부대 습격사건과 방화사건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군과 경찰은 범인 색출을 이유로 현지 무슬림들에 대해 임의연행, 협박, 고문을 일삼기 시작했고, 불신의 골도 깊어졌다. 무슬림 지도자들의 실종, 피살 사고가 빈발하면서 관공서 폭파, 경찰관, 승려, 교육 공무원에 대한 테러도 늘어났다.

타이 남부사태가 종족-종교간 분쟁의 양상을 띠는 가운데 시민사회의 요구에 따라 사태 해결을 위한 독립기구로서 국가화해위원회가 설치되었다. 탁신수상은 타이사회에서 신망 있는 전 수상 아난 빤야라춘을 국가화해위 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위원회에는 정부, 군경,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사들과 남부 무슬림지역 대표들이 참여했다. 국가화해위원회는 남부지역 이해당사자들과의 의사소통망 강화, 200여 명이 사망한 크르세와 탁바이 유혈참사 진상 조사, 신뢰 회복과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을 목표로 삼았다. 특히 테러 관련 혐의로 체포된 무슬림들에 대한 법적 보호를 요구하였다. 또한 언론에는 남부지역의 역사, 문화적 특수성을 깊이 이해하고 기사를 작성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타이 시민사회가 남부 무슬림 사회를 지배하는 이슬람 원리와 말레이 관습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대응 속에서 탁신정부는 사태를 무마할 목적으로 무슬림 지역에 대한 다양한 개발을 약속하고 나섰지만 진실성이 결여된 국면전환용으로 받아들여졌다. 남부 지역의 천연자원을 외지 자본들이 독점하고 있고 현지 무슬림들은 저임금 상태로 고용되어 있는 현실을 정부가 직시하지 않고서는 무슬림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사실상 이 지역 대다수 말레이 무슬림들이 원하는 것은 분리 독립보다도 이슬람 전통에 대한 이해, 생명과 재산의 안전, 지방행정에 대한 무슬림들의 참여, 교육 기회의 확대 등이다.

소수민족 이해,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

타이 근대국가의 수립과정에서 중앙정부는 타이인다움을 민족, 종교, 국왕의 세 가지 원리에 대한 충성이라고 정의했다. 민족의 경우 타이어 습득이 그 전제조건이고, 종교는 불교를 의미한다. 국왕은 종교의 수호자이자 민족통합의 구심이다. 이렇듯 타이인의 정체성이 위로부터 타이족과 불교 중심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말레이 무슬림들의 소외감은 상당했다. 일부 타이인들에게 무슬림들은 손님으로, 좀더 심한 경우에는 바보로 불렸다. 최근 2년 사이에 벌어졌던, 그리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타이 남부지역의 폭력사태는 차별의 역사 속에서 누적된 무슬림 사회의 좌절, 분노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남부사태를 계기로 타이 시민사회는 동등한 사회 구성원인 소수민족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조건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게 되었고 타이의 정체성을 아래로부터 새롭게 조직하는 일에 나서게 된 것이다.
박은홍
2006/05/01 00:00 2006/05/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16807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