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시대정신의 표현이라고 한다. 피라미드, 파르테논, 콜로세움, 노트르담, 자금성, 에펠탑, 현대의 마천루 등 인류 역사의 위대한 건축물들은 그 시대의 물리적인 증거물로 남아있어서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단순한 건축적 해석뿐만 아니라 당대의 영화로운 역사와 사건들을 연상하게 된다. 이러한 건축물들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의 생산과 노동, 문화와 예술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대 건축물들은 당대 지배세력의 의지와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권력자들은 강력한 힘을 과시하고 사회통합의 유용한 장치로서 거대한 건축물의 축조를 이용하였다. 새로운 재료인 강철로 지어진 높은 탑의 에펠탑의 이면에는 산업혁명 이후 권력과 부를 장악한 자본가 계급의 표상이 자리하고 있고, 우후죽순 솟은 맨하탄의 마천루는 자본과 세계질서가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과시하였다.

권력자와 건축가

당대의 위대한 건축가, 엔지니어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그 시대의 권력자의 이데올로기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인류 역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실명의 건축가 임호텝은 피라미드의 건축가이기도 했지만 제사장, 의사로서 이집트문화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인류 역사에 가장 드라마틱하게 권력에 봉사한 건축가로는 나치의 건축가 알버트 슈페어를 들 수 있다. 히틀러의 주택을 설계한 그는 히틀러의 연설장을 고전주의의 기념비적 요소로 꾸미고, 2차 대전에서 승리한 후 베를린을 통일 유럽의 수도로 계획하기도 하였다. 나치가 패망할 때 군수장관으로 있던 그는 주요 전범으로서 20년형을 살았다. 히틀러는 슈페어가 가진 건축적 재능을 독일인을 설득하고 통합하는 수단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했고, 슈페어는 히틀러를 통해 그의 건축적 이상과 성공의 야망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이상과 야망은 나치와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이러한 건축가와 권력가의 관계는 그리스 신화 속의 건축가 다이달로스를 통해 많이 비유되기도 한다. 다이달로스는 미노스왕을 위해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을 만든 아테네의 장인이자 건축가였지만, 미노스왕은 그의 작업에 만족한 나머지 크레타 섬에 그를 가두어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크레타 섬에서 탈출하였다. 그러나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듣지 않은 이카루스는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열에 밀랍이 녹아서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이 우화는 건축가와 권력가의 관계가 가진 협력과 갈등의 패러독스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건축가는 그 시대 권력에게 예속적인 존재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건축을 위한 러시아 구성주의 건축가들의 활동은 이후 유럽의 근대건축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지만, 스탈린의 등장 이후 정작 구소련에서의 건축은 고전주의를 차용하여 좌우대칭의 기념비성이 강조되고 억압적인 양식주의로 쇠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권력과 건축이 항상 갈등의 관계라고만 할 수 없으며, 그 관계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르네상스의 주역들은 당대에 유럽을 좌지우지하던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고, 가우디와 같은 천재도 귀엘 백작의 강력한 후원이 있었기에 활동할 수 있었다.

우리시대의 건축가

스페인의 빌바오는 80년대 주력산업이던 철강과 조선이 쇠퇴의 길로 들어서면서 쇠락해가는 도시였다. 이 도시를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킨 것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매년 130만 명 이상이 이 미술관을 찾고 있으며, 이 미술관으로 대표되는 문화, 관광, 레저산업 덕택에 빌바오는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다시 활기찬 도시로 바뀌었다. 일본의 센다이라는 지방도시는 새로 들어선 미디어테크에 건축가 도요 이토의 독창적인 디자인과 구조방식이 실현 가능하도록 건축법 규정 제한을 심의를 통해 완화시켜주어, 또 다른 세계적인 건축물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건축가, 건축물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는 우리 건축가들의 책임만은 아닌 것 같다. 새로 들어설 롯데월드에 에펠탑을 모방한 투시도가 공공연히 신문에 실리는 것을 보면서, 백남준 기념관, 서울시 신청사,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등 우리 도시 경관에 중요하게 자리매김할 건축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행정편의적이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는 과거 국회의사당을 짓던 인식과 태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결국 훌륭한 건축가, 훌륭한 건축물은 건축주가 만든다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박훈영
2006/05/01 00:00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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