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란 페미니즘의 선언은 이제 진부하고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의미의 유효함이 사라지거나 젠더를 둘러싼 사회적 모순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직장 여성의 60%가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답한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는 모순의 심각성을 사실적으로 반영한다. 직장 여성의 현실은 사라진 공휴일(식목일)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절망적 상태에 다다른 심란함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게 한 성찰적 발견이었다.

그러고보니 올해 5월은 보너스로 주어진 휴일은 단 하루에 불과하지만 그야말로 ‘기념’해야 하는 날들로 점철된 달이다. 뭐랄까, 삶을 구성하는 형식과 질서가 모조리 해체되고 오히려 그 전복이 창조적 전환이라 칭송되는 난파된 시대에도 여전히 기념해야할 것들이 고답스럽게 달력에 내려앉아있다고 할까. 노동절,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로 이어지는 기념 행진을 낙원상가에서 종로3가 뒷골목으로 이어지는 포장마차촌 만큼이나 자극적이다. 기념을 통해 기억이 불러지고, 불려진 기억은 어제의 일을 생생한 오늘로 재현한다.

메이데이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과 처음 마주쳤던 스무해 초여름의 어느 날의 전율이다. 청계천 스포츠 상가 골목에서 처음으로 까만 가죽 글러브를 꼈던 어린이의 환희를, 색종이로 접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순간의 뿌듯함을, 전근 간 선생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친구들을 기다리던 어색함을, 술집 뒤편 주차장에서 잠드는 것으로 어른됨을 증명했던 어느 새벽의 비릿함은 5월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게 한다.

아, 이렇게 따뜻한데 마음은 갑자기 공허할까. 또 주머니는 왜 이렇게 허전할까. 과거를 불러내는 비용이 너무 만만치 않아서일까. 기억을 향유하는 상투적 형식이 답답해서일까. 아니다. 기념도 기억도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이고 투쟁의 영역이다. 메이데이는 계급의 문제가 여전히 가장 전위적인 전선임을 확인하는 날이어야 한다. 어린이, 어버이, 스승을 호명함으로써 편리하게 사회적 감시·통제·훈육을 수행하는 국가권력, 문화보수주의자, 청소년 보호론자 등의 과잉된 욕망과 견고한 질서에 균열을 내는 기획을 해야 한다. 나부터 시작해야겠다. 이름하여 기념의 재구성이다. 작은 실천이 일상을 바꾸고 끝내 세상을 바꾼다. 2006년 5월, 정치적 기념을 실천해야겠다.
완 군
2006/05/01 00:00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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