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개 지역에서 1천 명 이상 사망자 발생
전쟁, 그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전쟁의 파편이 떨어진 곳엔 꿈과 희망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고통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현재 진행형인 전쟁과 폭력, 그리고 고통과 흔적을 기억하고 성찰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역사적인 상처조차 제대로 치유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에서 사람들의 마음속 상처와 그 흔적들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평화를 찾아 유랑하는 이들처럼, 세 번을 걷고 한 번을 엎드리는 의식 속에서 ‘인간의 욕심과 오만이 빚어낸 모든 것들과 화해’ 한다면, 우리 미래의 삶은 진심으로 평화로울 것이다.

1945년 5월 8일은 나치 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던 날이다. 해마다 5월 8일이 되면 유럽 땅엔 각종 기념행사가 열리고 다시는 전쟁이 터지지 말아야 한다는 말들이 오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로도 지구촌엔 평화가 깃들지 못했다. 그 하나하나의 전쟁 뒤안길에는 이름 모를 이들의 피눈물, 그리고 전쟁으로 돈을 버는 군수업자와 석유업자의 미소가 뒤엉켜있다.

21세기 들어와서도 내전 또는 국제전이란 이름의 전쟁은 이어지고 있다. 9·11 사건 뒤 일어난 미국의 아프간침공과 뒤이은 이라크침공이 대표적인 보기다. 현재 유엔평화유지군이 파병돼 있는 지구촌 분쟁지역은 모두 18개. 푸른 헬멧을 쓰고 이들 분쟁지역에서 땀을 흘리는 유엔 평화유지군은 모두 64,200명. 그와는 별도로 26,000명의 민간인들이 이들 분쟁지역의 안정과 재건 업무를 돕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구촌의 전쟁과 평화, 군사 관련 연구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싱크탱크다. 이 연구소에선 해마다 『군비·군축·국제안보 연감』을 발행해왔다. 2005년도 SIPRI 연감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사망자 1천 명 이상을 낸 전쟁은 19개다. 이를 지역별로 나눈다면,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각기 6개로 가장 많은 전쟁이 터졌고, 그 다음이 중동 3개, 중남미 3개, 유럽 1개(체첸전쟁)다. 이 가운데 비교적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3개 전쟁을 빼고는 모두 10년 이상을 끈 전쟁들이다. 3개의 전쟁이란 9·11 뒤 미국의 침공으로 벌어진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 그리고 수단 동부지역의 다르푸르 내전을 가리킨다.

아시아권의 만성적인 분쟁지역을 셋 꼽으라면 카슈미르, 스리랑카, 그리고 우리가 사는 한반도다. 여기에 마오쩌뚱주의의 깃발을 내건 반군이 게릴라 활동을 펴는 네팔이 새로운 분쟁지역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구촌의 해묵은 분쟁지역이 카슈미르다. 1947년부터 인도-파키스탄 두 나라가 영유권을 다투다 사실상의 국경선으로 그어진 통제선(LOC) 지역에 가보니, 우리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에 들어선 듯 묵직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한반도는 한 핏줄, 한 언어의 단일민족이 사는 곳이다. 종교도 다르고 말과 문화가 다른 다민족사회가 겪는 갈등 따윈 없으니, 평화통일의 길은 멀지 않다는 생각이다.

군수산업과 석유회사들을 위한 전쟁

이스라엘군의 냉혹한 군사적 강압통치에 맞서 지난 2000년 9월 이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제2차 인티파다(intifada, 봉기, 제1차는 1987-1993년)라 일컫는 유혈투쟁에서 우리 인류사의 진보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분쟁의 성격은 민족해방전쟁이다. 민족해방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와 알제리를 비롯한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던 전쟁들이 아닌가? 그런데 21세기에 웬 민족해방전쟁? 그러니까 역사의 발전이 아직 제자리 걸음마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동유혈 비극의 상당 부분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네차례에 걸친 중동 현지취재과정에서 만난 이슬람권의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을 뒤에서 일방적으로 밀고 있는 21세기 유일 패권국가 미국을 손가락질 했다. 지금 미국은 합법적인 선거로 출범한 하마스 정부의 돈줄을 자름으로써 목 졸라 죽이려 한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미국은 입으로는 이슬람권 민주화를 말하면서도 입 따로 행동 따로’다.

지금도 가끔씩 머리에 떠올리곤 한다. 하마스 대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소년들의 분노어린 얼굴들을…. 한 리서치 조사결과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소년 3명 가운데 1명 꼴로 그들이 지닌 꿈은 “18세가 되면 총을 들고 전사로서 싸우다 순교하겠다”는 것이다.

2003년 미국의 침공을 받은 이라크는 현존하는 최대의 분쟁지역이다. 이라크 사태를 보면 ‘힘에 바탕한 실리’를 추구하는 미국이란 실체가 드러난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남아프리카 전 대통령)는 이렇게 부시 미 대통령을 비판했다. “부시가 이라크전쟁을 밀어붙이는 까닭은 미국의 군수산업과 석유회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델라가 지적했듯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핵심은 사담 후세인이 독재자여서가 아니다. 언젠가는 미국의 안정적 석유자원 공급을 위협할 수 있는 반미국가의 지도자란 점이다. 21세기에도 지구촌은 독재자들로 가득하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지구상 국가의 절반 이상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후세인이 자연자원이 별 볼일 없는 아프리카 변방의 독재자였다면, 미국의 침공을 받아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이라크 현지취재 때 만난 하산 알리 사브티 교수(바그다드대, 역사학)는 자신을 가리켜 ‘아랍민족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이라크 석유를 필요로 하지 않거나, 후세인이 미국의 석유 야망을 채워주는 양보조치를 했더라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없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석유 변수에다 이스라엘, 이라크를 발판으로 한 미국의 패권전략이 더해져 전쟁이 벌어졌다”는 분석이다. 그는 “따라서 미군의 침공을 돕는 성격의 한국군 파병을 반길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프리카의 ‘잊혀진 전쟁’

지구촌 사람들의 눈길이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유혈사태에 쏠려 있는 동안, 아프리카 곳곳에선 내전이 벌어졌다. ‘아프리카의 가장 긴 전쟁’이란 악명을 얻어온 수단 내전을 비롯, 콩고, 알제리, 라이베리아, 아이보리코스트, 부룬디, 소말리아 등에서 크고 작은 유혈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다만 그 소식들이 잘 전달되지 않아 우리들이 잘 모를 뿐이다. 1950년 6·25가 터지자, 외국인들이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냐?”며 지도를 펼쳐본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수단은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내전 지역이다. 1983년부터 벌어져 ‘아프리카의 가장 긴 전쟁’이라 일컬어져온 수단 내전의 배경에도 이라크처럼 풍부한 석유자원이 깔려있다. 수도 카루툼의 회교도 정부군과 남부 반정부세력(기독교 세력과 토속신앙세력의 연합)인 수단인민해방운동(SPLM) 사이의 무력충돌은 2백 만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수단내전이 평화협정으로 막을 내려가는가 싶더니, 수단 서부 다르푸르에서 또 다른 참극이 빚어지는 중이다. 수단 정부군과 ‘잔자위드’ 민병대가 다르푸르 지역 토착민들 집을 불태우고 인종청소를 벌여 20만 명이 희생됐다. 100만 명이 피난을 떠났고, 그 가운데 일부는 이웃 차드로 넘어갔다.

한 가지 심각한 문제점. 수단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난민이 됐음에도 유엔안보리에선 아직도 평화유지군 파병을 ‘논의’하는 수준이다. 지역기구인 아프리카연합(AU)에서 7천 명의 병력을 보냈지만, 활동다운 활동을 펴지 못하는 모습이다. 10년 전 르완다 인종청소 때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팔짱끼고 구경만 했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잊혀진 전쟁’일 뿐이다.

유럽에서 그런 참극이 일어났다면, 대응 방식과 속도가 크게 다를 것이다. 1999년 발칸반도의 작은 분쟁지역 코소보에 나토(NATO)가 적극 개입해 유혈사태를 가라앉힌 것이 한 보기다. 발칸 난민들이 서유럽으로 흘러들어오면 여러 가지로 곤란한 문제점들이 생겨나므로, 그런 일을 미리 막아야 했다. 코소보가 아프리카의 변방에 있었다면? 나토가 그렇게 개입하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패권국 미국의 일방주의

코카사스 산맥 북쪽 지역에서는 날마다 총성이 울린다. 인구 130만의 체첸에서다. 1994년 이래 전쟁을 벌여왔으니, 올해로 12년을 넘긴 셈이다. 러시아정교를 믿는 러시아와는 달리 이슬람교도들인 체첸 분리주의자들은 그들의 투쟁을 ‘해방전쟁’이라고 여긴다. 1차 체첸전쟁에서 러시아 병사들은 매복전술에 휘말려 참패했다. 러시아 군부가 ‘명예회복전쟁’으로 벌인 2차 체첸전쟁은 1999년부터 지금껏 끌어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 부시처럼 러시아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즉결 처형과 납치, 실종 등의 인권 침해로 국제 사회에서 ‘더러운 전쟁’이란 악명마저 얻었다. 체첸 일대엔 러시아 석유 매장량의 5%쯤이 묻혀 있다. 체첸 땅을 지나는 송유관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따라서 “체첸에 석유가 나지 않았다면, 체첸전쟁은 없었을 것”이란 가설이 성립한다.

내전으로 엉망이 된 17세기 영국을 살았던 토마스 홉스는 “자연상태는 전쟁상태”라 여겼다. 홉스의 시대를 4백 년 가까이 지난 21세기의 문턱에서도 지구촌 평화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기만 한다. 유일패권국 미국이 힘을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일방주의 대외정책이 문제라면 문제다.

오늘 아침도 신문 외신기사는 지구촌 분쟁소식들로 채워져 있다.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프레시안 기획위원, 국민대/성공회대학교 강사
2006/06/01 00:00 2006/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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