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는 수많은 전쟁이 되풀이 되어왔다. 평화와 화해의 시대로 기대했던 탈냉전의 시기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전쟁보다는 평화가 예외적 현상이라는 현실주의자들의 주장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자들은 평화를 위한 인류의 부단한 노력의 성과를 애써 외면한다. 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제를 내세워 오히려 전쟁준비를 부추기기도 한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한반도가 놓인 지정학적 상황과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 유난히도 전쟁 위기가 자주 언급된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에도 몇 차례의 위기를 경험했던 것이 사실이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한반도가 전쟁 직전까지 갔었던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가 언제든지 전쟁의 불구덩이에 빠질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으므로 이를 예방하는 조치가 필요하고, 평화구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과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이 호들갑을 떠는 것은 차이가 있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북한의 남침에 의한 전쟁 위기론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애용해온 처방이다. 탈냉전기 북한체제가 위기에 처한 이후에는 북한의 적화야욕보다는 돌발적 침략상황을 가정하는 남침론으로 변화했다. 심지어는 최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미군철수론으로 매도하면서,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다른 한편, 이른바 진보진영 일각에서 제기하는 전쟁위기론도 있다. 특히 1994년 북핵위기를 경험한 이후 우리사회에서는 미국의 대북공격에 의한 전쟁위기론이 시시때때로 제기된다. 분명 북미가 대립을 지속하면서 한반도에 불안정과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지만, 그러한 사실이 곧바로 한반도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사회의 전쟁위기론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서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우선, 대부분의 전쟁위기론이 객관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기보다는 추측에 의한 시나리오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그림 그리기’이다.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선정성에 기반해 감정에 호소한다.

또한 북한의 호전성, 혹은 미국의 호전성을 전제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과 미국의 호전성을 전제해버리는 순간 다른 측면에서의 토론은 사전 봉쇄된다. 북한의 남침 능력과 남침 의도를 검증할 수 있는 논의는 불가능하게 한다. 기지 재편을 둘러싼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따져 묻는 것은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고,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가는 일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한미군과 미국은 한반도 ‘평화 지킴이’인가, 아니면 불안요소인가에 대한 토론이 가능할 리 없다.

반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거대한 ‘전쟁 기계’에 불과한 것인가, 언제든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명분만 찾고 있을 뿐인가 하는 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선제공격 방침을 채택하고 있는 부시행정부 정책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거대한 전쟁기계로만 보는 것은 미국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단순명쾌한 정치적 주장은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한반도의 전쟁 예방과 평화정착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또한, 전쟁위기론들이 도달하는 결론이 서로 닮아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호전성과 남침 가능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한미동맹의 강화,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전력증강을 통한 대북억지력 강화를 주장한다. 미국의 호전성을 강조하는 경우 ‘자주국방’의 논리로 이어진다. 전쟁위기론이 군비증강이라는 반평화적 논리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정책=대북선제공격’으로 사고하는 논리가 북한의 선군정치와 핵억지론에 대해 얼마나 단호한 평가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전쟁 위험 강조, 평화 만들기에 도움 안 돼



신중하지 못한 전쟁위기론은 그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든, 한반도가 처해 있는 민감한 지정학적 상황을 악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고자 하는 대국민 협박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위기 담론에 내성이 생길 위험성이다. 그야말로 위기 불감증을 조장하게 된다는 점이다. 한반도 전쟁위기론이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면, 실제로 전국민적인 평화역량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강조하자면, 우리사회 전쟁위기론에 대한 성찰이 한반도의 불안정한 지정학적 상황과 역사적 경험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한반도는 북한의 남침에 의해서도, 미국의 대북공격에 의해서도,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에 의해서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더더욱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 만들기’ 과정이 전쟁위기를 강조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준규 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
2006/06/01 00:00 2006/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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