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과 경찰을 앞세운 정부의 야만적인 “행정대집행”은 결국 유혈사태를 불러왔다. 문제의 본질은 철저히 외면된 채 군경의 피해만 부각되고, 한미동맹만 강조되고 있다. 미군에 기지를 내주는 문제로 우리끼리 싸우는 모습이 더 안타깝다.



미국의 군사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미군기지 이전 비용을 왜 우리가 전부 부담해야 하는지, 미국이 용산기지를 이전해 평택에 단일 해외미군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최첨단 기지를 짓고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 정부의 누구도 속 시원하게 해명해주지 않는다. 우리정부는 미국과 협상다운 협상을 해 보지도 못하고, 시종일관 저자세로 일관하면서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 주었다. 국민의 부담을 한 푼이라도 줄여보려는 노력이나, 주한미군 재배치와 재편이 우리 안보와 한반도 평화에 끼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고민은 처음부터 없었다.

불평등한 미군 기지 이전 협상



정부는 강화도조약이나 제물포조약보다도 불평등한 협정을 맺어놓고는 거짓말과 기만으로 일관하고 있다.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의 GPR(해외주둔 재배치계획)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용산기지 이전은 우리가 먼저 요구했고 우리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 비용을 우리가 전부 대야 한다고 여전히 강변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용산기지 이전과 평택기지 확장이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와 군사변환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1990년에 합의했으나 사실상 폐기되었던 용산기지 이전문제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의 요구에 의해 용산기지 이전을 비롯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다루기 위한 FOTA(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가 2003년 4월 열린다. 부시 미 대통령이 GPR을 공식 발표한 것은 2003년 11월이지만, 해외주둔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GPR 개념이 구체화된 것은 그 이전부터이고, 가장 만만한 한국에서 시범사례로 협상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미군을 위한, 미군에 의한 주한미군기지 이전



미국의 GPR 구상은 이미 ‘QDR(4개년 국방검토 보고서) 2001’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계획은 2002년 5월 3일,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국방계획지침이라는 비공개 문서에 서명하면서 구체화된다.

이처럼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이 추진 중인 해외주둔미군의 재배치와 재편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를 세계전략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 주한미군을 비롯한 아시아 주둔 미군의 개편과 재배치는 긴급한 현안이다. 용산기지와 미 2사단을 이전해 평택·오산 지역으로 통합하고 있는 것은 미군의 한국으로의 출입을 신속하고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산공군기지와 평택항은 미군의 신속한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리적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기지는 중국 봉쇄를 위한 미국의 전진작전기지로 활용되고, 주한미군은 전진배치첨병 역할을 하는 아시아 지역군으로 개편되고 있다. 평택에 50년 이상 사용할 최첨단 영구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세기 이상 된 낡은 용산기지로는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평택기지에는 중국을 감시하는 정보수집장비와 중국의 핵억지력을 무력화시킬 미사일방어(MD)용 무기체계가 집중적으로 배치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평택오산지역은 애꿎게 중국의 중거리 핵미사일의 표적이 될 수 있다.

1990년 합의각서에서 한국이 이전비용을 전담하기로 약속했다 하다라도, 2003년의 재협상 요구는 전적으로 미국의 필요성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또 그동안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라는 중대한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단 한 차례도 미국에 비용 분담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다. 용산기지 재협상에 응하지 않았다면 속 타는 쪽은 우리가 아니고 미국이었다. 설령 아무리 양보해서 이전을 우리가 먼저 요구했고 이전비용도 전부 부담하기로 약속했다고 하더라도, 낡은 기지 대신 안락한 새 기지를 갖는 막대한 해택을 누리게 될 미국이 비용의 상당부분을 부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굴욕적인 이전보다는 서울 한복판에 기지를

한국 방위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필요성에 따라 이전하고 주둔하는 미군을 위해 우리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전담해야 하는 부당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부당한 것은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용산기지 이전과 평택기지 확장문제는 재협상돼야 마땅하다. 일부에서는 이미 한미간에 합의되고 국회 비준까지 받은 것을 이제 와서 어떻게 재협상하느냐고 주장한다. 체결 당시에 비해 큰 사정 변화가 생기지 않은 독도 관련 한일어업협정의 폐기와 재협상을 주장하면서도,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와 감축이라는 큰 사정변화가 발생한 용산기지 이전협정의 재협상은 안 된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금과 같을 바에야 차라리 용산기지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 서울에 있는 미군기지를 지방으로 옮긴다고 민족의 자존심이 회복되나. 간과 쓸개를 다 빼준 불평등하고 굴욕적인 기지이전보다는 서울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용산기지를 보면서 수치심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차라리 더 교훈적이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2006/06/01 00:00 2006/06/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1686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