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둥게스와리는 열예닐곱이 되면 처자식을 갖는 조혼풍습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배운 것도 없고 직업도 없이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지니 그 자녀들이 못 먹고 못 배우고 치료받지 못할 위험이 높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들에게 건축기술을 가르쳐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청소년노동학교를 열었습니다. 이들은 마을에 필요한 유치원을 짓는다든지 도로보수를 한다든지 실제로 노력봉사를 하면서 남을 돕는 마음과 기술을 쌓고 일정한 용돈도 받아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2004년 말 인도 남부에 지진해일이 발생했을 때 인도제이티에스는 긴급구호활동을 하기 위해 청소년노동학교학생, 병원스탭, 한국대학생 등 총 47명을 따랑구라 마을에 파견했습니다. 옷, 식량, 가재도구 등 구호품을 지원하고 우리 학생들이 가진 기술로 임시숙소를 짓고 병원스탭들이 의료활동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남의 도움만 받아오던 학생들이 남을 도우면서 자긍심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많은 구호단체들이 의류, 식량, 가재도구 등의 구호품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둥게스와리에서 결혼할 때나 장만할 수 있는 수준의 가재도구들이고 재난시가 아닌데도 늘 곤궁한 우리 학생들 앞에서 그런 대량물품지원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닥은 시멘트로 하고 지붕은 나뭇잎으로 짓는 임시숙소는 화재위험을 이유로 정부에서 허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제2의 쓰나미가 올 것을 두려워하여 바닷가의 집을 버리고 내륙쪽으로 이주하길 바랬는데 땅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해서 임시숙소를 짓는 일도 포기했습니다. 결국 집과 가족, 생계수단인 고깃배와 그물을 잃고 넋이 나간 사람들을 위해 마을 청소를 했습니다.

따랑구라 마을은 학교, 도로, 전기, 전화, 도서관, 농업용 펌프 등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둥게스와리보다 훨씬 잘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이 잘 사는 마을에 와서 훨씬 못 사는 우리들이 뭘 돕겠다는 것인가 하는 회의를 느끼지 않을까 염려가 됐었었지만, 가족과 집, 재산을 잃고 고통을 겪고 있고 마을 사람들이 청소를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 손을 못 쓰고 있는 상황을 본 학생들은 모두 흔쾌히 마을 청소를 하였습니다.

처음엔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뭔가 달라고 요구하고, 무너진 집, 더러운 마을을 청소해도 상관하지 않았으나 매일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함께 하고, 코코낫도 따서 주기도 했습니다. 정부 직원들은 우리들에게 비스켓을 주기도 하였는데 그 비스켓을 받아든 우리 학생들은 마을 사람들이 뭔가 달라고 할 때 줄 게 없어 미안했다며 그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단체들이 물량공세로 나오는 반면 우리 팀이 몸으로 구호활동을 하는 것에 감동하여 같은 시기에 투입이 되었던 군인 대장은 우리 어린 학생들을 점심에 초대하기도 하였습니다. 낯선 곳에서 지위 높은 군인의 맛난 식사를 초대받는다는 것은 학생들 생애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피해지역을 답사하면서 “이곳은 둥게스와리보다 훨씬 낫다”고 말하는 한 학생에게 ‘그럼 둥게스와리를 이곳으로 옮길까’ 했더니 “아니요. 둥게스와리를 이곳처럼 잘 사는 마을로 만들어야지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남을 도움으로써 실제로는 스스로를 도왔던 것입니다.

장영주 인도제이티에스 사무국장
2006/06/01 00:00 2006/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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