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이 아름다운 사회
2006/2006년 06월 :
2006/06/01 00:00
눈앞에는 세상에서 본 적 없는 초록이 펼쳐 있었고, 5월 햇살은 봄의 환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봄기운에 도취해 망연히 이생각 저생각을 뒤척이다 보니 내가 이렇게 봄을 좋아하게 된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 시절, 봄은 피하고 싶은 계절이었다. 봄이 몰고 오는 묘한 흥분과 설렘 때문에 나의 고통(뭐가 그리 고통스러웠을까?)과 나에 대한 연민이 희석될까봐 그랬던 모양이다. 연둣빛 새순의 생명력을 애써 거부했던 어리석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짓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당신, 흰머리 생겼네” 한다. 좀처럼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 남편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설마?” 하며 부정하는 내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못하다. 여러 사람 앞에 민망하지만 남편에게 머리를 뒤적이게 한다. 쉽게 못 찾는 남편. 다행이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어 화장실로 잽싸게 달려가 환한 대낮인데도 불을 켜고 거울 앞에서 직접 흰 머리칼을 찾아본다.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 그렇지, 오십을 앞두고 있는 오빠도 아직 흰머리가 없는데, 나한테 벌써 생길 리가 없어’라며 마음을 도닥인다.
서른 살을 맞이하면서 지독하게 신고식을 치른 데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노안이 왔던 터라 나름대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채비를 마친 줄 알았다. 다른 이들보다 머리숱이 없어 고민하는 남편의 ‘난 흰머리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위로도, 불혹의 나이에 불혹하지 못한 이의 소치라는 주변의 치명적인 비웃음도 어지러운 내 마음을 달래는데 소용이 없다. 나이 드신 분들의 흰 머리는 인생의 연륜이 배어나온 듯 했고, 젊은 친구들의 흰 머리는 열심히 일한 상징처럼 여겨져 보기 좋다던, 다른 사람들의 흰 머리카락에 베풀었던 관용조차 모두 위선이었다.
연배가 비슷한 누구는 자연으로 돌아갈 그날을 아름답게 준비하고 있다는데, 난 그깟 멜라닌 색소를 만드는 세포가 기능저하를 일으키는 사소한 노화현상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햇살조차 거부하던 젊은 시절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내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나이 드는 자연스러움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신에 대해 거듭 생각하다보니, 꼭 내 탓만은 아닌 듯싶다. 자연스럽게 여성의 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지 않은가. 은발에서 우러나오는 지긋한 삶의 경륜과 멋은 남성한테만 기대하기로 작정한 사회이기에, 여성에게 흰머리는 그저 퇴화의 상징일 뿐이다. 그렇기에 여성들은 지긋이 흰머리카락을 두지 못하고 염색을 강요당하는 게 아닐까? 내게 흰머리에 대한 공포를 심어준 주범은 바로 젊은 여성만 필요로 하는 우리 사회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흰머리 때문에 호들갑을 떠는 것이 사회 탓이라고 진단을 내린들 내 두피 밑의 멜라노사이드의 기능이 다시 왕성해질까?
서른 살을 맞이하면서 지독하게 신고식을 치른 데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노안이 왔던 터라 나름대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채비를 마친 줄 알았다. 다른 이들보다 머리숱이 없어 고민하는 남편의 ‘난 흰머리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위로도, 불혹의 나이에 불혹하지 못한 이의 소치라는 주변의 치명적인 비웃음도 어지러운 내 마음을 달래는데 소용이 없다. 나이 드신 분들의 흰 머리는 인생의 연륜이 배어나온 듯 했고, 젊은 친구들의 흰 머리는 열심히 일한 상징처럼 여겨져 보기 좋다던, 다른 사람들의 흰 머리카락에 베풀었던 관용조차 모두 위선이었다.
연배가 비슷한 누구는 자연으로 돌아갈 그날을 아름답게 준비하고 있다는데, 난 그깟 멜라닌 색소를 만드는 세포가 기능저하를 일으키는 사소한 노화현상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햇살조차 거부하던 젊은 시절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내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나이 드는 자연스러움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신에 대해 거듭 생각하다보니, 꼭 내 탓만은 아닌 듯싶다. 자연스럽게 여성의 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지 않은가. 은발에서 우러나오는 지긋한 삶의 경륜과 멋은 남성한테만 기대하기로 작정한 사회이기에, 여성에게 흰머리는 그저 퇴화의 상징일 뿐이다. 그렇기에 여성들은 지긋이 흰머리카락을 두지 못하고 염색을 강요당하는 게 아닐까? 내게 흰머리에 대한 공포를 심어준 주범은 바로 젊은 여성만 필요로 하는 우리 사회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흰머리 때문에 호들갑을 떠는 것이 사회 탓이라고 진단을 내린들 내 두피 밑의 멜라노사이드의 기능이 다시 왕성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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