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나무 박찬일┃민음사

이상한 일이다. 요즘 들어 부쩍 여자냐 남자냐가 중요해졌다. 아니 중요해졌다기보다 오히려 민감해졌다는 말이 맞을 게다. 페도르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란 영화에 대해 주변의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비판을 각오하고 감히 말하자면, 여자들은 대개 ‘불쾌했다’는 쪽이었고 남자들은 ‘괜찮았다’는 반응이었다. 여자들은 아무리 지고지순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하더라도 식물인간이 된 여성을 강간한다는 설정은 그리 보기 편한 내용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나 역시 여자 감독이었다면 좀 다르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6월 14일 수요일 박찬일 시집 ‘모자나무’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유는, 모 일간지의 기사 때문이었다. 시집에 대해 “오랜만에 만난 남성적인 시다, 화려한 수사나 요사스런 표현 따위는 없다”고 기자는 거침없이 평한다. 이 정도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시대에 남성적이라고 말하여지는 시는 과연 어떤 시인가. ‘화려한 수사나 요사스런 표현 따위’가 남성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변별 기준인가. 죽음과 삶 또는 고통에 대한 성찰의 유무인가. 시집을 놓았을 때,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더욱 난감해질 뿐이다 .

침묵과 열광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강양구, 김병수, 한재각 지음┃후마니타스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은 ‘황우석 사태’가 2005년 11월 섀튼 교수의 결별 선언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태의 결말에 해당할 뿐이다. ‘황우석 사태’가 어떻게 배태되고 심화되어 비극적인 사건으로 귀결됐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보다 긴 시간을 돌이켜 봐야 한다. 복제소 영롱이가 태어난 1999년 초까지.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필자들은 이번 사태를 황우석 교수라는 과학자 개인이 정부·언론·과학계를 비롯해 국민 전체, 나아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벌인 사기 사건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한다. ‘모두가 황우석에게 속았다’는 식의 평가는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반성과 문책이 수반되지 않은 평가는 ‘제2의 황우석 사태’를 불러오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과학 사기 사건으로 전 국민적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전 세계적인 스캔들로 불거진 데는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들과 황우석 교수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동맹’ 전반을 살펴보며 이번 사태를 통해서 책임있는 자가 침묵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열광하는 자가 성찰하지 않을 때 어떤 비극이 빚어지는 지를 강조하고자 했다.

이지은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
2006/07/01 00:00 2006/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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