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다섯 병
2006/2006년 07월 :
2006/07/01 00:00
예전에는, 이런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순간순간 ‘예전에는’ 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만다.
예전에는 인생이 먹고 사는 것 이상의 무언가라는 명제에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벅찬 생활이었지만 인생에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 것임을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직도 굶주리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절대 다수가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난 요즘, 뜻밖에도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에만 온통 정신이 홀려 있는 것 같다. 마흔이면 슬슬 퇴출명단에 오른다는 직장인으로부터 취업을 하지 못한 취업재수생은 물론 취업여부가 불명확한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문제는 돈이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찾아 의대, 치대, 한의대가 상한가를 치고,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이 홀대를 당하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정치도 예외가 없다. 민주주의 따위는 이미 죽은 말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철도노조의 파업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도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내 경제생활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이냐, 오직 그것이다.
직장생활을 길게 해보지는 않았으나 평범한 직장인들의 고충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사회나 직장의 어떤 모순이나 억압도 먹고 살기 위해 참을 수밖에 없다던 사람이 자식들 학원비로 한 달에 수백 만 원씩을 지출하고, 자식 교육을 위해 빚을 내어 강남으로 이사를 하고, 때로 해외여행도 다니고, 골프를 배우는 것을 보면 나는 어쩐지 속은 기분이 든다. 그들의 논리는 한결 같다. 세상이 그러니, 남들이 모두 그러니, 나 혼자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 하나가 십여 년 전 고향으로 낙향했다. 그 친구, 요즘에는 고향에서 자그마한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다들 그 친구의 엉뚱한 삶의 행적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자기 혼자 신바람이 났다. 학원이 끝나는 열 시, 친구는 초등학교 육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차로 오 분 남짓 걸리는 섬진강으로 달려간다. 달밤에 쏘가리를 잡아 즉석에서 회를 쳐 아들과 함께 먹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단다. 얼마 전 친구 집에 놀러갔더니 대형수족관에 쏘가리 서너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동행했던 초등학교 동창들-이른바 서울에서 잘 나가는-이 쫀득쫀득한 쏘가리회와 소주 두어 병에 취해 맥없이 고꾸라져도 월수 이백만 원 학원 원장님께서는 소주 다섯 병에도 끄떡없었다. 나이 마흔에 소주 다섯 병 주량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서울 월급쟁이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큰소리 뻥뻥 치던 그 친구, 너희들은 월수입 오백에도 빚쟁이지만 자기는 월수입 이백에도 고향 유지라고 자랑이 대단했다. 함께 갔던 동창들 모두 그 친구의 삶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고향에서 주말이면 지리산 등반이나 하고 밤에는 낚시나 하며 살자는 그 친구의 유혹에 넘어간 자는 물론 아무도 없었다.
돌아오는 길,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려갈 때와 달리 말들이 없었다. 긴 침묵 속에서 문득 행복도 불행도, 성공도 실패도 자신의 선택이라는, 어느 성공학 서적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오늘의 현실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을 선택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본이 국경마저 무너뜨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낙향한 내 친구처럼 한가롭게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는 결국 나의 선택이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언젠가는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견고한 둑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나의 생각은 386세대다운, 이미 도태된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예전에는 인생이 먹고 사는 것 이상의 무언가라는 명제에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벅찬 생활이었지만 인생에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 것임을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직도 굶주리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절대 다수가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난 요즘, 뜻밖에도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에만 온통 정신이 홀려 있는 것 같다. 마흔이면 슬슬 퇴출명단에 오른다는 직장인으로부터 취업을 하지 못한 취업재수생은 물론 취업여부가 불명확한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문제는 돈이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찾아 의대, 치대, 한의대가 상한가를 치고,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이 홀대를 당하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정치도 예외가 없다. 민주주의 따위는 이미 죽은 말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철도노조의 파업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도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내 경제생활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이냐, 오직 그것이다.
직장생활을 길게 해보지는 않았으나 평범한 직장인들의 고충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사회나 직장의 어떤 모순이나 억압도 먹고 살기 위해 참을 수밖에 없다던 사람이 자식들 학원비로 한 달에 수백 만 원씩을 지출하고, 자식 교육을 위해 빚을 내어 강남으로 이사를 하고, 때로 해외여행도 다니고, 골프를 배우는 것을 보면 나는 어쩐지 속은 기분이 든다. 그들의 논리는 한결 같다. 세상이 그러니, 남들이 모두 그러니, 나 혼자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 하나가 십여 년 전 고향으로 낙향했다. 그 친구, 요즘에는 고향에서 자그마한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다들 그 친구의 엉뚱한 삶의 행적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자기 혼자 신바람이 났다. 학원이 끝나는 열 시, 친구는 초등학교 육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차로 오 분 남짓 걸리는 섬진강으로 달려간다. 달밤에 쏘가리를 잡아 즉석에서 회를 쳐 아들과 함께 먹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단다. 얼마 전 친구 집에 놀러갔더니 대형수족관에 쏘가리 서너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동행했던 초등학교 동창들-이른바 서울에서 잘 나가는-이 쫀득쫀득한 쏘가리회와 소주 두어 병에 취해 맥없이 고꾸라져도 월수 이백만 원 학원 원장님께서는 소주 다섯 병에도 끄떡없었다. 나이 마흔에 소주 다섯 병 주량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서울 월급쟁이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큰소리 뻥뻥 치던 그 친구, 너희들은 월수입 오백에도 빚쟁이지만 자기는 월수입 이백에도 고향 유지라고 자랑이 대단했다. 함께 갔던 동창들 모두 그 친구의 삶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고향에서 주말이면 지리산 등반이나 하고 밤에는 낚시나 하며 살자는 그 친구의 유혹에 넘어간 자는 물론 아무도 없었다.
돌아오는 길,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려갈 때와 달리 말들이 없었다. 긴 침묵 속에서 문득 행복도 불행도, 성공도 실패도 자신의 선택이라는, 어느 성공학 서적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오늘의 현실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을 선택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본이 국경마저 무너뜨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낙향한 내 친구처럼 한가롭게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는 결국 나의 선택이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언젠가는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견고한 둑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나의 생각은 386세대다운, 이미 도태된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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