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누구를 위한 거래인가?
2006/2006년 08월 :
2006/08/01 00:00
대한민국은 재판 중
“ㅇㅇ위원장께 훈장을 줘도 시원찮은데 재판이라뇨. 저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게 법입니다. 백가지를 잘 했어도 하나라도 법에 저촉되는 사항이 있으면, 또는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면 재판을 받는 겁니다. 변호사 역시 마찬가집니다.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행담도 사건으로 변호사를 만나서 처음 나눈 대화이다. 실제로 그랬다. 내가 법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과정은 영어를 처음 배울 때와 비슷했다. 사건 전체로 봐서 별것도 아닌 개별 사안에 관해 치밀한 미시 논리를 만들어내는 검사와 변호사의 싸움은 피고인인 나를 수시 때때 관객으로 만들었음을 고백한다. 다행인 것은 ‘진실’이 아닌 쪽에서 훨씬 더 기기묘묘한 논리를 만들기 마련이고 결국은 상식이 이길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하도 답답해서 봤다는 어머니의 점괘가 맞으려고 그러는지 재판 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송사’에 휘말려 있다. 일단 무죄로 판결난 위 사건의 2심이나 모 신문사의 왜곡보도에 대해 제기한 민사소송 때문이 아니다. 이번엔 영문 법조문을 직접 들여다보고 있으니 나는 이중의 언어장애를 겪는 셈이다.
현재 한미 FTA 협상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투자자-정부 제소권’을 비롯한 투자항목 얘기다. “이건 미국 헌법 상 명백한 위헌입니다.” 한 변호사가 단정한다. 그가 보여 준 미국 헌법 3조가 규정한 사법권은 “합중국의 권한에 의해 체결됐거나 체결될 조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보통법상 및 형평법상의 사건”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투자자-정부 제소권’은 미국 법정을 건너 뛰어, 그때그때 3인으로 구성되는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ICSID)나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중재심판위원회에서 판정을 내리고, 보통 재심도 불가능하니 상식적으로 위헌이다. 심지어 각국 법원이 내린 판결도 다시 심판할 수 있으니 이 문제에 관한 한 사법부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로우언 사건1)가 바로 이것이다. 정부의 오해와 달리 이기고 지고는 문제가 아니다). 미 주(州)법원판사회의를 비롯한 법률가들이 미 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또 있다. 이번엔 미 의회에서 국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미국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니 ‘평등권’ 위반이라는 것이다. 또한 국민 대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규제 등 공공정책이 제소의 대상이 되는데 이를 제3의 민간기구가 비밀주의에 입각해서 처리한다는 것도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다. 시민단체가 가만히 있을리 없다.
결국 미국과 캐나다 정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아래에서 투자자-정부 제소권 때문에 비롯된 사건의 판결을 공개하고 나프타의 3국 외무장관이 따로 모여 투자항목의 몇 개 조항에 관해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3국의 정부 문건이나 법률 논문 모두 이 항목을 만들 때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했다. 예컨대 국유화, 또는 몰수를 방지하려고 만든 조항이 국내 정책(예컨대 조세정책, 환경규제, 구역설정)에 모두 영향을 미치고, 제소를 피하려는 정부가 새로 만든 법을 취소하거나(에틸 사건2), 아예 제소를 두려워하여 규제자체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위축효과). 이는 모두 공공성의 파괴로 연결될 위험성을 다분히 안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 이익을 위해서라면 쓰레
기통도 뒤지는 초국적기업들이 이 조항의 위력을 먼저 발견했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확신에 차 있다. 정부는 재판장의 처지에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국익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한 쪽의 이익을 위해 선 법률가처럼 기묘한 논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미래에 일어날 위험성을 잘 모르고, ‘기가 막힐 정도로 애매한’개념(예컨대 간접적 수용)으로 구성한 이 조항이 다른 나라의 FTA(자유무역협정)나 BIT(투자협정)에도 있고, 우리가 이미 맺은 BIT에도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논리가 그 첫째다. 첫 단추를 잘못 끼었으니 계속 잘못 꿰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에 나가 있는 우리 기업이 국유화 당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집어 넣었다는 것을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연 우리 기업이 자의적으로 집행되는 반덤핑-상계관세를 무서워 하지 않고 미국의 환경규제를 문제삼을 수 있을까? 마치 ICSID나 UNCITRAL이 올바른 판정만 내린 것처럼 단정하는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사건을 두 쪽에 동시 제기한 결과 서로 완전히 엇갈린 판정이 나온 것에 관해서는 이제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왜 우리 주권의 문제를, 심지어 우리 국민 모두의 건강에 관한 문제까지도 3명의 법률가에게, 그것도 우리 법률은 뒷전인 그 위원회에 맡겨야 하는 것일까?
정부는 어떤 정책이 가져올 미래의 위험을 막아야 한다. 내 경험에 비춰 소소한 법률 하나 하나를 만들 때도 각 부처는 이런 위험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 한다. 그런데 우리 자식의 자식, 또 그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엄청난 정책을 만들면서 왜 ‘실현된 미래’를 굳이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왜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정보공개 청구까지도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죄를 만들려고 기기묘묘한 논리를 짜내는 검사를 보는 것 같다. 스스로 법률가인 대통령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을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1) 미국 미시시피 주정부가 1994년 캐나다의 장례회사 로우언이 불법적, 반경쟁적 행위로 지역의 장례회사를 퇴출시키려 한다고 로우언을 고소하여 승소한 뒤, 로우언이 연방대법원에 제소했다 기각당하자 1998년에 다시 나프타의 기업-정부 제소권을 이용해 반캐나다, 인종차별 등의 혐의로(나프다 1102조, 1110조 위반) 미국 정부를 제소한 사건. 결국 로우언이 외국인기업의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 하여 기각됐다.
2) 1998년 미국의 화학기업 에틸사는 같은 자사의 섬유첨가제 판매를 막느다며 캐나다 정부를 제소했다. 문제의 석유첨가제는 1920년대에 캐나다는 물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환경오염 제품으로 이미 판매가 금지되었던 제품이었다. 결과는 북미 자유무역협정중재기구는 “캐나다 정부는 에틸사에 13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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