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24시
요즈음 사무실에서 가장 바쁜 사람을 꼽으라면 당근 이태호 협동처장일 것이다. 그 바쁜 사람을 붙잡고 한가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사내 연애 (그의 아내 이승희씨는 그보다 1년 전부터 참여연대에 투신한 창립 멤버이다.)를 하시게 되었나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태호 협동처장은 초반부터 나온 의외의 질문에 황당한 듯 히히히 웃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승희와는 7~8년간 한 사무실에서 보고 알고 지내왔으나 저하고는 정반대로 꼼꼼하고 단정하고 야무진 성격이라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어요. 저는 덜렁대고 게으르고 자유분방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업무 관계로 장시간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참 따뜻함이 느껴지더라구요. 그날로 당장 사귀고 싶다고 얘길 했지요. 아마 한 사무실에서 얼굴을 보아야하는 제 입장을 고려해서인지 별로 크게 거부 반응을 보이지는 않더라구요. 그런데 사귀면서보니 똑똑하면서도 천진난만하고 사람을 잘 배려하여 시간이 갈수록 모든 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란 확신이 들었어요.”

부부싸움은 회의실에서

상대에게는 어떻게 확신을 주었느냐고 물었더니 한창 연애 중에 독일에 열이틀간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매일 한 번씩 국제전화를 하여 확실하게 도장을 받았단다. 하긴 외국에서 국제전화하기가 좀 어려운가. 부부싸움은 주로 참여연대 사업회의 때 신나게 한단다. 사안마다 의견이 달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설전을 벌이는데 오죽하면 옆에서들 “집에 가서 싸우지”하며 놀릴 정도라 했다.

피리부는 사나이

그는 피리 부는 사나이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가르치려던 어머니의 강권이 싫어 대신 피리를 열심히 불다보니 나중에는 합주반에서 활약을 하게 되었다. 가끔 일이 손에 안 잡히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는 한곡씩 불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고 하였다. 지난 해 후원의 밤에는 피리를 가르친 제자 두 명(상근자)과 함께 연주를 하기도 했다.

다른 상근자들에 의하면 미술 솜씨도 그만이라고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거나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등 미술에 관하여 관심이 많았단다. 그것은 넓은 공간에 다양한 미술도구가 잔뜩 준비되어 있어 아무나 아무 때나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한 중학교 시절의 미술 교육 덕택이라고 자랑했다. 아버지의 성화로 미술대학으로 진학하진 못했지만 그는 참여연대에서 프리젠테이션 자료 만들 때와 피켓 만드는데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통쾌하게 웃었다.

참여연대에서의 11년에 회고해 보았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으로 보면 긴 10년이었지요. 처음에 비하면 영향력도 커졌구요. 거기에 몸 담고 일했다는 자체가 제게는 행운이고 보람이지요. 총선연대 활동도 잊을 수 없구요. 지난 시간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존의 관성을 털고 새로운 실험으로 처음과 같은 역동성과 활력을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참여연대 집을 짓는 일은 회원과 간사들간의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이제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을 지혜를 모아야겠지요.”

나이를 꼽아보았다. 청춘이 다 갔다고 했더니 아직 서른 아홉이니 서글프거나 우울하지는 않단다. 다만 이제는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이나 생각으로 제대로 뜻을 세울(立志) 때가 아닌가 싶다고. 그것이 그가 늘 꿈꿔오던 평화운동이 될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것을 시작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설레인다고 하였다.

국민의 동의를 구하라

인터뷰 도중 허리로 자주 손이 갔다. 그는 요즈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반대 연대활동의 최일선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7월 10일에는 반대 집회에 갔다가 경찰에 밀려 넘어지고 구타를 당하여 온몸은 멍투성이고 다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 이제 다 나았나 싶은데도 여전히 불편하여 자신도 모르게 허리에 손이 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크게 다치면 어쩌냐고 맨 앞에 서지 말라고 했더니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국민의 생활에 장기 지속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협상을, 치밀한 준비없이 국민의 동의도 얻지 않고 이미 4대 선결 문제까지 다 양보하며 졸속으로 강행하고 있는데 어떻게 두고 보느냐는 것이다. 성장하는 소수를 위하여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협상이고, 큰 시장이라고 하나 내다팔 물건이 없는 시장이며, 어마어마한 구조조정이 닥칠게 뻔한 산업구조로 가는데다 그나마 현 정부 임기 내에 실현할 가능성도 없는데 왜 이 정부에서 졸속으로 협상을 밀어붙이는가 하면서 기가 막힌다고 하였다. 결국 국민 대다수가 질 낮은 삶으로 내려앉아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하리라는 것이 미국-멕시코 FTA 나 미국- 캐나다 FTA의 경우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단다. 제발 천천히, 차근차근 사안별로 문제들을 풀어나가서 아주 낮은 단계의 FTA나 우회적으로 중단하게 되어야한다고 애가 타서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보면서, 저 간절한 바램을 이루기 위해 그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길에서 서성거리게 될 지 안타까웠다.

이해숙참여연대 회원
2006/08/01 00:00 200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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