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분식’(서울 종로구 익선동) 간판이 보이자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가게 앞에 이르니 구수한 만두 냄새가 주변을 제압해 버린다. 지루한 장마에 습도가 높을 대로 높지만 솥에서 솟아오르는 김은 입맛을 돌게 하기에 충분했다.

6평 남짓한 공간에 식탁 셋이 어깨를 맞대고 손님을 불러들인다. “어서 오셔요. 어머…….” 왼쪽 뺨은 밀가루로 살짝 볼 터치를 했고 입은 귀에 걸린다. 앉기가 무섭게 고기 꽃만두와 반달 김치만두가 한 접시 수북이 담겨 나온다.

참여연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또한 간사들의 입맛을 제일 잘 알고 맞추어 주던 정춘희(49세) 회원이다. 3년 전, 참여연대 앞 버스 정류장에서 떡볶이를 팔면서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사람들이 좋아서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그러다 보니 이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가 궁금하기도 했고…….”

몇 번이나 인터뷰를 청했으나 번번이 손사래를 쳤다.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무슨 인터뷰냐며 한사코 거절하는 통에 진땀을 뺐는데, 막상 자리를 마주하자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온다.

“참, 고생 많이 했지요. 17살 때 땅 끝 마을 해남에서 이곳 서울로 와서 온갖 일을 하며 살았어요. 세상에 불만도 많았지만 참여연대 앞에서 떡볶이를 팔면서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더라고요. 산다는 게 떡볶이 맛과 같더군요. 매운 맛과 달콤한 맛이 섞여있는 것이.” 책에서 익힌 지식이 아닌 사람에게서 깨달은 지혜다. 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절로 삶을 달관하는 지혜를 터득한 모양이다.

“애들 아빠가 많이 도와주었는데도 마차(떡볶이판)를 끌고 다니다 보니 어깨가 내려앉는 것 같이 아팠고, 한번 씩 덮치는 노점상 단속에는 눈물도 많이 흘렸지요. 막 판을 벌이는데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하루 장사는 공치는 거죠. 그래도 딸 하나 대학 보내고, 작은딸은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그간의 시름을 털어버리는 듯 환한 웃음을 짓는다. 노점상에서 가게로 생활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이제는 건강이 따라주질 못한다고 아쉬워한다.

“예전엔 만삭의 몸으로 밤을 꼬박 새우면서 일을 했지요. 남편이 중동으로 돈 벌러 나갔을 때 나는 봉제공장에서 일해서 그 사람이 보내준 돈을 한 푼도 축 안 내고 모았지요. 그 사람이 돌아오니 300만 원짜리 전세방 하나 얻어지더라고요. 얼마나 좋았던지 몰라요.”

마음 넉넉한 충청도 아저씨인 남편은 중동에서 돌아와서도 몸을 아끼지 않고 일거리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공사판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오징어잡이배도 타고.

“세상에 못 할 짓이 배 타는 일이더라고요. 돌아왔는데 손톱이 다 녹아 없어졌잖아요. 꼭 문둥병 걸린 사람 같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한참 지나 손톱이 새로 나긴 했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져요.”

그마저도 요즘은 일거리가 없어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애들이 공부를 마치려면 아직 6년 정도는 더 벌어야하는데 일거리는 자꾸 줄어들고, 몸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고, 88세인 시어머니는 거동도 어렵고…….”

고단한 도시 서민의 애환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30년이 넘도록 손톱이 빠지도록 일을 했건만 서울 시내에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 토건국가를 지향하는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아파트를 짓고 있는가. 아무리 ‘희망’을 부풀리고, 사회복지에 대한 그럴싸한 청사진을 제시해도 하루하루가 버거운 사람들에겐 공염불에 불과하다.

“FTA라는 게 뭐예요? 결국 농민들 옥죄는 것 아니에요? 애들 독립하고 나면 우리는 고향 가서 살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데, 어디 농민으로 살아가겠어요?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를 누가 짓겠어요. 여기 있는 만두만 해도 그래요. 편하게 하려면 제품을 받아서 살짝 쪄서 팔면 되는데 난 만두피까지 일일이 손으로 빚어서 해요. 먹어본 사람은 맛이 다르다고 하지만 가격 경쟁에서 제품 만두를 이길 수가 없어요.”

곳곳이 치열한 먹이사슬 판이다. 탁자 위에 놓인 만두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피(皮)에서부터 소까지 그녀의 한숨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만두이다. 그야말로 ‘눈물 젖은 만두’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도 세상이 참 많이 변했잖아요. 이렇게 나 같은 사람도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 일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는 세상이 되었으면 더 좋겠어요.”

좋은 세상이 따로 있으랴. 정춘희 회원의 희망, 바로 그것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 아닐까.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간다’는 글귀 한 자 한 자가 ‘낙원분식’이라는 간판 뒷면에서 크게 일렁이고 있었다.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2006/08/01 00:00 200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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